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빌레몬서 개관 –시대를 변화시키는 원동력
빌레몬서는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같이 바울이 감옥중에서 기록한 옥중서신이다. 빌레몬서는 헬라어 본문에서 335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가장 짧은 바울 서신이다. 따라서 바울 서신중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 가장 짧은 바울 서신이지만 빌레몬서속에는 개별 가정 교회내부의 삶, 바울의 목회방식, 믿음이 효력을 발휘해야 하는 실제적인 삶의 상황에서 인간관계의 변화를 들여다 볼수 있는 소중한 창문역할이 나타난다. 따라서 빌레몬서는 복음에 대한 열정적인 설명이나, 거짓 교사들에 대한 반박, 일련의 광범위한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제3자인 사도가 두 개인들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기록한 사적인 편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빌레몬, 압비아, 아킵보 뿐만 아니라 빌레몬의 집에 모였던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언급하면서 개인적인 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로 확대시키며 관심을 집중시킨다.
<상황>
빌레몬서에서 가정하는 상황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가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갔다. 그는 도망치다가 어떻게 해서 감옥에 갇혀있거나 가택연금상태에 있는 바울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바울을 통해 오네시모는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지만 한 가지 딜레마에 봉착한다. 이제 오네시모가 바울과 복음을 위한 유익한 자가 되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바울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바울은 그를 동역자로 잡고 싶었지만 로마법에 의하면 종인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야만 했다. 따라서 바울은 법에 따라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게 자유를 주어 자신에게 다시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단순한 노예가 아니라 이제는 빌레몬이 이끄는 공동체가 파송한 일꾼자격으로 바울의 사역을 돕기를 갈망한다.
<기록 연대 및 장소>
빌레몬서를 기록한 연대와 장소를 결정하는 일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골로새서의 기록 장소와 연대에 대한 결정과 연결이 되어있다. 두 서신 모두 디모데가 공동 발신인이며 에바브라(골1:7; 몬23)와 아킵보(골4:17; 몬2)가 언급된다. 또한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그리고 누가가 바울의 동역자에 포함되어 있고(골4:10; 몬24) 골로새서에서도 오네시모를 언급한다(골4:9). 또 오네시모는 골로새 주민이므로(골4:9) 빌레몬도 골로새 주민이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서신은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장소에서 기록되어 함께 골로새로 보내진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빌레몬서는 60년쯤 로마감옥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신자>
수신자인 빌레몬은 오네시모라는 종의 주인이었다. 그는 골로새에 살았고 그의 가정교회는 인근에 있는 세 도시인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폴리스로 구성된 가정교회 연결망의 한 부분이었다. 바울은 그 지역에서 직접 전도를 하지 않았고(골2:1) 아마도 에바브라가 그 곳에서 전도사역을 한 것 같다(골4:12-13). 그러나 바울은 어떤 경로에서인지 빌레몬을 개인적으로 개종시켰다. 그 후에 빌레몬은 바울의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고(1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5,7절). 그리고 빌레몬은 아마도 부유했던 것 같다. 그는 자기 집에서(2절) 골로새 교회 모임을 가졌으며(골4:9) 바울에게 손님방을 제공할 수 있었다(22절).
<개요>
- 서언
(1) 문안인사 (1-3절)
(2) 감사와 기도(4-7절)
2. 본론: 오네시모를 위한 세 가지 호소(8-20절)
(1) 첫번째 호소: 그는 당신과 내게 유익하다(8-11절)
(2) 두번째 호소: 그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수용하라(12-16절)
(3) 세번째 호소: 오네시모를 다시 보내 내 마음이 평안케 하라(17-20절)
3. 결어(21-25절)
<오네시모의 변화>
복음 때문에 갇힌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오네시모는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었다. 오네시모는 위대한 스승 바울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복음을 받은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과 함께 있을 때는 발휘하지 못하였던 숨은 성품과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가 “종 이상”(16절)의 성품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복음이 오네시모를 강하게 변모시켰다. 첫째로 복음으로 말미암은 오네시모의 변화는 사도 바울이 그를 부르는 호칭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가리켜 “아들”(10절), “심장”(12절), “형제”(16절)라고 불렀다. 바울이 어느 누구를 가리켜서도 “자신이 낳은 아들”(10절)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과 더군다나 오네시모가 바울이 “갇힌 중에서”(10절) 낳은 아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오네시모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각별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오네시모를 “심장”(12절)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둘째로 복음으로 말미암은 오네시모의 변화는 오네시모가 맡게 된 역할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가 유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11절)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13절). 유익한 사람으로서 오네시모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사정을 알리기 위하여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보냈을 때 오네시모를 동행시켰다(골4:9). 오네시모는 두기고의 동행자 역할을 충분하게 감당하였다. 두기고는 바울의 개인적인 사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 반면(골4:7) 오네시모는 바울의 주변적인 사정(“여기의 일”)을 보고하는 일을 수행하였다(4:9) .이렇듯 오네시모는 전도자 바울을 만난 이후에 삶과 사역에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주요 메시지>
우리가 빌레몬서를 읽을 때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그것은 노예제도에 대한 바울의 태도이다. 노예제도가 인간의 평등과 인권을 심각히 손상시키는 제도라면 왜 본서에서 바울 사도는 노예제도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지 않았을까? 이 상황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고대 로마사회의 노예제도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고대 로마시대의 노예제도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미국 남부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끌어와 노예로 삼던 제도와는 같지 않았다. 고대 일터에서는 노예들이 원로원의원이나 의사, 교사 및 모든 장인과 수공업 노동자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인종차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복한 땅의 부산물에 기초하였기에 외양적으로 자유인과 별 구별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에 있어서 궁극적인 노예해방은 늘 일어나는 일이었고 대부분 가정의 종들은 30세에 풀려났다. 노예에서 해방되었다고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더 낮은 처지에서 곤경에 처하게 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해방이 된 이후에도 노예들은 종종 그들의 이전의 주인들과 관계를 지속하였다.
그럼에서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7: 21에서 노예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지위와 무관한 그리스도안에서의 평등에 촞점을 맞춤으로써 노예제도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가 어떠한 지를 밝힌다.
무엇을 발견하는가? 하나님 나라는 급진적인 구호나 사상으로부터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시대에 가능한 최선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실천적 현실주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 시대에 사도가 로마제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예해방을 외쳤다고 생각해 보자. 당시 로마사회의 경제가 노예제도에 근거했는데 하루 아침에 뿌리를 뽑으려 했다면 바울은 당시 사회와 당국으로부터 사회를 전복시키는 세력으로 낙인 찍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노예제도가 갖는 비인간적인 면을 깊이 자각하고 노예제도 위에 서있는 체제보다 훨씬 상회하는 도덕적 체계를 제시하고 실행할 때 그 사회는 인간 평등 정신에 위배된 제도를 개혁하고픈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바울을 보라. 그는 결코 단번에 노예제도를 뒤엎겠다는 투지로 로마 사회에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일이고 오히려 유아기 기독교를 파국으로 몰고 갈 행동이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이 만나 복음을 받은 한 인격 인격이 그 마음중심에서 주위 사람들을 진정한 형제자매로 생각하고 대하는 일에서부터 그들의 삶을 새롭게 세우도록 도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와 성도들이 거창한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상황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의 진수를 전달하고 그들이 복음적 기치 속에 삶의 뿌리를 내리도록 도움으로서 이 세상의 변화는 시작된다.
사도바울은 결코 로마시대의 노예제도에 맞서 시대적으로 거대한 산을 붕괴시키려는 불가능한 상황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노예를 해방시키고(빌레몬처럼) 복음에 헌신하게 함으로써 서서히 복음정신이 시대속에 스며들게 하였다. 우리시대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건물을 웅장하게 지어 사람들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거나 대규모 군중집회나 거창한 방식의 종교행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을 경험한 각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방식을 따라 살면서 이 세상의 탐욕적인 삶의 방식과 다분히 결별할 때 비로서 하나님 나라의 침투와 확장을 감격스럽게 체험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 사도인 바울조차도 당시의 시대 상황인 노예제도 자체를 침몰시키려 하지 않고 한 개인 개인의 삶이 복음적 지도에 따라 형성되기를 갈망하고 실천했을 때 시대정신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예가 본 서신인 오네시모이다.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수 받고 가슴이 뛰었던 오네시모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을까? 성경은 거기까지 이야기하지 않지만 교회역사를 통해 전해진 감동 어린 사건이 있다. 주 후110년 경에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가 처형되어 순교 당하기 위해 로마로 가고 있었다. 그때 그는 그의 기운을 돋아주고자 음식을 제공하고 용기를 말해주며 그의 편지를 자신들의 교회로 가지고 가기 위해 그를 방문한 몇 교회 대표를 만나게 된다. 그 중에 한 명이 오네시모였고 그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다.
그는 바울의 섬세한 돌봄과 주인인 빌레몬의 신앙적 관용으로 인해 복음에 헌신하는 값진 삶으로 헌신할 수 있었고 결국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교회지도자로 서게 되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사회의 거대한 부조리의 중심에 직면하면서 그 가운데서 정녕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복음적으로 집중했던 바울이 얻은 결실이었다. 그 이후 기독교교회는 탐욕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로마제국 내에서 참된 섬김과 봉사와 생명력 넘치는 삶이 무엇인가를 거대집회가 아닌 각 개인들과 신앙공동체의 삶속에서 구현시키며 꾸준히 스며들게 했고 결국 시대정신을 전환시키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세속적 시대정신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우리 앞에 일렁거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 각 개인이 복음에 감격하고 복음적 가치가 우리개인과 공동체속에서 숙성되며 그리함으로 이 시대에 거룩한 파장을 안겨줌으로 그들도 우리와 함께 복음에 동참코자 하는 열망의 불을 지필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나로부터 시작해서……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