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대한민국 문학가 박화목 (朴和穆, 1924 ~ 2005) 필명 ‘박은종’ 시 모음

박화목 (朴和穆, 필명: 박은종, 1924년 2월 15일 ~ 2005년 7월 9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아동문학가로 본명은 화목이고 은종 (銀鐘)은 필명이다.
황해도 황주에서 출생하였으며 만주로 건너가 봉천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41년 《아이생활》에 동시 〈피라미드〉와 〈겨울밤〉이 추천되면서부터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기독교방송국 편성국장·아동문학회 부회장·크리스찬문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2005년 7월 9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시집으로 〈시인과 산양〉 〈주의 곁에서〉 등이 있으며 동화집으로 〈꽃잎파리가 된 나비〉 〈부엉이와 할아버지〉 등이 있다. 또한 가곡 〈보리밭〉, 동요 〈과수원길〉을 작사했다.
♣ 당신이 문밖에
당신이 문밖에 와서 두드렸어도
내가 미처 듣지를 못하였습니까?
당신이 부드런 음성으로 불렀는데
내가 대답을 안 하였습니까?
당신이 흰 눈을 밟고 창 바깥을 지나갔어도
내가 미처 못 보았습니까?
당신이 나를 찾아서 손짓하는 흰 손을
내가 깨닫지를 못하였습니까?
아 서러운 나의 이목(耳目)이여!
마음일랑 안타까이, 당신을
찾아서 헤매길 더하였거늘……
이제 당신은 정녕 문 열고 들어서라
그리고 나의 앞에 고운 얼굴을 보이라
밤과 밤을 이어간 외롬이 그치어
나로 하여금 그대 수정(水晶)같은 이마에 입
맞추기 위하여…….
♣ 과수원길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 4월의 시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망향 (望鄕)
꽃피는 봄 사월 돌아 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
그 어느 산 모퉁길에 어여쁜 님
날 기다리는 듯 철 따라 핀 진달래
산을 넘고 머언 부엉이 울음 끊이잖는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멘가
나의 사랑은 그 어디런가
날 사랑한다고 말해 주려마
그대여, 내 맘속에 사는 이 그대여.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 것일레라…

♣ 9월의 기도
가을 하늘은 크낙한 수정 함지박
가을 파란 햇살이 은혜처럼 쏟아지네
저 맑은 빗줄기 속에 하마 그리운
님의 형상을 찾을 때, 그러할 때
너도밤나무 숲 스쳐오는 바람소린 양
문득 들려오는 그윽한 음성
너는 나를 찾으라!
우연한 들판은 정녕 황금물결
훠어이 훠어이 새떼를 쫓는
초동의 목소리 차라리 한가로워
감사하는 마음 저마다 뿌듯하여
저녁놀 바라보면 어느 교회당의 저녁종소리
네 이웃을 사랑했느냐?
이제 소슬한 가을밤은 깊어
섬돌 아래 귀뚜라미도 한밤내 울어예리
내일 새벽에는 찬서리 내리려는 듯
내 마음 터전에도 소리 없이 낙엽 질텐데
이 가을에는 이 가을에는
진실로 기도하게 하소서
가까이 있듯 멀리
멀리 있듯 가까이 있는
아픔의 형제를 위해 또 나를 위해……
♣ 다시 새해의 기도
곤욕(困辱)과 아픔의 지난 한 해
그 나날들은 이제 다 지나가고
다시 새해 새날이 밝았다
동창(東窓)에 맑고 환한 저 햇살 함께
열려오는 이 해의 365일
지난밤에 서설(瑞雪) 수북히 내리어
미운 이 땅을 은혜처럼 깨끗이 덮어주듯
하나님, 이 해엘랑 미움이며
남을 업수히 여기는 못된 생각
교만한 마음 따위를 깡그리,
저 게네사렛의 돼지 사귀처럼
벼랑 밑으로 몰아내 떨어지게 하소서.
오직 사랑과 믿음 소망만을 간직하여
고달프나 우리 다시 걸어야할 길을
꿋꿋하게 천성(天城)을 향해 걸어가게 하소서.
이 해에는 정말정말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난한 마음만이
이 땅에 가득하게 하소서, 하여
서로 외로운 손과 손을 마주 꼭 잡고
이 한 해를 은혜 속에 더불어 굳건히 살아가게 하소서.
동구 밖 저 둔덕 겨울 미루나무에
언제 날아왔을까, 들까치 한 마리,
깟깟깟… 반가운 소식 전해오려나.
하그리 바라던 겨레의 소원,
이 해에는 정녕 이뤄지려나, 이 아침
밝아오는 맑은 햇살 가슴 뿌듯이 가득 안고
새해에 드리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
꼭 이루어 주소서, 하나님
이루어 주소서

♣ 보리밭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보리밭>은 6.25 전쟁 중에 작곡 되었다. 이 곡이 탄생된 시기는 못 먹던 시절, 보릿고개의 시절이었다. ‘보릿고개’란 보리가 아직 여물기 직전으로 전년에 수확했던 양식은 떨어지고 아직 보리는 수확이전이어서 굶주림을 밥 먹듯 했던 4-5월의 춘궁기(春窮期)를 일컫는 말이다.
1951년 서울서 부산으로 피난 온 작사자 박화목님은 종군기자로, 작곡가 윤용하님은 해군 음악대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둘은 술자리에서 후세에 남길 가곡하나 만들자고 제안하였으니, 작가는 고향 황해도의 보리밭을 떠올리며 제목을 ‘옛 생각’ 으로 시를 지어 작곡가에게 주었고 작곡가는 3일 만에 시에다 곡을 붙여서 제목을 ‘보리밭’으로 바꾸었다.
피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1953년에 초연했는데 별 반응을 못 얻다가 1974년에야 대중에게 알려지고 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대중에게 대단한 인기로 애창된 것은 윤용하님이 세상 떠난지 4-5년 후로 전해지고 있다. 윤용하님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작곡을 열심히 했으며 집과 악기를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채 정리되지 않은 오선지 뭉치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년만인 1972년에 그의 친구들과 세광출판사의 배려로 윤용하 작곡집 ‘보리밭’이 발간되었다. 그는 죽은 후에 그의 여러 작품이 꽃을 피운 우리 민족의 음악가였다. 박화목과 윤용하의 “보리밭”은 흔히 시(詩)가 더 좋다느니, 곡(曲)이 더 좋다느니 하고 곧잘 사람들 사이에 말싸움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봄은 꽃이 있어 화사하다. 그러나 파릇파릇 보리밭의 초록 또한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기로는 봄꽃 못지않다. 특히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푸르른 초지(草地)는 가슴속까지 다 후련하게 해준다. 보리밭은 마치 초록의 수평선을 대하듯 일망무제(一望無際=넓고 멀어서 끝이 없음)의 푸르름이 이어진다. 한소끔[=한번 부르르 끓어오르는 모양] 불어오는 봄바람에 출렁이는 녹색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눈길을 옮기자면 삶에 찌든 마음속에도 어느덧 푸른 세상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만춘(晩春)에 접어들어 보리가 무릎 높이로 자라면 완만(緩慢)한 구릉(丘陵)을 따라 부드러운 신록이 넘실대고, 5월을 지나 보릿대가 허리춤까지 성큼 자라면 ‘서걱 서걱, 쏴아– 광활한 대지 위에 봄날의 교향곡(交響曲)이 쉼 없이 울려 퍼진다. 초여름의 보리밭은 완전히 또 다른 세상을 펼쳐놓는다. 초록의 지평선은 이내 누런 황금물결로 넘실대며 여름을 재촉한다.
부산 중구청은 6·25전쟁 와중에 피난처인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태동(胎動)한 박화목(1924-2005) 작사, 윤용하(1922-1965) 작곡의 대표적인 국민가곡 <보리밭> 기념 노래비를 자갈치시장 친수공간에 세웠다. 이 노래비에는 <보리밭> 악보 원본과 이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작곡가 윤용하 선생의 생애 등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작가소개 : 박화목 시인
박화목 시인은 시인이면서 아동문학가이다. 평양 출생으로 호는 은종(銀鐘)이다. 한국신학대학교(韓國神學大學校) 선교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크리스천 문학가협회 회장,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41년 동시《피라미드》, 《겨울밤》 등이 《아이생활》에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죽순》과 《등불》의 동인(同人)으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작품의 특색은 기독교적 이상주의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만년(晩年)에 와서는 현실의식, 과학, 운명, 인생의 사색과 그 의미 등의 탐구에도 힘써 왔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시집 《시인과 산양》, 《그대 내 마음의 창가에서》, 《초롱불》, 《저녁놀처럼》, 《얼룩 염소의 모험》 등이 있다. 1972년 동시《봄밤》으로 제4회 한정동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윤용하(尹龍河)님 작곡한《보리밭》의 작사가로 유명하다.
이미 ‘국민가곡’이 되어버린 ‘보리밭’은 윤용하(尹龍河) 작곡, 박화목(朴和穆) 작사로 1950년대에 부산에서 씌어진 곡으로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였으나 1970년대에 들면서부터 널리 불리기 시작하였다. 소박한 시(詩)가 지니는 서정성(抒情性)과 선율(旋律)이 지니는 종교성(宗敎性)이 잘 조화를 이룬 노래로 널리 애창되어 왔다.
수상경력으로는 한국전쟁문학상, 한정동 아동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고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그 외에 제2회 천등(天燈)아동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유명한 동요 <우리유치원>과 <과수원길>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부산시 어린이대공원에 그를 기리는 시비(詩碑)가 건립되었다.
기독교방송(CBS) 교양부장과 편성국장, 한국방송회관 상무이사 등으로 언론계에서도 일했으며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지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