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미가서개관 – 하챦은 인간 왕국을 파쇄하는 하나님나라
미가라는 이름은 “미가엘” 혹은 “미가야”의 축약형이다. 여기서 『엘』이나 『야』는 하나님의 명칭을 대변한다. 따라서 미가의 이름은 “주(하나님)과 같으신 신(神)이 어디 있으리이까?”이다. 미가는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활동한 사람이다. 이사야가 66장에 달하는 장대한 이사야서를 남겼음에 비해 미가는 7장에 불과한 미가서를 남겼다. 그러나 미가서에는 구약에서 가장 유명한 본문이 몇 개있다.
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할 것임(4:3-4)
② 베들레헴에서 한 통치자가 나올 것임(5:2) – 예수님의 탄생장소 예고!
③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서 찾으시는 삶의 특징들(6:6-8)
이 것들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본문들이다.그렇다면 미가는 어느 때에 활동했는가? (1:1)을 보면 미가의 활동시기는 유다의 왕들인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이다(B.C750~689). 이 시대의 중간기인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하고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유대로 피난처를 찾아 내려왔다. 예루살렘의 고고학적 기록을 보면 당시에 예루살렘의 인구가 네 배로 증가했음을 추론한다. 이후에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도 한 세기 넘게 지속한다(B.C722~586년). 이제 앗시리아의 영역은 예루살렘 10 마일 밖에까지 미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의 국제상황은 어떠한가?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살만에셀5세에 의해 멸망 당하고, 사르곤2세가 다스릴 때 유다는 반란을 꾀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앗시리아의 왕으로 산헤립이 등극하자 히스기야는(1:1) 바벨로니아의 므로닥 발라단이 이끄는 동맹에 가입한다. 산헤립이 위협했지만(왕하18장) 이사야와 미가의 사역을 통해 히스기야가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남겨 두신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죽게 되자 유다의 통치자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면서 하나님을 배반한다. 이때에 남유다의 내부가 북이스라엘의 내부와 다르지 않음으로 아모스서와 호세아서의 메아리가 동일하게 미가서에도 울려 퍼지게 된다.
따라서 미가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비판에 촛점을 맞춘 첫번째 책이다(아모스서와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 요나서는 앗시리아의 징계와 회복에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미가서의 구조를 살펴보면 총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1-2장), 2부(3-5장), 3부(6-7장)는 각기 ”들으라”로 시작한다(1:2,3:1,6:1).
1부(1-2장) : 전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선언, 그리고 사마리아 멸망과 유대 주민의 포로팀과 황폐를 예언함. 그러나 남은자의 회복을 선언한다.
2부(3-5장) : 이스라엘의 치리자들, 거짓 선지자들, 불의한 재판관들, 타락한 제사장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위대한 통치자를 통한 회복을 전한다.
3부(6-7장) :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법정소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배신하고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거역한 사건을 들면서 불의와 거짓과 강포가 가득한 도시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면서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결국 1,2,3부 공히 하나님의 책망과 채찍에 이은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가 등장하면서 징계와 약속의 패턴을 교차하는 것이 미가서의 특징이다. 즉, 심판과 채찍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개혁과 궁극적인 구원을 위한 수단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미가서가 제시하는 궁극적인 구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정하고 궁극적인 구원이란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사는 것”이라고 교훈한다. 당시 유다에 사는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라, “하챦은 왕국”을 세우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들은 돈과 권력과 명예 등을 추구하는 이방민족의 “하챦은 왕국을 극도로 추구했다. 돈으로 자신의 왕국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굽은 재판을 했고, 거짓예언을 하며 가난한 자들을 억압했다. 심지어 자신의 금전적 유익을 위해 가족도 업신 여기는 이기주의가 팽배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왕국과 정면 대치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인가? 출애굽을 통해서 가나안에 입성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세울 때 하나님의 관심과 기대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오손도손 서로 섬기는 형제우애적 공동체였다. 말씀이 넘치고 상호보살핌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경애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비해 인간의 욕심으로 세워지는 『하챦은 왕국』은 얼마나 값어치가 사소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라 자신들의 하챦은 왕국을 견고히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방향과는 전혀 반대되는 방향이었다.
이렇듯 하나님의 나라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질주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었나?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열방의 문화와 관습을 모방함으로 저급한 문화를 수용하고 열심히 따라갔다. 또한 이런 것에 대한 대응문화의 모범을 보이지 못함으로 오히려 신앙의 변질을 초래했다. 이뿐이 아니었다. 『자신의 하챦은 왕국』의 안전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군사적 발전과 동맹과 요새화를 지지했다(5:11). 이것은 결국 자기중심의 생활로 이웃을 전혀 돌보지 않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헛된 안전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탈한 심각한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하챦은 왕국을 추구하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당시의 예루살렘의 정치, 경제, 문화조직이 하나님 왕국의 조직과 상치되고 있음을 항변한다.
결국 하나님나라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하챦은 왕국을 쌓기 위해 질주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 백성으로서는 이미 죽은 모습이었다. 따라서 미가서에 나타난 하나의 전통적인 표현은 장송곡(funeral lament) (1:8;2:4)이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팽개치고 하챦은 왕국을 세우기 위해 반대편으로 질주하는 유대를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무엇이 죽음의 현상인가? 우상숭배를 통해 하나님 말씀에서 떠남으로 인해 도덕성이 타락하고, 정의와 사랑이 실종되면서 하나님 백성의 특징이 상실된다면 그것이 실제적인 하나님 백성의 죽음이 아니겠는가?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포기하고 하챦은 자기왕국에 집착함으로 영적으로 죽은 이스라엘을 쫓아 내시기 위해 강림하심에서 시작된다(1:3-4). 이것이 징계요. 채찍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가서의 전체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도덕적 순종에 대해 거부함으로 인해 쫓아내심(포로기)은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지만, 미가서에서 우리는 그 어두운 지평너머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인해 새날이 다가오는 희망적 색조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가져오는 한 새로운 왕에 의해서이다. 이 왕국은『하챦은 자기 왕국』을 쌓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인간적 왕의 도시”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품은 유다 족속의 작은 고을인 베들레헴에서 시작될 것이다(5:2-5a).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통해 시작 될 순종과 사랑과 희생과 평화의 새물결은 이 땅에 편만한 『하챦은 왕국』을 파쇄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이다. 바로 베들레헴에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것은 참으로 큰 은혜이다. 보잘 것없는 자기 왕국을 세우기에 급급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이방문화와 방불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리스도를 통한, 또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놀랍기만 하다. 이스라엘의 모든 실패를 초극하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미가서 5:2-5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준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나라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삶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워야 한다. 이로 인해 미가는 베들레헴에 오신 하나님 나라의 첨병 예수그리스도의 복된 소식(5장)에도 불구하고 6장에서는 매우 깊은 고민이 담긴 진지한 질문을 한다. 아마 6:6-8은 당시의 유대사람들에게 자리잡은 제사(예배)에 대한 태도였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할까?(6a)
- 일년 된 송아지(한마리)로 하나님께 나아갈까?(6b)
- 하나님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기름을 기뻐하실까?(7a)
- 내 허물과 죄로 내 자녀를 드릴까?(7b)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할까 에서 시작해서 한 마리의 송아지, 천천의 숫양, 만만의 기름으로 증폭되더니 급기야는 자기 자녀를 제물로 드리는 생각까지 미치게된다.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점증법이 사용된다. 이렇게 제사에 열심이면 만사가 OK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것이 당시 유대의 질문이요, 태도라면 미가의 답변은 완전히 전세를 역전시킨다!
그런 제사는 하나님께 역겨운 것이 되고, 사실은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6:8). 그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경청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다(8:6). “하나님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여기서 미가는 다른 선지자들이 호소하고 선포하는 메시지에 공감한다. 아모스서에 나오는 “정의”와 호세아서에 나오는 “사랑”, 그리고 이사야서의 여호와를 좇는 “겸손한 삶”이 어우러진 삶이 하나님 앞에 진정성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란 언약에 대한 책임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관계할 때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상대하는 성실성을 의미한다. 인자란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타인에 대한 의무이다. 겸손이란 하나님과 함께 행함으로써 하나님과 진실한 교통을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나라에 속한 하나님 백성들의 삶이라는 것이다. 베들레헴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을 회개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예배이다. 또한 이것만이 “하챦은 자기 왕국”을 세워나가는 시대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던질 진정한 도전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미가 시대의 사람들처럼 하챦은 자기 왕국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말씀 안에서 자기 왕국을 해체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왕국의 일원으로 복원되는 것이다. 베들레헴에 나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하챦은 나의 왕국(돈, 지위, 명예, 야망…)”에 사로잡힌 “나”를 무장해제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특징인 정의와 인자와 겸손을 통해서 진정한 삶의 예배를 드리고, 하챦은 인간 왕국에 침탈된 하나님 왕국의 복원과 확장에 투신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지금 어떤 왕국을 확장시키고 견고케 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기심과 죄로 유인된 “하챦은 나의 왕국”을 위해 질주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역속에 이 땅에 침투하고 있는 “하나님 왕국”을 위해 삶을 헌신하고 있는지 말이다. 예수그리스도에 붙잡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월등히 순도 높은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미가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안개처럼 사라질 “하챦은 왕국”을 구축하려다가 인생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지금도 우리를 유혹하는 이 시대의 바벨탑인 “하챦은 자기 왕국”의 구축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지고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누리기 위해 정의와 사랑과 겸손으로 무장된(6:8) 십자가 군병으로 살아갈 때에만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시간 나의 죄성과 연약함과 욕심으로 인해 무의식 중에 형성된 견고한 『나의 왕국』이 있다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미가서에서 울려 퍼지는 우렁찬 메시지와 같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왕국』의 소속자답게 공의와 인자와 겸손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원대한 꿈을 꾸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