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도서 서평
‘홍목사의 잡기장’을 읽고
(지은이: 홍길복, 2017년 여울목 발행)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제1부 ‘목회의 정의’부터, 마지막 제5부 ‘변혁’까지 꼼꼼하게 읽고 또 읽었다. 나에게 크게 감동을 주었고 새롭게 알게 되고 깨달은 저자의 본문들을 페이지를 명기해 독자들께 소개해 드린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주장이나 입장과 일부 상충되는 나의 주장들도 적어본다. 저자의 저술의 취지, 또는 다른 독자들의 것과 일부 상이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잡기장’이라고 하면 생각날 때마다 아무런 제한없이 이것저것 메모해 놓은 것들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막상 읽어보니 단순한 메모의 차원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깊은 사색과 사유함속에 신학이나 종교학, 정치, 역사, 철학, 심리, 사회, 문화인류, 경제 등에 걸쳐 두루 서술되었고, 그 내용과 의미가 무척 방대하고 깊었다. 시시때때로 변할 수도 있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기록한 글들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같은 주제에 부분적으로 상충되는 듯한 내용들도 간혹 보여, 진의 파악에 약간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 책은 어느 ‘특정 상황’ 속에서 몸소 체득한 경험과 지혜들을 모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특정 상황’이란 의미는 저자가 목사라는 특수한 직업인으로 한국인들과의 체험, 그것도 이민자들, 그중에서도 호주한인 이민자들-특별히 개신교회 교인들과 또 같은 이민교회 목사들과의 관계속에서 저자 스스로의 경험을 통 해 쓰여졌다고 느꼈다.
순수한 한 인간의 정직한 몸부림
글을 읽어 가면서, ‘특정 상황’ 아래 목사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저자의 아픔과 번민, 인내속에서의 체념과 포기, 또 한계상황 속에서 몸부림친 흔적들을 많이 발견했다. ‘나는 졌다. 완패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면 안 된다. 패배보다 더 무서운 것은 좌절이다’(193면). ‘이 고난을 이기면 기쁜 때가 온다. 손실을 통해서 더 큰 축복이 온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비성서적이고 유치한 일인가? 그냥 그대로 당하는 것이 중요하고 값진 일이다’(196면). 연약한 한 인간이 아파하는 정직한 모습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 생활에 기본 틀이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관계보다 나쁜 관계가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삶의 환경과 사회의 구조적인 틀속에서, 나쁜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아픔과 고통의 과정에서 반복해 축적돼 가는 성숙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경험을 통해 증언하는 교훈들과 곳곳에 넘쳐나는 지혜의 말씀들을 우리들을 삶속에 적용한다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나는 굳게 믿는다.
법구경 16장 애호품 쾌락 201에 이런 말씀이 있다.
不當趣所愛(부당취소애)-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아라. 亦莫有不愛(역막유불애)-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아라. 愛之不見憂(애지불견우)-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不愛見亦憂(불애견역우)-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如蜂集華(여봉집화)-마치 벌이 꽃의 꿀을 모을 때, 不嬉色香(불희색향)-그 꽃의 빛과 향기는 그대로 두고, 但取味去(단취미거)-다만 그 맛만 취하고 가는 것처럼, 仁入聚然(인입취연)-인자가 마을에 들어갈 때도 그러해야 한다.
나는 법구경을 읽으면서,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나만의 요령을 터득했다. 사람들을 가려 사악한 무리와는 아예 인연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니다싶은 사람과는 일절 가까이 하지 않는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이야 싫어서 피하면 그만이지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신도들에게 전하는 저자이다 보니, 피할 수도 없이 모든 아픔들을 다 감수하면서 드디어 해탈 도통한 사람이 스스로 자책하는 글들이었다.
‘목사는 가수’(25면)라는 부분에서와, 목회의 본질에서 ‘목회하며 회의와 갈등이 생겨도 웃으며 친절해야 한다. 치사하리만큼 친절하게 웃어야한다’(47면)는 부분 등에선 자조적인 표현들도 있었고, ‘어렵기만한 목회’(26면) 부분에서는 이 시대에 개신교 신도들이 갈구하는 목사는 과연 어떤 분일까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목회-끝도 없는 자기와의 싸움’(30면)에서는 목사란 직업의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고 행복한 직업인이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주는 부분들도 있었다.
목사와 평신도는 동반자적 관계
전반적으로 이 책은 목사(목회자)와 평신도(신도, 교인)를 이분법으로 확실하게 구별해 쓰여진 글들이다. ‘목회란 업무, 고용, 댓가를 기대하는 직업과는 다르다. 평신도들의 직업은 소명의식 없이도 가능하지만 목회란 직업을 넘어서는 소명이다’(54면)라고 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평신도들도 자신들의 직업을 단순하게 업무 고용 댓가를 기대하는 직업의 차원을 넘어, 소명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일에 열심하는 예가 많다. 의사나 교수, 교사들의 경우 이런 평신도들이 특히 많다.
이 책에서는 ‘목회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46면)라고 하지만, 목회자 자신을 그 인간의 한 구성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빠져있는 것 같았다. 목회자와 신도는 하늘나라에서 동등한 시민들로 피차 형제자매의 관계인데, 오늘날 개신교회에서는 이 둘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이 책에서도 곳곳에서 같이 느꼈다. 같은 ‘인간’이라고 말하고(37면), 목사도 목사 이전에 크리스천이다’(38면)라고 했지만, 목사는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사람(쉽고 재미있게)이라고 정의하면서(39면), 신도들을 상대적인 존재로 인식한 결과, 목사와 신도를 ‘갑을’ 또는 대립의 구도처럼 보이고 있다. 신도는 목사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세상을 향해 함께 이루어가는 동역자로, 목사와 평신도는 동반자적 관계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의 본질은 섬김이다. 하나님도 사람도 섬기는 것이 목회다’(47면)라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섬김(serving) 보다는 나눔(sharing)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섬김엔 수직적인 개념이 내포되어 있으나, 나눔은 수평 관계로, 서로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포용하는 행위이겠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나 영국에서 호주로 이민 온 백인들은, 서울로 이사 온 부산 사람을 디아스포라라고 말할 수 없듯이, 이들 백인들은 디아스포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저자의 글(104면)을 읽고 많이 놀랐다. 이는 나의 생각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호주 오지에서 원주민 사역을 하는 동안 ‘이민자’란 정의를 놓고 백인들과 논쟁해 시정해준 경험이 있다. 백인들은 함께 모인 자리에서 무심코 하는 말 가운데,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들을 종종 가리켜 you migrants(이민자 여러분들)라고 표현했다. 나는 어느 날 공식적인 자리에서 좌중의 백인들 몇 사람에게 언제 호주에 왔는가 물었다. 어떤 백인은 10년전 남아연방에서 왔다고 했고, 어떤 백인은 자기 할아버지가 40여년 전에 영국에서 왔다고 해, 당신들도 이민자들이고 우리 모두는 같은 이민자라고 말해주었다.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호주의 간략한 역사를 말하며 6만년 그 이전부터의 토착민인 아보리진들이 native 호주인이고, 다른 모두는 초기 또는 후기 이민자에 속한다고 가르쳐 주어 잘못된 인식을 시정시켜준 일이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사상
저자는 매우 박식한 목사로 뛰어난 설교가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시대에 크게 앞서가는 신학사상과 타락한 종교에 대한 건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다.
‘종교란 신의 문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인간과 인간성과 그 인간들의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까지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다룰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과(108면), ‘종교가 정치보다 훨씬 더 거짓과 속임수가 일반화 되었다’(107면)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 ‘16세기 이후 세상은 달라졌다. 세상은 넓고 우리와 다른 땅, 다른 사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은 꼭 기독교라고 하는 특정한 하나의 종교를 통해서만 자신을 나타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109면). ‘모든 존재의 근원이고 생명의 원천이고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가 독점 하려는 것은 경계해야한다’(108면)는 저자의 사상에 공감하면서도, 오직 예수님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나의 신앙과의 충돌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정치가 공산당이나 민주당의 이념이나 사상에 있지 않고, 국민들 잘 먹고 잘 살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그 본분이듯, 종교도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평안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 본분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111면). 저자는 동성간의 결혼도 수용하는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다. 다양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신봉자이고, 내 중심과 고집이 아니라 상호 인정의 다원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의 적군이 국가권력, 자본주의, 그리고 종교 특히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자본주의와 권력의 변형이며,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한 통속이다’(113면)라는 내용엔 많은 궁금증이 일었고, 큰 충격과 아픔을 느꼈다.
품위있는 삶을 위한 지혜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의미를 찾는 것,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 인지’를 저자와 함께 번민해보며, ‘위대한 스승도, 목사님도, 부모님도, 자식들도, 친구들도, 내가 아닌 남이며,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나 자신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된다’(114~115면)는데 공감했고, ‘인간존재 구성엔 본질상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자각해, 인간을 이해하고 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데 크게 공감했다.
‘욕심과 교만에서 불행해지고, 베품과 내려놓음에서 행복이 오며, 감사하는 마음에서 건강이 오고, 비교할 때 슬퍼진다’(126면)고 저자는 말한다. ‘행복은 소유, 지식, 지위, 건강에 있지 않으며, 참 자유란 메이지 않는 것으로, 초월과 포용이다’라고 했다(128면).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체념이란 자포자기나 허무주의가 아니라, 현재 아는 것과 가진 것만으로 만족하라는 것이다’(140면)라는데 크게 공감했다.
‘사랑이란 무지에서 하는 것’(157면), ‘사랑의 출발은 무지다. 그래서 사랑은 운명이요 숙명이라 할 수 있다. 운명을 바꾸는 힘도 사랑이요, 사랑이 있는 곳에 기적이 생기고, 모든 비극의 치료제가 사랑이다’(152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비가 없는 정의의 시행은 끔찍한 잔인을 초래하고, 정의를 동반하지 않는 사랑은 무가치한 행위이다’라고 했다. ‘짐승은 짐승을 사랑하고 인간은 인간을 사랑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177면)라고도 했다.
‘4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는데, 개미처럼 자기 자신만을 위해 열심하는 사람, 매미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지 만 아무 희망없이 사는 사람, 꿀벌처럼 다른 사람위해 부지런한 사람, 거미처럼 함정 파놓고 남을 넘어뜨리는 사람이 있다’라고 저자의 말을 들으며(177면), 나는 꿀벌같은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른이 되면 늙어 가는 것이 성숙해져가야 한다. 성숙한 어른은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너그러워지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늘 겸손하며 감사해야한다’(199면). ‘은퇴 후에는 시시하게 살아야 한다. 떠들지 말고 나서지 말고 외롭게 살아야 한다’(204면). ‘사람이 늙으면 맛을 잃어버린다. 짠지, 싱거운지, 단지, 쓴지, 맛을 잘 모르게 된다. 사람이 늙으면 세상과 인간을 보는 눈도 흐려진다. 선과 악, 바른 것과 틀린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해탈의 길이며, 도통의 과정이며, 천국에 가까이 온 증거다. 아옹다옹 다투면서, 이것이 옳으니 저것이 옳으니 하는 사람들은 아직 젊은 사람들이며, 하나님 나라와는 관계가 먼 사람들이다’(210면)라고 저자는 표현했다. 무척 공감가는 내용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장애는 두려움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날은 바로 오늘이다. 세상에서 제일 하기 쉬운 일은 남의 결점을 찾는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재산은 자존심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장애는 공포와 교만과 탐욕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실수는 포기하는 것이고, 가장 큰 방해물은 이기주의다. 세상에서 가장 큰 파산은 의욕을 상실하는 것이요, 가장 중요한 교육은 상식을 쌓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나쁜 마음은 남의 성공을 미워하는 것이고, 가장 큰 선물은 용서, 칭찬 그리고 감사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숭고한 때는 죽는 때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랑하는 때다’(217면). 구구절절이 지혜의 말씀들이다.
일독을 권해 드리며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겐 관대한 법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부인하거나 변명을 늘어놓기가 예사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반대이다. 스스로에겐 지나치다싶을 만큼 엄격해 보인다.
‘나의 성격이, 내 엄격함이 나의 걸림돌이 되고, 내 완벽한 기질이 나를 넘어뜨리고, 내 철저함이 나를 실망시켰다’(222면). ‘그때는 왜 그런 일을 가지고서 잠을 못 자고 분노와 슬픔을 삭이느라고, 그리도 애를 먹었던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223면). ‘나는 나이 50이 넘어서 처음으로 사표라는 것을 써봤다. 무엇인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을 처음으로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와 중요성과 교훈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큰 보탬을 준다’(225면). ‘나는 나의 신앙에 따라 행동하거나 살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성실하지도 못한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신앙적으로 다른 인간이 못되고, 인격적으로도 바른 사람이 못된다. 참으로 나는 부끄러운 인간이다. 진짜 나는 말만 잘하는 사람이다’(232면).
저자의 자책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솔직한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누구나 자신을 미화시키거나 합리화시켜 강변하기에 열심인 법인데, 저자는 인간 내면에 누구나 감추고 있는 부끄러운 부분까지도 가감없이 그대로 노출시켰다. 진솔한 저자의 인격에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일독을 권해드린다.
백문경 선교사
은퇴장로, 예장 대신총회파송 평신도전문인선교사(치과의사), 예장 합동GMS, 예장 대신선교대학원, 원고내용 문의: dr_mk_paik@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