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고린도후서개관- 세상풍조에 자유롭지 못했던 교회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는 고린도 교회가 다른 어느 교회들보다 사도바울을 괴롭게 하고 슬프게 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고린도후서는 다른 어느 서신들보다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면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고린도후서는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바울사도가 쓴 편지 중 아마도 네번째 편지에 해당한다. 고린도전서는 두번째 편지였고 전서를 보낸 후 한 편지, 소위 눈물의 편지를 보냈었다. 따라서 고린도후서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이자 결론적인 편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와 기록연대>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했다(고후7:5; 8:1; 9:2). 저작시점은 54년말에서 55년 초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수신자>
고린도 교회가 일차적인 수신자임은 분명하지만 1:1에서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를 공동 수신자로 언급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시에 세워졌으며 제3차 선교여행 때 재방문 했다.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 처음으로 옥에 갇혔다가 풀려 난 후에도 다시 찾을 정도로 바울 사역의 중심지중의 하나였다. 바울 당시 고린도의 인구는 약20만명이었는데 보수적인 학자들조차도 고린도가 아테네보다 8배이상 컸다고 추정한다. 이런 고린도의 많은 인구는 바울이 왜 제2차 선교여행 중 아테네에서 잠깐 사역한 후 고린도로 떠났고 고린도에서 18개월 머물러 사역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준다. 27년 이후 고린도는 아가야지방의 행정중심지였다.
<기록목적>
고린도 후서는 1-9장의 내용과 10-13장의 내용에 있어서 분위기가 다름과 동시에 내용의 단절이 보인다. 그 이유는 바울이 1-9장을 받아 적게 할 때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긍정적 상황을 들었었다. 그런데 1-9장을 마무리한 후에 고린도교회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어조로 마지막 남은 장들을 기록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1-9장에서 네 개의 주요목적을 가지고 기록한다. 첫째로 바울의 여행계획 변경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바울의 여행계획 변경은 대적자들의 표적이 되어 바울이 일관성이 없고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의 신뢰받을 수 없다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바울은 자신을 악한 감정을 가지고 공격했다가 후 일에 교회 전체로부터 징계를 당한 교인을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셋째로, 바울은 사도로서의 사역 속성과 그 사역을 위한 자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바울의 사도자격보다 우월하다고 자랑하던 거짓 지도자들의 영향으로 바울의 신뢰성은 재검토 되었으며 점차 많은 교인들로부터 거부당하게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 리더십이 하나님 앞에 합당함을 분명히 밝히기를 원했다. 바울의 사도직 변호는 고린도후서의 초반부를 적는 주요동기가 되었다. 넷째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루살렘 신자들을 위한 구제연보에 도움을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 썼다. 반면 10-13장에서는 바울의 사도직 권위 변호가 보다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바울은 10-13장을 추가로 적음으로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과 그들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다시 수용할 것을 당부한다.
<바울이 처한 상황>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다”(7:5). 우선 사도 바울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환란에 처해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를 기록하기 전에 이미 무서운 환란을 당했다. “우리의 모든 환란”(1:4; 7:4)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1:8)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1:8) ”살 소망까지 끊어짐”(1:8)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음”(1:9) ”큰 사망”(1:10). 그리고 11:23-27에서는 그가 겪는 모진 환란을 길게 서술한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더 힘든 것은 교회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당한 수 많은 환란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다”(11:28)라고 고백한다. 바울은 물질적인 부족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예루살렘과 유다 교회들 때문에 상심해 있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에서 마음이 몹시 불편하였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괴롭힌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는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에 대해 손해감정과 박탈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서(7:2; 12:14)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다(6:11-12; 7:2). 둘째로, 고린도 교회에는 사도바울에 대한 대적자들이 있었다. 대적자들은 진리를 어지럽히는 행위(2:17; 4:2)와 사도를 공격하는 행위(10-12장)를 하였다.
<내용개요>
- 서론(1:1-14)
- 본론(1:15-12:13)
1) 고린도 방문의 포기이유 설명(1:15-7:16)
① 본래의 여행계획(1:15-24)
② 근심의 단락1(2:1-11)
③ 향기의 단락(2:12-17)
④ 자천의 단락(3:1-7:4)
⑤ 근심의 단락2(7:5-16)
2) 성도를 섬기는 일(8:1-9:15)
3) 대적자들과의 싸움(10:1-12:13)
3. 세번째 고린도 방문계획(12:14-13:10)
4. 결론(13:11-13)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바울의 적대자들>
우리는 고린도후서를 읽으면서 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에서 그렇게 힘든 싸움을 행하는지에 대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출현한 그의 적대자들을 “거짓 사도들” “속이는 일꾼들”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 자들”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극력하게 규탄한다. 이것은 그들의 존재가 고린도 교회의 건강한 모습에 얼마나 치명적이 악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해서 하는 말임에 분명하다. 그들은 고린도 교회에 침입해서 바울의 사도적 귄위보다 자신들의 사도적 권위가 우월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천서를 제시하고 그들의 웅변술과 선교적 성과, 환상체험, 기적등으로 수집된 특별한 지식을 말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바울을 비난했는데 그가 허약하고,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기술이 부족하며, 거의 항상 어려움을 겪는 악인이며 고린도 교회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을 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함으로 바울을 고린도 교회로부터 이간질시킨다. 시도로서 당하는 바울의 고난을 크게 부각시킨 것은 아마도 대적자들 스스로가 하나님 때문에 고난으로부터 기적적으로 보호받음으로 바울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암시한다(1:3-11; 4:7-15; 6:4-10; 11:23-29). 그들은 일련의 인상적인 자격, 즉 환상, 무아지경적 체험, 계시 등을 과시했고 세련된 웅변술로 청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면서 바울이 “다른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전했다(11:4).
<주요 메시지>
위에 언급된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에 대해 크게 두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로 바울의 글과 몸을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있고 둘째로 바울의 글과 말을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있다고 선전했다(10:10). 실상 사도바울은 편지의 내용이 힘있는 만큼 몸이 건강하지 않았고, 편지의 내용이 힘있는 만큼 말에 능숙하지 못했다. 사도바울은 몸이 연약한 사람이요 말이 어눌한 사람이었다. 사도바울 자신도 몸이 “약하다”(11:21)는 것과 “말에 부족하다”(11:6)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적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연약한 몸과 어눌한 말로라도 복음에 합당한 삶과 사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울이 진정 지적하고 교훈하고자 했던 내용이 무엇일까? 무엇이 한 사람을 가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바울은 대적자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육체적인 강함을 말한다. 그들은 고린도 교회 청중들의 문화적 관습과 기대에 부응해서 “강함과 위대함”을 추구했다. 그것은 세속적 가치였다. 따라서 바울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강함과 위대함”을 추구하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라 “다른 예수”이고 “다른 복음”이고 “다른 영”(11:4)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청산시키려 했던 바로 그 분위기와 열기인 “경쟁, 서로 비교하기, 은사에 대한 자랑, 앞서기 위한 업적의 쟁취”를 부추기면서 그 자리에 오르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바울과는 달리 화려한 외적인 모습과 사람들에게 서 오는 인기 위에 그들 자신을 세우고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그들을 그러한 근거로 평가해 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십자가를 가렸고 인간의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둔감하였다. 세상의 가치들만 반사하고 재확인시킬 뿐 십자가의 힘을 무력화시켰다. 반면에 바울은 어떠한가? 바울은 자신의 인간적인 부분, 연약함, 사도로서 부적합해 보이는 외적인 부분들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바울은 보잘것없는 질 그릇인 자신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대적자들이 인간의 강함과 자기 자랑적인 일에 몰두하는 순간 바울은 연약한 그릇으로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전적으로 의탁한다. 그래서 그는 고난을 말하고 어려움을 말한다. 그의 연약함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왜 일시적으로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대적에 의해 휘둘렸는가? 그 당시 고린도 지역에 편만해 있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의 연약함과 자신들의 강함을 비교하는 대적자들의 소리에 현혹되어서 잠시 바울을 의심하고 배척했다. 바울은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신의 고난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자기의 약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것은 곧 바울의 길일뿐 아니라 예수님의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강함으로 자신을 포장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멸시당하시고 세상의 눈에 무가치한 메시아처럼 죽음의 자리에 처하셨다. 하나님의 목적에 순종하셔서 예수님은 사람이 흠모할 만한 외적인 표시와 가치들을 내려놓으시고 수치의 자리인 십자가의 길을 택하시지 않으셨는가? 주님의 메시아 되심과 바울의 참된 사도됨의 표시는 강함과 세상적 위력을 발휘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절대 아니었다. 예수님과 바울이 그의 적대자들보다 더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은 사실이 그들이 참된 하나님의 일꾼이었음을 증명했던 것이다. 요즈음의 성도들은 혹시 “강함과 위대함”의 신학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 십자가의 길까지 낮아지셨던 주님과 그 길을 따라감으로 약함속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려 분투했던 바울의 자취를 따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일시적으로나마 세상적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세상적 위력을 표명하는 거짓 지도자들에게 현혹되어서 바울을 멀리하고 복음에서 벗어났었다. 이제 우리를 돌아볼 차례이다. 과연 우리는 이 시대를 풍미하는 세속적 기준인 “강함과 부요함의 신학”에 빠져 있는가? 아니면 이러한 풍조에서 자유함으로 주님과 사도들이 걸었던 겸손과 약함을 본받음으로 말씀 앞에서 부서질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까?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