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디모데전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
<상황>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18세기 중엽이래 목회서신이라고 불리웠는데 그 이유는 이 문서가 교회를 이끌어 나아가는데 필요한 지침, 즉 교회내 “목회직분”의 올바른 수행을 위한 지침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목회서신을 썼을까? 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행9:1-9)은 바울 사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고 삶의 방향이 급진적으로 수정되었다. 그 후 바울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식하고 가장 열정적으로 교회를 알리는 자가 되었다. 수 년간의 침묵이 지난 후 바울은 초대교회의 이방인 선교에 동참하도록 임명되었다(행11:25-28). 그는 빠른 시간내에 이방인 선교의 지도자가 되어 주변에 디모데와 디도를 포함한 동역자 집단을 모았다. 바울은 직접 개척한 교회를 책임졌지만 어떤 임무들은 그가 신뢰하는 동역자들에게 위임했다. 이는 바울의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여러 번의 투옥과 다양한 질병들, 그리고 노령을 겪으면서 특히 더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디모데전서의 삶의 정황은 사도시대와 사도이후시대의 연속성을 제공하고 기독교신앙의 정통 메세지를 전수하며 교회행정을 위한 건전한 원리를 제공하려는 바울의 의도가 담겨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목회하고 있던 디모데로부터 당시 에베소교회의 상황들을 듣고 젊은 지도자 디모데에게 어떻게 복잡한 상황속에서 바르게 신앙지도를 할 것인가를 알려줄 필요를 느낀다. 어떤 상황이었을까? 먼저 바른 교훈(1:10; 4:6; 6:3)과 다른 교훈(1:3; 6:3)의 마찰이 있었다. 다른 교훈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후 끼어든 사상인데 에베소에서 선생이 되려는 몇몇 사람들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여 잘못된 율법관을 가르치며(1:7-8) 결혼을 금하고 특정음식을 먹지 말라는(4:3) 금욕적 삶을 주장했다. 또한 바울이 대적자들은 이렇게 바른 교훈을 단절하고 다른 교훈을 삽입하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세웠다. 먼저 시도한 것이 사도바울에게서 사도의 권위를 벗겨 버리기 위해 바울이 본래 훼방자이며 핍박자이고 폭행자였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하나님의 일군이 될 자격이 없다고 증명하려 한듯하다(1:3). 또한 바울의 동역자이며 후계자인 디모데를 공격하고 다른 교훈에 동조할 것을 요청했다(4:7). 그리고 디모데의 연소함을 지적한다(4:12). 따라서 이러한 상황속에서 디모데를 견고히 세워주고 뿐만 아니라 바울 사후의 교회체계의 공고한 정립을 위해 목사나 장로, 그리고 집사에 대한 자격 기준을 알려줌으로 교회직분자들을 온전하게 세우도록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 교회에 과부를 돌보는 일들과 같은 구체적인 이슈가 발생했으므로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조언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
<기록목적>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바울사도는 거짓교사들의 도전에 대해 1장과 4-6장에서 기술하지만 2-3장에서는 전반적인 행정문제에 대해 보다 조직적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바울은 사도시대에서 속사도시대로 넘어가는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지녀야 할 지도자 및 성도들의 덕목을 중점적으로 이야기 한다. 따라서 이 서신은 에베소 교회를 섬기고 있는 디모데에게 주어진 권고이지만 하나의 지역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 전체교회에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영구적인 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디모데전서를 기록한 목적은 디모데에게 거짓교사를 다루는 방법을 제시하고 교회의 영구적 중요성에 관한 여러 문제들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려는 바울의 의도에 의해 기록되었다.
<수신자>
수신자인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마음과 사역을 함께 나누는 사이였다. 바울은 디모데를 갈라디아(지금의 터키)의 로마지방 일부였던 루스드라에서 처음 만났다. 디모데는 이방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신자였고(행16:1-2) 어릴적부터 성경을 배웠다(딤후3:15). 지역교회의 추천을 받은 디모데는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에 동참하여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복음화에 참여한다(행16:2; 17:14-15; 18:5). 또한 그는 바울의 서신중에 여섯 편의 공동저자로 지칭된다. 또한 그는 여러 번 바울의 파견자로 활약했는데 바울은 아덴에서 마케도니아로 그를 보냈으며(살전3:2) 에베소에서 고린도로(고전4:17) 감금의 장소에서 빌립보로 보냈다(빌2:19-23). 그만큼 바울은 디모데를 크게 신뢰했으며 아들과 같은 동역자에게 교회지도자로서 필요한 교훈과 지침을 본서에서 전달한다.
<기록 장소와 연대>
기록장소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만큼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곳은 이 서신이 마케도니아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1:3). 또한 바울이 이 서신을 로마감옥에서 풀려난 후 마지막 사역기간 중에 기록했다면 60년도 초쯤으로 추정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바울이 주후59-61년사이에 로마에 도착했다면 바울은 가택연금에서 61-63년경에 석방되었을 것이다. 유대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바울이 67년에 순교했다고 하고 많은 학자들은 바울이 네로의 박해 전성기인 64년에 순교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아마도 64년전후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개요>
- 서언 (1:1-2) .
- 개인적인 당부(1:3-20).
(1) 거짓교사들의 도전(1:3-11)
(2) 바울의 증언(1:12-17)
(3) 디모데에게 전하는 당부(1:18-20)
3. 공동체 문제(2:1-3:16)
(1) 기도에 관하여(2:1-8)
(2) 여성에 관하여(2:9-15)
(3) 지도자의 자격(3:1-13)
① 감독(3:1-7)
② 집사(3:8-13)
(4) 바울 서신의 목적과 끝맺는 고백(3:14-16)
4. 추가 당부(4:1-6:2a)
(1) 마지막 때의 배교(4:1-5)
(2) 예수그리스도의 선한 종 되기(4:6-16)
(3) 미망인에 대한 가르침과 추가적 공동체 문제(5:1-6:1a)
5. 긴 마지막 권면(6:2b-19)
6. 맺음말(6:20-21)
<주요 메세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속에서 어떤 태도를 견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과연 세상은 우리가 거리를 두어야 할 “그들의 터전”인가? 또한 우리는 세상문화와 관계없이 존재하며 오직 교회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세상은 우리가 접촉해서는 안될 불결하고 심판 받을 “타인의 땅”인가?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어떤 소리에도 끄떡하지 않는 내공으로 세상과 단절하고 용감하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대속에서 최상의 모습을 내비침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신앙에 대한 긍정적 눈을 갖도록 거룩한 파장을 일으켜야 하지는 않는가? 디모데전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운동이 결코 세상사람들에 의해 “경건의 모양만 있는 오만에 빠진 집단의 폐쇄적 신념”이라는 무시와 부정적 평가를 피할 것을 권면한다.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은 주지 않기를 원하노라”(5:14).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6:1). 초대교회는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우상을 혐오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외에는 어떤 신도 숭배하지 않는 파괴적인 전통종교로 인식되어왔다. 그 가운데서 기독교가 과연 로마의 친구가 되어서 로마의 질서에 도움을 주고 로마의 평화에 기여하는 선량한 시민이 될 수 있는가는 기독교운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이슈였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기독교가 그 시대속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바람직한 전략이기도 했다. 이것은 로마의 우상숭배(특히 황제숭배)와 타협해서 믿음의 순수성을 포기하고 혼합주의에 편승함으로 기독교신앙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기독교는 300년동안 우상숭배를 거절함으로 황제숭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신앙의 순결을 지켜왔지만 그 내면에서는 로마사회와 질서와 평화를 지지하고 당대의 윤리와 삶의 기준을 선도하는 설 수 있도록 자신을 담금질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당시의 기독교는 평안과 그 평안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권세에 항거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이것은 비굴하거나 부정한 정권을 옹호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질서를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으로서의 정치권력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로마황제 숭배는 거부했지만 로마의 질서에 순응하고 도움을 주었고 세상의 권위를 인정함으로 전통적 그리스-로마 가정에 나타난 사회질서에도 순응했다. 뿐만 아니라 종들은 상전에 복종할 것을 권면하고 가르침으로 기독교가 당시 그리스-로마 경제의 근간이 되는 노예제도를 흔드는 혁명적 운동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또한 단정한 복장과 외모, 그리고 가사에 부지런한 그리스-로마의 이상적인 “덕스러운 아내상”의 구현법을 디모데전서는 가르친다(2:9-15). 당시의 로마사회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이 아니라 전통적인 사회가치관과 가정 가치관을 존중하고 구현하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세상과 교회 사이를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이것은 역시 교회지도자가 되기 위한 조건에서도 나타난다. 교회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외인에게 선한 증거”를 얻어야 했다(3:7). 초대기독교는 밀려오는 우상숭배 압력과 정치적 탄압속에서도 그들과의 단절속에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하는 각질화를 시도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신앙과 그리스도인 됨은 사회의 선량한 미풍양속에 반(反)하지 않으면서 이웃의 존경과 칭찬과 인정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교회가 내부에서 직분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다. 디모데전서에는 지금의 목사, 장로, 집사직을 세우기 위한 기준이 열거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런 일을 할 때 교회조직과 관련된 활동보다 인품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바울은 목회서신들 속에서 목회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의 생활방식뿐 아니라 교회안의 일반사람들의 품행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여자들(2:9-15), 일반신자들(3:14-15), 젊은이와 노인들(5:1-2), 과부들(5:3-16), 종들(6:1-2), 부자들(6:17-19)을 포함한 모든 신자들의 행동방식을 점검한다. 이러한 행동방식이 교회를 튼튼하고 건강하게 만들뿐아니라 교회 밖으로부터의 칭송과 인정을 이끌어 내는 근본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교회의 실정은 어떠한가? 과연 우리는 교회안에서 신앙 좋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교회 밖으로부터 사람들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일에 성공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세상과 그 속에 사는 일반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넉넉한 도량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세상과의 단절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하지 않는 외딴섬과 같은 존재로 낙인 찍힌 것은 아닌가? 아니면 세상이 추구하는 보편적 선과 양심을 훨씬 웃도는 우월한 도덕성을 통해 세상과의 대화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불신자들을 단순히 멸망 받을 우상숭배자라고만 치부하고 그들과 엇박자를 내는 일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의 참된 의무감을 간과하는 행동은 아닐까?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통해 직분자들을 비롯한 교회 구성원들은 이 땅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선한 행위에 함량미달이 되어서는 안됨을 강조한다. 우리는 우상숭배라는 근본적인 탐욕에 물들어서는 안되지만 이 세상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우리들이 이 시대를 함께 책임지고 가꾸어가는 선한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일에 매진함으로 불신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 불신세계에 대한 의미 없는 장벽으로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선에 우리도 역시 더 큰 갈망과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고 증명함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 이 시대에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취할 선교전략중의 중요한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