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단톡방에서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2226〉

찬밥 (문정희, 1947 ~ )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 2004년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버이날 즈음이면 풍수지탄 (風樹之嘆)이라는 고사성어가 절로 떠오르더군요. 이 말은, 나무가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서글픔을 의미합니다. 젊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이 詩는 아픈 몸으로 혼자 찬밥을 먹다가 늘상 찬밥을 먹으시던 어머니를 회상하며, 어머니의 사랑과 가족에 대한 희생적인 삶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詩에서는 특히, ‘찬밥’이나 ‘이 빠진 그릇’ ‧ ‘남긴 무 조각’ ‧ ‘생선 가시’ 등을 인용하며, 어머니께서 자식들을 위해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강조합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이처럼, 가족을 위해 자신은 정작 찬밥을 먹으면서도 따뜻한 밥을 맛있게 먹는 자식을 보며 기뻐하고 흐뭇해 하십니다. 그래서 신을 대신해서, 무제한적이고 따스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는 위대한 존재임을 새삼 알려주는군요. Choi.
*2026.5.8 시드니인문학교실 단톡방에서 최진 대표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