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지금이라도 용서를 빕니다 / Rast macht rost / 이 무슨 술주정 같은 소리냐? / In vino veritas. Cum vinum intrat, exit sapienta / 정말 어쩌면 좋을까요?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0) _ 7월 27일

“지금이라도 용서를 빕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입니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과 품격이 드러납니다.
똑같은 내용의 말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천량 빚을 갚습니다. 말 한마디가 죽을 사람 살리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들고, 산 사람 죽게도 만듭니다. 말 한마디가 개인 사이를 원수가 되게도 하고 국가 간에 전쟁을 일으키게도 합니다. 말 한마디가 긴장을 해소 시키고 사랑과 기쁨과 감사를 불러오게도 합니다.
말은 흉기요, 비수입니다.
사람을 찌르고 상처를 내고 상심하게 만들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생수요, 생명이며, 향기입니다. 칭찬하는 말, 격려해 주고 힘내게 하는 말, 사람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는 말은 삶의 에너지입니다.
예전 어른들께서는 자주 일러주셨습니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 중 제일 조심할 것은 ‘말조심’이라고.
인간에게 입은 하나지만 귀가 둘인 이유는, 말은 적게 하고 듣기는 많이 하라는 뜻이라고.
군자는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말조심의 기본 3가지는
첫째, 말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하지 말 것,
둘째, 말로 변명하거나 반박하지 말 것,
셋째, 말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지 말 것이라는 교훈도 받았습니다.
갈수록 말이 말 같질 못한 세상이 되어갑니다. 특히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더 그렇습니다. 정치인들, 학자들, 언론인들, 지식인들, 종교인들까지 품위 없는 말, 막말,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속이 많이 상합니다.
남을 칭찬하지 않으면서 칭찬 받으려는 사람, 남을 배려하지 않으면서 존경받으려는 사람,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정 받으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저는 평생 말로 먹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설교나 강의로 평생 월급을 받았습니다.
제가 했던 말로 희망과 기쁨을 얻은 사람들도 있었을 테지만 반대로 제가 생각없이 던졌던 말로 상처를 받고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40여년 전 설교를 기억하면서 지금도 가끔 저를 만날 때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오래전 제가 했던 말로 크게 상처를 받고 그 때 교회를 떠났다고 솔직히 말씀하는 분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한번 쏟아놓은 말, 지금 와서 다시 주어 담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지금이라도 용서를 빕니다.
프랑스의 한 카페의 벽에는 이런 글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커피’ – 7유로
‘커피 한잔 주세요’ –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주시겠어요?’ – 1.40유로
프랑스어를 몰라서 영어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ustin Simpson씨의 가게에 써 있는 커피 가격표입니다.
Welcome to Cups.
‘One small coffee – $5.00’
‘One small coffee please – $3.00’
‘Hello I’d like one small coffee please – $1.75’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27) _ 7월 28일

Rast macht rost.
(라스트 마크트 로스트)
rast, 쉬다, 잠자다, 죽다, 영어의 rest
macht, 만들다, 만들어내다, 영어의 make
rost, 녹슬다, 부식한다, 무디어진다, 영어의 rust
Rast macht rost.
쉬면 녹이 슨다.
가만히 있으면 점점 못쓰게 된다
Resting makes rusting.
19세기 초엽 프랑스의 과학자, 라마르크 (Lamark)가 그의 책 ‘철학적 동물학’에서 주장했던 ‘용불용설’ (Theory of Use and Disuse)을 저희는 고등학생 때 배웠습니다. 물론 오늘날 진화론에서는 그의 주장에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신체의 유전자설에서는 틀린 이론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쓰는 것은 더욱 더 발달되고 쓰지 않는 것은 점점 더 퇴화된다’는 ‘용불용설’의 기본 이론은 옳다고 봅니다. 기린은 처음부터 목이 긴 동물이 아닌데 높은 나무가지에 있는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자꾸 목을 위로 뻗치면서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지요.
첫째, 모든 물건은 계속해서 사용하면 빛나게 되지만, 않쓰고 묵혀두면 점점 녹이슬고 못쓰게 되어 버리게 됩니다.
둘째, 동물이나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사용하는 부분은 점점 더 발달되지만 사용하지 않게 되면 점점 더 퇴화되어 마침내는 불구가 됩니다. 늙고 나이가 들수록 골고롭게 운동을 해야 할 이유입니다. 힘들다고 않걸으면 마침내는 완전히 걷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 치과의사 선생님은 제가 주로 오른쪽 어금니만 사용하고 왼쪽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을 나무라시면서 오른쪽, 왼쪽을 골고롭게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오른쪽 손만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왼쪽은 점점 더 잘 쓸줄 모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글에는 요즘 엄마들이 예전 보다 현저하게 유방암이 많은 이유는 유방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 즉 아기들에게 모유를 잘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글도 읽었습니다. 하여튼 보이는 사지이던 보이지 아니하는 심장, 허파 등 내장이던 열심히 쓰면 녹이 않습니다.
셋째는, 생각입니다. 머리와 마음도 계속해서 쓰면 점점 더 밝아지고 맑아져서 빛이 나지만 쓰지 않고 접어두면 점점 퇴화되어 아주 무디어 질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지성이 더해지고, 마음 씀씀이를 더하는 사람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성이 발달됩니다. 생각도 버릇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이 깊어집니다. 마음도 쓰는 사람이 더 잘 쓰고 더 깊고 따뜻한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Rast macht rost.
Resting makes rusting.
쉬면 녹이 습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1) _ 7월 29일
“이 무슨 술주정 같은 소리냐?”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아는 커피의 종류만 해도 참 많습니다. 비엔나 커피, 에스프레소, 아이리시 커피, 라떼, 카푸치노, 모카, 아라비카, 아메리카노, 마키아또, 플렛 화이트, 카페오레 등등 참 커피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아침에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 마다 제 아내는 저를 ‘친미파’라고 부르며 자기는 ‘친한파’라고 합니다. 저는 주로 weak long black인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자기는 한국의 세계적 개발품인 믹스 커피, 그것도 유명 연예인의 얼굴이 그려진 국산품 애호가니까, 그리 부른다는 겁니다. 그러다 농담이 진해지면 믹스 커피 애호가는 애국자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저는 매국노로 까지 확전이 되곤 합니다. 은퇴자들이 카페에 함께 가서 커피를 마실 때도 카푸치노파, 라떼파, 아메리카노파가 따로 따로 앉자고 하는 이가 있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도 그룹이나 파가 다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선시대의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부터 구한말의 개화파, 훈구파, 친러시아파, 친서방파를 거쳐 해방 후의 좌익, 우익의 피비릿내 나는 싸움, 그리고 이어진 호남이냐, 경상도냐, 38 따라지냐를 지나 지금도 진보냐, 보수냐, 친미냐, 친중이냐, 친일이냐로 여전히 내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생각해보면 파, 분파가 많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색깔의 다양함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음식이나 음료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맛의 세계를 풍성하게하고, 생각이나 의견의 다양성은 세상을 더욱 더 발전시킵니다. 무엇이든 하나 보다는, 여럿이면 선의 경쟁과 토론을 통하여 우리네 삶을 살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모두 똑같이 냉면이나 자장면이나 카프치노로 통일하면 재미도 없고 발전도 않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든 통일해서 하나가 되는 게 선하고 좋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선입관입니다. 파가 많은 것은 분쟁이고 대립이며 갈등일 뿐이라는데 머물러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 지상주의자들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가장 큰 요인은 같은 파들 끼리, 똘똘 뭉쳐서 자기들끼리만 모든 것을 독식, 독점하고 다른 파는 짖눌러버리고 없애버릴려는 데 있습니다.
요즘 한국사회는 그게 너무 심해져서 안타깝다 못해 겁이 날 정도입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의 말대로 ‘이 무슨 술주정인가!’ 싶습니다.
파벌없는 사회, 파벌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교민사회도, 종교나 사회단체도 다 파벌이 있고, 또 그 파벌의 다양성 때문에 균형과 조화를 만들면서 발전해 갑니다. 모든 걸 다 두둘겨 부셔서 하나로 만드는 것은 전체주의로 가는 겁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 조정, 균형을 이루는 것은 하나의 예술입니다.
자꾸 어느 편이냐, 어느 파냐 묻는 것은 그야말로 술주정입니다.
이해와 관용, 포용과 사랑 !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28) _ 7월 30일
In vino veritas. Cum vinum intrat, exit sapienta.
(인 비노 베리타스. 쿰 비눔 인트리트, 엑시트 사피엔타)
vinum, 포도주, 술, 영어 wine
vino는 vinum의 복수
veritas, 진리, 진실, 사실, truth
cum, 동시에, 함께, 더불어 영어의 with, together
intrat, 들어오다, 들어가다, 영어의 enter 혹은 Inter

exit, 나가다, 출구, 영어도 exit
sapienta, 지혜, 영어 wisdom
In vino veritas.
(인 비노 베리타스)
술 (포도주) 안에는 진리 (진실)이 있습니다.
포도주 자체가 진리나 진실이란 뜻이 아니고, 술을 마시면, 포도주에 취하면 진실을 말하게 된다는 의미로 우리말에 ‘취중진담’과 같은 뜻입니다.
Cum vinum intrat, exit sapienta.
(쿰 베눔 인트라트, 엑시트 사피엔타)
술이 들어가면 동시에 지혜는 나갑니다.
술에 취하게 되면 이성과 생각을 잃게 되어 어리석게 된다는 뜻입니다.
In vino veritas와 Cum vinum intrat, exit sapienta 즉, 술 속에는 진실이 있다는 말과, 술이 들어가면 지혜는 나간다는 이 두 문장은 서로 상충이 되는듯 합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 안엔 진실이 있어!’, ‘취중진담이야!’ 하면서 포도주 예찬론자가 될듯하고, 술 마시는 것을 만류하는 아내들은 ‘술이 들어가 취하면 똑똑하던 사람도 꼭 바보처럼 횡설수설하며 어리석어진다’면서 좀 그만 마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In vino veritas와 Cum vinum intrat, exit sapienta를 반대, 혹은 대립되는 문장으로 보지않고 연속적으로 해석하는 애주가들도 있습니다. sapienta, 지혜, 지식이란 일종의 가식이요, 이성을 이용한 자기 속임수인데 취하게 되면 이런 가식적 지혜는 떠나게 됨으로 사람이 진짜로 진실해져서 사실, 진실, 진담을 말하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취중 진담’, ‘술은 사람을 솔직하게한다’와 ‘술취한 개’, ‘술취한 바보’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은 어디쯤일까요?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2) _ 7월 31일
“정말 어쩌면 좋을까요?”
몇 해 전에 이탈리아 안토니아노 (Antoniano) 어린이 합창단이 부른 ‘예수님 화이팅’이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예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지만, 가사의 여러 곳이 마음을 찡하게 하고 아프게 했습니다.
이 노래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슬픈 일들로 인하여 너무나 상심하시고 괴로워하실 예수님을 향하여 어린이들이 ‘예수님 실망하지 마시라’고 ‘힘내시라’고 화이팅을 외치는 노래입니다. 어린이들은 절망적인 세상의 한복판에서도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이 절망의 세계를 구원해 주실 예수님까지 포기하시면 정말 않되니까, 제발 예수님 ‘힘내시라’고 ‘예수님 화이팅’을 외칩니다.
오늘 우리는 신을 위로해야 할 시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로 말하자면 인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향하여 인간이란 본래부터가 그런 존재인걸 다 아시니 제발 이 세상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힘내시라’고 화이팅을 보내야 할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 역사는 예수님 마져도 손을 쓰실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려 ‘신이 포기하기 직전 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 신을 위로해 드리고 힘내시라고 ‘하나님 화이팅’을 외쳐야하는 시대!
그래서 안토니아노 어린이들은 ‘예수님 힘내세요! 예수님 화이팅! 예수님 우리가 있잖아요! 어른들만 보지마세요!’라고 노래하는듯 합니다.
그 노래의 가사 중에 나오는 귀절입니다.

‘예수님 우리가 매일 밤 예수님을 조금씩 위로해 드리는 거예요. 예수님 화이팅! 걱정 마세요’
‘가난하고 아픈 이들 때문에 마음 아프시지요? 예수님! 그래도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예수님 화이팅!’
‘위에서 보시는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예수님 걱정마세요. 예수님 화이팅!’
살아진 사랑, 망가진 정의, 깨어진 인간성, 부서진 세상,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이 역사 – 그런데 이 모든 것들 보다 더 무섭고, 떨리는 것은 안토니아노 어린이들의 외침입니다.
‘예수님 힘내세요! 예수님 화이팅!’
정말 어쩌면 좋을까요?
답답한 오늘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