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친구 (friendship)는 ‘한 배를 탄 사람들’ / Quo vadis Domine?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 우린 왜 공부하나요? / Quid est veritas? (진리가 무엇이냐?) /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함께 찾아온다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3) _ 5월 25일
4년전 시드니인문학교실을 시작하던 첫날, 우린 서로를 친구로 부르자고 했습니다. 남녀와 나이, 교육과 배경을 떠나, 모두 친구가 되어보자고 했습니다.
우정이라는 말 friendship은 friend + ship을 합하여 ‘한 배를 탄 사람들’이라는 뜻이니 인생의 같은 배를 타고가는 친구처럼 생각하고 대하자는 다짐이었습니다.
친구는 다른 사람을 내 친구로 ‘만들어서’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의 친구가 ‘되어 줌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이해 – 생활감정의 동질성,
진심 – 정직하고 바른 생각,
겸손 –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태도,
트로트에 마음을 엽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자네는 좋은 친구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 두 사람 전생에 인연일꺼야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같은 친구야
아 아 아 사는날 까지 같이가세 보약같은 친구야
사랑도 해 봤고 별도 해 봤지 사는 것 별거 없더라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 우리 둘이서 웃으며 살아보세” (‘보약같은 친구’ 중에서 _ 진시몬)
친구들이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코로나로 만나진 못해도 아침에 눈을 뜨면 린필드 도서관과 거기 같이 앉아있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나누게 되니 참 좋습니다.
Carpe diem!
라틴어 인문학 (9) _ 5월 26일
Quo vadis Domine?
쿠오 바디스 도미네
(고전 라틴어 발음으로는 ‘쿠오와디스 도미네’임. 과거V는 U에서 왔음으로 ㅂ이 아니라 ㅇ으로 발음했음. 예컨대 카이사르의 명언, Veni Vidi Vici 도 베니 비디 비키가 아니라 예전에는 웨니 위디 위키로 발음했음. 또 라틴어를 포함하여 히브리어, 헬라어 등 대부분의 고전어에는 . , ? ! 등 기호가 없다가 훗날 개발되었음.)
Quo – where, 어디로 (부사)
Vadis – vado, 가는가의 현재 진행형으로 going
Domine – Dominus의 호격.
(Dominus는 주인, 주님, 지배자, 군주, 영주의 뜻으로 영어의 Lord에 해당됨. 여기에서 나온 영어로 dominate – 지배한다, 다스리다. dominant – 위대하다, 뛰어나다. 한 가지 더, BC는 영어의 Before Christ로 ‘주전’이지만 AD는 영어가 아닌 라틴어로 Anno Domini의 줄인말.
Anno는 영어로 Year, 해, 년임. Domini는 주님. 그럼으로 AD는 ‘주님의 해’ The Year of our Lord가 됨)

하여튼 Quo vadis Domine는 영화나 폴란드의 소설가 Henyk Sienkiewicz의 작품으로 넓리 알려졌으나 실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13:36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내가 주를 위해 목숨이라도 버리겠나이다’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바로 Quo vadis Domine입니다. 신약 외경중 하나인 베드로행전 – Acte Petri – 에 의하면 네로황제 때 박해를 피하여 로마를 벗어나 도망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서 그와 마주친다. 그때 베드로가 다시 예수님께 묻는 말도 바로 Quo vadis Domine였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Veni Romam iterum crucifigi.
Veni 간다,
Romam 로마로,
iterum 다시,
crucifigi 십자가를 지다.
Veni Romam iterum crucifigi ‘나는 다시 십자가를 지러 로마로 간다!’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4) _ 5월 27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우고, 익히고, 깨달으면서 살아갑니다. 인생살이란 하나의 공부입니다.
학교에 가고, 책을 읽고, 실험, 실습, 경험을 하며 배웁니다.
신문이나 TV를 보고, 유투브나 컴퓨터 검색을 통해서도 공부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각종 SNS나 지금 쓰고 읽는 카톡도 다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 – 취업, 연애, 사업, 만남, 이별, 애기낳고 기르는 것, 돈벌고, 돈쓰고, 사람 만나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는 등, 인생의 성공과 실패 – 이 모든 것이 ‘인생공부’입니다.

공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린 왜 공부하나요?
꼭 목적이랄 것이 없다면, 그럼 공부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우린 공부를 통해서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나요?
성공과 출세? 그에 따른 부귀와 영화?
기쁨과 행복? – 모르던 것을 알고,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알고, 좁게 알았던 것을 넓게 아는 기쁨과 만족?
“야 공부해서 남 주냐?” – 어렸을 때 어른들이 자주하셨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그 어른이 되어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럼요, 공부해서 어디 내가 갖나요? 공부는 남 주려고 하는 거예요!”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바 마사야가 쓴 “공부의 철학”중 몇 귀절을 함께 나눕니다.
“공부의 목적은 얻기위함이 아니라 버리기 위함이다”
“공부하는 이유는 자유스러워 지기 위해서다”
“공부는 어설픈 똑똑함에서 벗어나 진정한 바보가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결국 완벽한 공부란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데 있다”
“우린 겸손해지기 위해서 공부한다. 그리고 공부하면 반드시 겸손해진다”
여기까지 읽고나니 ” 난 정말 아직도 공부가 참 먼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추천도서 –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책세상, 2018
라틴어 인문학 (10) _ 5월 28일
Quid est veritas?
(쿠이드 에스트 베리타스)
what is truth?
진리가 무엇이냐?
성경 요한복음 18장38절에서 총독 빌라도가 피고 예수에게 던진 질문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예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성서 요한복음 8장 34절에서 예수는 말씀했습니다.
Veritas liberabit vos.
(베리타스 리베라비트 보스)
truth liberate you.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 너희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또 같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Ego sum via et veritas et vita.
(에고 숨 비아 에트 베리타스 에트 비타)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Veritas를 중심으로 하는 school motto 중
연세대, Veritas liberabit vos.
서강대, Oboedire veritati. (진리에 복종하라, Obey to the truth)
서울대,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 The truth is my light)
참고: Vulgata 성경이란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 라틴어 성경입니다. vulgata란 ‘대중적’ ‘서민적’이라는 뜻으로 평이한 서민 라틴어번역판이라는 의미입니다. 382년 교황 다마스1세의 명에 따라 히에로니무스 (Hieronymus, 영어로는 Jerome)가 번역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적 표준성경입니다.
신약은 그리스 성경에서 직역했고, 구약은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중역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사건이 그 후 그리스어를 계속해서 사용한 동방정교회와 분열되는 큰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5) _ 5월 29일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함께 찾아온다”
독일이 낳은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이 남긴 말이라고 제 잡기장에 쓰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행복 속에도 슬픔이 있고 눈물 가운데도 기쁨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그 무엇이든 따로따로 제각기 나누어 있는게 아닙니다.
당신과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안에 당신이 있고 당신 속엔 제가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합니다.
한번은 행복하고, 또 한번은 불행한 것이 인생입니다.
한번은 불행했다가 또 한번은 행복해지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행복하기만 하거나, 불행하기만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할 때는 행복해지고, 미워하면 불행해집니다.
이해하면 사랑해지고, 오해하면 불행해집니다.
낮아지면 행복해지고, 교만하면 불행해집니다.
나누고 베풀면 행복해지고, 욕심과 이기심에 빠지면 불행해집니다.
부디 행복한 나날이 되시옵소서.
제 또한 행복한 삶이되길 바라며, 자신을 가다듬습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