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트로트 속에 담긴 인생 / Te hominem esse memento / 그래도 / Ora et labora / 윤동주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6) _ 8월 10일
“트로트 속에 담긴 인생”
(트로트와 인생과 인문학)

근래 한국에서는 트로트가 큰 열풍입니다. 저희도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거의 집안에 갇혀있다시피 지내니까 한국 TV에서 내보내는 트로트 프로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허기야 그깟 정치, 경제, 사회 돌아가는 뉴스들이야 늘 마음을 괴롭게만 하고 스트레스만 더해 줍니다만 흘러간 가요나 새로 유행하는 트로트는 자신이 살아온 삶과 비슷하여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교훈을 깊게 해 주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영어 trot의 뜻은 ‘빠른 걸음으로 걷다’, ‘총총 걸음으로 걷다’, ‘빨리 걷다’, ‘빨리 달리다’, ‘흔들어댄다’는 뜻과 더불어 ‘무도회’ (Dance party)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가요로써 트로트의 문자적 어원은 미국의 dance 음악중 하나인 폭스 트로트 (Foxtrot)라고합니다만, 오늘날 트로트는 순전히 한국을 대표할 정도의 대중음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트로트는 반복적 리듬과 우리나라 남도 특유의 소리와 민요 창법이 아우러진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트로트엔 첫째로 옛 부터 내려오던 동양음악적 요소와, 둘째로 서양 선교사들과 서양 문물을 통해서 전해진 서양음악적 요소와, 셋째로 한국인들의 특유한 음악적 정서, 이 3가지가 어울려져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특유의 음악 장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뽕짝’이라고 하면서 비하 하듯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트로트야 말로 동서양과 우리의 전통이 함께 빚어낸 우리 특유의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는 사의 찬미, 낙화유수, 목포의 눈물,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눈물젖은 두만강을 거쳐, 해방과 6.25를 지나면서는 신라의 달밤, 전우여 잘 가거라,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넘어, 엘리지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이미자를 비롯하여 최희준, 김상희, 현미, 한명숙, 문주란, 남진, 나훈아, 송대관, 조용필, 최헌, 현철, 이씨스터즈, 은방울 자매, 김수희, 심수봉, 주현미, 김연자 등등등… 정말 수많은 가수와 작곡가들을 거쳐 지난해 TV 조선의 ‘내일은 미스 트롯’과 금년의 ‘미스터 트롯’에 까지 이르른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인문학친구들도 나름대로의 자기 인생음악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지난날 행복했던 순간, 슬프고 아팠던 때, 그러면서 꿈과 웃음, 희망과 내일을 약속해 주었던 ‘인생가요’가 생각나실 것입니다.
4년전, 우리 인문학교실을 시작할 즈음, 우린 이진관이 불렀던 ‘인생은 미완성’을 마치 우리 모임의 주제가인양 자주 부르곤 했습니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먿는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해
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걸
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마는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제 기억으로는 가장 오래된 인생 가요 중엔 ‘희망가’가 먼저 떠오릅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희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니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원래 이 노래는 영국에서 댄스 노래로 시작되어 후에 미국의 찬송가에 The Lord into His Garden Comes로 편입되었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 ‘희망가’로 대중화되어 식민지 시대 나라 잃은 설움과 아픔을 표현하였댔습니다.
이 노래는 교회에서도 많이 불렸는데 저처럼 보수적 기독교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6.25 후에도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서로 사랑하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우리 할일이 무엇인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형제여 서로 사랑하자
우리 서로 사랑하자
사랑의 주님 계명지켜
힘써서 사랑하자
그 다음 제 나이 또래들은 대학생 때인 60년대 초엽, 한국의 냇 킹 콜 (Nat King Cole)이라 불리우던 최희준의 ‘하숙생’을 잊지 못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요즘 TV를 통하여 새롭게 떠오르는 트로트들도 우리네 살아온 인생길들을 비춰 주면서 마음을 아련하게 합니다.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예전 김광석 때 보다 더 눈물나게 합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주던 때
어렴푸시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
어렴푸시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 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기
여보 안녕히 잘 가시기
정말 이게 인생이고 이게 인문학이네요. 추억, 눈물, 사랑, 이별…..
장민호의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 울다 웃다해 봤고
그깟 돈 있다 없다해 봤고
산넘어 산, 쉬지만은 않더라
사는 게 드라마더라
병 주고 약도 주던 세월아 네월아
별의 별일 많구나
드라마 내가 내가 드라마
그 사연을 누가 알텐가
설탕같이 달다가
커피같이 쓰다가
아 아 아 우리 인생 드라마
사랑에 울다 웃다해 봤고
그깟 돈 있다 없다해 봤고
산넘어 산 쉽지만은 않더라
사는 게 드라마더라
병도주고 약도주던
세월아 네월아
별의 별일 많구나
드라마 내가 내가 드라마
이 사연을 누가 알텐가
설탕같이 달다가
커피같이 쓰다가
아 아 아 우리 인생 드라마
아 아 아 내가 내가 드라마
내친 김에 영탁의 ‘막걸리 한잔’까지 더 불러봅니다.
온 동네 소문났던 천덕꾸러기
막내 아들 장가 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 우리아들 많이 컷지요
인물은 그래도 내가 낫지요
고사리손으로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아버지 생각나네
황소처럼 일만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 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 달래주시며
따라 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아장 아장 아들놈이 어느새 자라
내 모습을 닮아버렸네
오늘 따라 아버지가
보고싶어서 그날처럼
막걸리 한잔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컷지요
인물은 그래도 내가 낫지요
고사리 손으로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
아버지 생각나네
황소처럼 일만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버지 처럼 살기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트로트와 인생.
트로트와 인문학.
당신의 인생 가요, 인생의 고백은 무엇인가요?
오늘 저녁엔 막걸리 한잔 따라놓고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 친구, 그리고 나를 만나 인생노래 한번 불러보고 싶네요.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어느 분이 위 6개의 인생노래를 카톡방에 올려주셔서 같이 부를 수 있게 해 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라틴어 인문학 (31) _ 8월 11일

Te hominem esse memento.
(테 호미넴 엣세 메멘토)
Te, 너는, 당신은, 영어 you
hominem, 인간, 사람, 영어 human
esse, 이다, 있다, 영어 be, is, are, 담배이름에 ‘엣세’가있음
memento, 기억하라, 잊지마라. 영어 remember
Te hominem esse memento.
(테 호미넴 엣세 메멘토)
너는 인간임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 ‘너는 죽는다는 것을 잊지말고 기억하라’는 경구와 함께 이 Te hominem esse memento도 잘 알려진 라틴어 문장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당신은 신이 아니다. 당신은 신적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당신은 완전하거나 거룩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점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 처럼 살아야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단순히 하나의 인간일 뿐입니다. 자꾸 하느님 처럼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당신은 모순과 약점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일 뿐입니다’라고 일러줍니다.
‘너는 신이나 천사가 아니다. 너는 전지전능하고 영존한 존재가 아니다. 너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다’ 이것이 Te hominem esse memento – 너는 인간임을 잊지말고 기억하라 – 는 경구입니다.
둘째로 이 라틴어는 이런 사실도 상기시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돌멩이 같은 무생물이나 이성이 없는 짐승도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의미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함부로, 생각없이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않됩니다’ 인간이란 신성하거나 거룩한 존재도 아니지만,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존재도 아니라는 점을 상기 시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Te hominem esse memento.
제발 하느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듯이 착각하고 위선떨지도 말고, 반대로 짐승같은 인간으로 추락해서도 않된다는 렛슨입니다.
셋째로 그럼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임을 잊지말고 기억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Te hominem esse memento란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3가지 쯤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요, 이성적 존재라는 점입니다. 이는 그리스적 인간 이해의 기초입니다. 둘째로 인간은 법과 질서, 상식과 양심을 존중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이는 아마도 로마식 인간이해의 기본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인간은 지극히 유한하면서도 영원을 그리워하고, 사랑과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이는 히브리적 인간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Te hominem esse memento라는 라틴어 – 너는 인간임을 잊지말고 기억하라 – 는 말 속에는 이성적 존재, 책임적 존재, 종교적 존재로써의 인간임을 잊지 말고 사람은 사람으로써의 위치와 자리를 잘 지켜야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7) _8월 12일
“그래도”
저희는 지금 ‘세계에서 제일 작은 대륙이면서 동시에 제일 큰 섬’이라 불리우는 호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Australia is the smallest continent and the biggest Island in the world !
참 고맙게도 저는 이제까지 아름다운 섬들 여러 곳을 방문했습니다. 넓이가 거의 남한에 버금가는 타스마니아를 비롯하여 뉴질랜드의 남섬, 북섬, 남태평양의 바누아트와 뉴칼레도니아로부터 타히티와 보라보라, 그리고 하와이까지 다 돌아보았습니다.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일본, 영국은 물론, 지중해의 크레타섬, 밧모섬 등을 포함하여 한국의 제주도 까지 참 많은 섬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꼭 가보고 싶은데 아직 가보지 못한 섬이 하나있습니다. ‘그래도’라는 섬입니다.
서강대 국문과 교수로 있다가 은퇴한 김승희 시인이 쓴 시 한편을 소개할께요.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묵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한다고
천사같은 착한마음,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뇌출혈로 쓸어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 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 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 서리라
어디엔가 근심 걱정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섬, 그래도,
거기서 만날 수 있으리라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고 싶은 섬,
그래도.
시를 읽고 쓰면서 눈물과 기쁨이 겹쳐졌습니다. 김승희님은 제주도, 완도, 거제도, 강화도, 백령도, 울릉도, 독도 처럼,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 마음 속에 든든히 자리잡고 있는 ‘그래도’를 찿아내셨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가슴은 아리고, 눈물은 흘렸지만, 그래도 때문에,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그래도가 나를 행복하게해 주었습니다.
캄캄한 현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답답함 속에서도 ‘아 그래도가 있잖아!’
참고 견디고 웃으면서 ‘그래도’ 위에 반짝이는 별빛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웃는 사람들,
그래도 져주는 사람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죽지 않는 사람들,
그래도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들
그래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도 끝까지 말하는 사람들,
데릭 레드몬드 (Derek Redmond)와 그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
오늘도 You raise me up을 불러주는 마틴 허켄스 (Martin Hurkens)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린 ‘그래도’, ‘그래도’를 조용히 속삭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32) _ 8월 13일

Ora et labora.
(오라 에트 라보라)
ora, 기도하라, 영어pray, 명령 동사 원형도 ora, 기도하다. 명사는 oratio, 기도, 간구
et, 그리고, 동시에, 영어 and, also
Labora, 일하라, 노동하라, labora, 일하다가 원형이고 labora는 명령형. 영어 work, labour
Ora et labora.
기도하고 일하라.
때로는
Ora et labora, labora et ora.
기도하고 일하며 일하고 기도하라.
영어로는 Pray and work.
이 라틴어는 5세기 이탈리아가 배출한 위대한 수도사 성 베네딕투스 (S. Benedictus, 영어로는 St. Benedict)가 처음 시작한 세계 최초이며 가장 유명한 ‘베네딕투스 수도원’의 모토이며 규칙중 첫째가는 것입니다. 기도와 생활을 둘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보고 ‘기도하면 일하고 또 일하면 기도해야한다’는 신행일치를 가르치는 명문장입니다. 오늘날 개신교, 특히 한국기독교의 기도원은 오직 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통성기도 등만 강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도 ‘기도와 삶’을 하나로 보고 강조했는데 한국교회가 기도만 유독 더 강조한 것은 신앙과 생활을 유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게 했습니다.
Ora et labora, labora et ora.
기도하며 일하고 일하며 기도하라.
(어제 김용강 선생님이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기도다’라는 문장을 물으신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라틴어 ‘명문장 모음’에는 물으신 귀절이 없는데 전현구 목사님께서 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오늘 배운 단어를 가지고 직역한다면 이렇게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Oratio est Labor, Labor est Oratio.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기도다.)
오늘의 라틴어 인문학
Ora et Labora, Labora et Ora
(오라 에트 라보라, 라보라 에트 오라)
Work and pray, Pray and work.
오늘 하루의 일과 노동이 모두 그냥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는 기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8) _ 8월 14일
“윤동주”
내일은 8.15 광복절 7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감격스런 이 날을 앞에 두고 민족시인 윤동주를 생각합니다. 1945년 2월 16일, 조국의 해방을 꼭 6개월 앞에 두고 그는 일본 후꾸오카 형무소에서 원인을 모르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27세의 나이였습니다. 이후 그의 시신은 그가 태어난 고향, 북간도 룡정에 묻히었습니다.
저는 1990년대 이후 3번 윤동주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했습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시는 그의 누이동생 윤혜원 권사와 매제 오형범 장로님을 따라 갔댔습니다. 그때마다 우린 육신은 여기 없지만 영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 윤동주 앞에서 성경도 읽고 기도도 받쳤지만 동시에 그가 남겨놓은 시들 중에 몇 편을 골라 읽기도 했습니다. 제는 3번의 성묘 때마다 그이 앞에서 그가 자작시를 낭송하듯이 대신 대독하곤 했습니다. 광복 75주년, 그가 간지 또한 75주년이 되는 날 아침, 다시한번 윤동주 앞에서 읊었던 윤동주의 시를 옮겨 쓰면서, 인문학친구들과 함께, 두고 온 고국을 그리며 인생, 자아, 평화, 자유, 그리고 신앙을 묵상하는 아침이고 싶습니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찿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 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짧은 일생, 자기를 찿아 헤매였던 사람, 자기를 통하여 민족과 조국, 인간과 세계, 자연과 하나님을 보려고 몸부림쳤던 지식인, 늘 자신을 가장 부끄러워하며 한없이 수줍어했던 시인, 자신에 대해 정직해 지려고 자신과 싸웠던 지성인, 십자가를 바라보며 괴로워했으나, 끝내 그 십자가를 잘 지고 간 참된 그리스도인, 그 윤동주가 많이, 아주 많이 보고싶은 8.15 입니다. 오늘은 영화 ‘동주’에서라도 그를 만나야할까 봅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