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
데살로니가서와 사도행전의 통합적 관점에서 본 바울사상의 공시성과 신학적 배경 연구
– 데살로니가서와 사도행전의 연관본문 행 17:1-9을 중심으로 –
목차
Ⅰ. 서 론
Ⅱ.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도사역
1.사역의 시기와 배경
2.사역의 과제
3.사역의 내용과 동행자
4.사역의 특징
Ⅲ.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1.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2.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Ⅳ.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 사이의 독특성 비교
1.부활․승천론 비교
2.재림론 비교
3.종말(심판)론 비교
Ⅴ.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의 통합적 관점에서 본 바울사상의 공시성과 신학적 배경의 종합
Ⅵ. 결 론
참고문헌
Ⅰ. 서 론
사도행전이 신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 그리고 고난과 십자가를 다룬 복음서는 4권이나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 교회가 어떻게 탄생되었고 성장했으며 어려움이 있었는가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자료는 사도행전밖에 없다. 더구나 사도행전의 뒤를 잇고 있는 말씀들은 거의가 다 서신서들이다. 따라서 계시록의 제외한 신약의 모든 역사는 사도행전에 망라되었다고 보아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의 화려한 사역과 교회가 태동되어서 부흥하고 어려움을 겪는 과정과 사도 바울의 회심과 그의 전도여행, 그리고 그가 세운 교회들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도행전은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데살로니가서는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된 대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목회할 당시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을 위해 기록한 서신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지 설명해 준다. 제 2차 전도 여행 때(주후 50-53년경), 바울, 실라, 디모데는 소아시아를 거쳐 그리이스로 들어가 전도했다. 데살로니가에 들어간 이들은 유대교회당과 야손의 집에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데살로니가서는 종말과 재림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데살로니가전서의 핵심어는 ‘견고함’과 ‘재림’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 희랍의 이교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신앙 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견고히 서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림에 대한 올바른 견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가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분이 재림하시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므로 성도들은 깨어서 근신하며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의 핵심어는 ‘핍박’과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는 율법주의적 유대인들이 새로 개종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인내와 부지런함으로 열심히 일하라고 간청한다.
한편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사이에는 독특한 종말론적 특성이 있으며,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사이에서도 미묘한 종말론과 재림론의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의 공시적(空時的) 배경 연구를 위해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도사역을 시기와 배경, 사역의 내용과 동행자, 그리고 사역의 특징 순으로 살펴보며, 신학적(神學的) 배경연구를 위해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고찰을 통해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 사이의 독특성을 비교하며, 결론적으로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의 통합적 관점에서 본 바울사상의 공시성과 신학적 배경의 종합을 도출하고자 한다.
Ⅱ.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도사역
1. 사역의 시기와 배경
사도행전 17-18장 및 데살로니가전서의 기록경위를 보아 알 수 있듯이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디모데와 실라의 보고를 듣고 이 서신을 기록했음이 분명하다. 이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한 직후에 기록되었음 알 수 있다(행 17:1-10; 18:1). 그러나 문제는 데살로니가전서의 기록연대이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끌려간 적이 있는 갈리오 법정(행18:12-17)과 관계있는 갈리오에 관한 내용이 델리 근처에서 발견된 고대 비문에서 소개되었다. 이 비문에는 갈리오가 주후 51-53년 사이에 1-2년 정도 총독으로 있었음을 언급(행18:12)하였다. 그로 인해 바울이 고린도에 머무른 시기를 더욱 정확히 알 수 있는바 그의 고린도 체류 시기를 감안하면 주후 51-53년경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데살로니가전서는 데살로니가후서와 함께 바울의 영감어린 가장 최초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데살로니가전서가 생각한 것 보다 후기에 씌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빌립보에서 강제로 추방당한 후 바울은 소수 동역자들과 함께 로마의 간선 도로인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를 따라 데살로니가로 왔다. 약 20만의 인구를 가진 도시 데살로니가는 사역하기 알맞은 곳으로서의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이 곳은 로마 마게도니아도(道)의 수도였다. 이런 위상으로 인해 데살로니가는 특정한 사회적, 상업적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물론 그에 따른 책임도 있었다). ‘자유 도시’라는 지위를 얻음으로써 데살로니가는 세금 혜택도 누릴 수 있었다.
데살로니가는 주전 316년 알렉산더 군대의 한 장군이었던 카산더(Cassander)가 창건하였다. 카산더는 필립 2세의 딸이자 알렉산더의 이복 누이였던 자신의 아내 데살로니케이아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를 명명하였다. 데살로니가는 옛 더메(Therme)시(市)에 다수의 인근 성읍들을 편입하고 거대한 수의 헬라 이주민들을 추가해 형성되었다. 이 도시는 주전 146년에 도(道)의 수도가 된다. 켈트족과 이탈리아인, 기타 소수 민족이 로마의 군대를 따라가 데살로니가에 정착하였다. 키케로는 주전 58년 일부 유배 기간을 데살로니가에서 보내며, 거대한 야만인 떼거리들이 거기에 정착해 있다고 불평하였다.
주전 42년 데살로니가는 빌립보 전쟁에서 (현명하게도) 안토니(Anthony)와 옥타비우스(Octavius)를 지지하였다. 승자 편에 섬으로써 로마의 많은 후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며 계속해서 이 도시는 번영을 구가하였다. 데살로니가인들은 로마와의 호의적 관계에서 오는 이익을 재빨리 체득했다.
경제적으로, 데살로니가는 크게 번창한 도시이다. 경제적 기회를 잡기 위해 이주민들이 유입했다. 고대의 문서에는 데살로니가의 번영과 아름다움에 대한 다수의 논평이 나온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도시의 계속적인 번영을 입증하는 것으로서, 대대적인 건설 운동도 있었다. 데살로니가는 로마의 동서 간선도로 상에 위치한 하나의 주된 정류장이었다. 주된 남북 무역로이자 더메(Therme)만(灣)의 좋은 항구라는 점도 데살로니가의 장점이었다. 부(富)가 이 도시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부는 주로 소수의 손에 축적되었다. 일반 노동자들은 도시가 점차 번영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오히려 점점 가난해졌다.
종교적으로, 데살로니가는 유대인의 영역과 이방인의 영역을 오갔다. 도시 안에는 거대한 유대인 식민과 회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 도시 인구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로마 제국에서 유대인 인구가 무려 14퍼센트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상, 하찮은 소수 유대인 집단이 데살로니가의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울의 편지를 보나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의 기록을 보더라도, 유대인 인구가 이 도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힘든 지역에서의 사역에 단련된 사람으로서 바울이 부딪힌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보여준 패턴은 우리가 모방할 만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도시의 유일한 종교적 집단이 아니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가이사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였으며 안토니와 옥타비우스를 기리기 위해 사원을 건축하기도 하였다. 이 ‘종교적’ 충성은 강력한 정치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데살로니가의 이런 민간 신앙은 대단히 강력하였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번영이 로마의 혜택에 의존하고 있음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전통적인 헬라의 제신(諸神)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최신 유행의 동양 신비 종교들도 신봉하였다. 고고학적 증거는, 아프로디테와 데메테르 같은 풍요의 여신들에 대한 숭배가 있었음을 밝혀준다. 아스클레피움(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를 예배할 목적으로 지은 ‘병원’), 세라페움(이집트의 세라피스 및 그와 결부된 여신 이시스 예배를 위한 사원) 같은 것도 있었다. 데살로니가는 독자적으로 주화를 주조할 권리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주화의 화상들은 다양한 인물들이 신으로 숭배되었음을 입증해준다. 가장 흔한 경우는 제우스이지만 가이사와 디오스쿠리(제우스의 아들들), 카비리(Cabiri) 등도 등장한다.
2. 사역의 과제
데살로니가교회와 관련해 바울이 직면한 문제점은 현대의 다수 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외부와 내부에서 공히 등장하는 것들이다.
1) 데살로니가교회 외부의 문제들
바울의 데살로니가 사역에서 교회 외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요소는 세 가지로서 ‘민간 신앙’, ‘카비루스(Cabirus) 종파’, ‘유대 분파’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로 민간 신앙이다. 마케도냐인들에게는 자기 왕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전통이 있었다. 율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의 은총으로 물질적인 복을 향유했던 데살로니가인들은 가이사를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이 전통을 계속 지켜나갔다. 로마의 축복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았던 부유한 지도자들이 또한 민간 신앙의 주요 지도자들이기도 하였다. 로버트 주엇(Robert Jewett)은 이렇게 말한다.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최고 권력에 대한 종교적 경외감 및 감사의 마음은, 데살로니가의 인간 숭배 신앙에서 시민들의 이기주의와 많은 부분 혼합되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로마의 통치에서는 이 신앙의 최고 주동자 역할을 한 소수 엘리트의 손에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가이사 숭배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 시의 물질적 번영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당국과 마찰을 빚은 것도 이런 요인 때문이었다.
둘째로 카비루스(Cabirus) 종파이다. 원래 프리기아의 종교였던 이 신비 종교는 다수의 변종과 함께 로마 제국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카비루스파는 종종 다른 종교들과 혼합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지역에서는 카비리(Cabiri: 카비루스의 복수형)가 제우스의 두 아들(Castor와 Pollux), 디오스쿠리(Dioscuri)와 혼동되고 동일시(同一視)되었다. 이 주제에 관한 명쾌한 작품에서 벵트 헴베어그(Bengt Hemberg)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카비리는 바울이 도착하기 전 적어도 약 200년 동안 숭배되었다고 한다(보통은 단일 인물 카비루스로서). 카비루스 종파는 데살로니가의 주류 종교였다. 고전학(古錢學)적 증거와 명문(銘文), 문학적 증거가 데살로니가 카비루스 종파의 압도적 인기를 암시하고 있다. 바울 이전의 세기에 카비리는(디오스쿠리로 등장) 데살로니가시의 무장 수호신들로서, 데살로니가의 아치형 서대문(西大門)에 두 개의 벽 기둥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바울의 시대보다 몇 십 년 뒤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주화들은 카비리가 이 도시의 수호 세력이었음을 보여준다. 데살로니가인들은 바울에게서 처음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들었을 때 무언가 다소 귀에 익은 듯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을 것이다. 데살로니가인들이 예배하던 카비루스라는 인물은 순교당한 영웅이었다. 그는 형제들에게 살해를 당한 후 왕권의 상징들과 함께 땅 속에 묻히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가 다시 귀환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한편, 카비루스는 바다에서 안전을 제공하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마술적인 도움을,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며 성적(性的)인 성취를 주고 의를 증진시키는 등 추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카비루스는 종종 철의 제조와 결부되거나(따라서 그는 종종 망치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수공 노동과 결부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데살로니가의 노동 계층에게는 카비루스가 수호신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다시 돌아와 비천한 이들을 도와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노예들은 자신들을 묶었던 쇠사슬이나 노예 해방 증서를 카비루스에게 바쳤다.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압제받는 자들의 하나님’이 되었다. 하지만 바울의 시대에는 이미 어떤 문제가 부상해 있었다. 민간 신앙이 거기에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간 신앙의 부유한 지도자들은 카비루스의 추종자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카비루스는 ‘데살로니가의 시신’(市神)으로 지위가 격상하였다. 카비루스의 지위와 위상이 올라갈수록 가난한 노동 계층은 카비루스를 빈(貧)한 노동자와 압제받는 장인들의 보호자로 생각하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데살로니가의 지배 계층은 노동자들의 영웅을 훔치고 말았던 것이다. 수공 노동자와 가난한 장인들은 결국, 도움을 제공하고 구원을 제공할 어떤 수호자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셋째로 유대 분파이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과 그의 일행은 세 안식일에 걸쳐 소수의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적지 않은 부유한 여성들을 회심시킨 후 회당에서 추방당했다. 그 후의 어느 시점에 이르자 유대인들은 대단한 시기심이 발동하였다. 논쟁점은(늘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위상에 관한 것이었다(행 17:7). 바울 자신은 계속해서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에게 곤란을 겪었지만 바울의 서신들을 볼 때 우리는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주로 이방인들이었다) 유대인으로부터 심각한 곤란을 계속 겪지는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교회를 괴롭힌 이들은 이 도시의 지도자들이었다. 유대인들은 직접 바울을 붙잡아 그를 고소할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도시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자기 도시 안의 유대인 사회에서 일어난 문제를 감지하게 되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할 무렵인 주후 49년에 로마에서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폭동이 발발했었다. 로마의 이 소요 사태는 ‘동방에서 온 방문객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들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이 분쟁은 결국 폭동으로 비화하였다. 황제는 이를 강력히 제재하였다.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클라우디우스는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물론,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까지 포함해). 데살로니가인들은 가이사와의 좋은 관계에 대단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과 그의 일행이 동방에서 도착해 유대인들 사이에서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데살로니가시(市) 관리들이 신속하게 대응한 것은 당연하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이미 유대인 지역 사회에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떤 이슈를 놓고 심각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그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의 민간 신앙 및 유대적 요소와 얽힌 문제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메시지에서 예수를 생략하는데” 동의했더라면 아마 그들의 적들 모두는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이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2) 데살로니가교회 내부의 문제들
첫째로 혼합주의이다. 어떤 형태의 복음 전파 사역에서든 한 가지 주된 위험은, 듣는 자들이 복음을 자기 문화의 신화들 및 신념들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것이다. 혼합주의는 종교적 체계들을 뒤섞는 것으로서 초창기부터 기독교를 위협하는 문제점으로 존재해오고 있다. 바울의 서신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의 회심자들은 새로 받아들인 기독교 신앙을 자기 삶 속에 자리잡고 있던 기존의 특정 이교 사상들 가운데 어느 하나와 혼합할 우려가 다분하였다. ① 민간 신앙과의 혼합주의가 있다.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바울이 가까스로 소수의 유대인 회심자들을 얻기는 하였으나 교회의 절대 다수는 이방인 회심자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교회의 분열을 야기하는 요소에서 보다 심각했던 것은 인종적 이슈(유대 그리스도인 대 이방 그리스도인)가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발견되는 경제적 차이였을 것이다. 누가의 기록에서는 바울이 ‘적지 않은 귀부인들’(존중할만한 상류 계층의 여성들을 의미함)을 회심시켰다고 말하지만, 바울의 편지에서는 교회의 절대 다수가 가난한 노동 계층, 즉 ‘자유 장인 혹은 소상인’이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발견된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자기 손으로 손수 일하라고 권면했다는 사실도, 바울의 청중이 주로 수공 노동자들이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날로 증폭하는 이 도시의 번영이 노동자 계층에 도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대 지중해 연안에 대한 최근의 사회학적 분석은, 일반 노동자의 경제적 안녕이 얼마나 불확실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부유한 엘리트와 가난한 노동 계층 간의 경제적 불균형은 종종 사회적 거리로 인해 무마되었다. 사회적으로 한편이 다른 한편과 어울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바울의 교회에는 가난한 자가 다수를 차지하였으나 부유한 계층도 있었다. 도시의 민간 신앙은, 개인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 민주적 규범이라는 옛 헬라의 이상들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런 이상들이 도시 지도자들의 선전에 여전히 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세금율과 낮은 임금, 빈번한 기근, 법률적 호소 수단의 결여는 일반 노동자들에게 좌절감과 무기력감(無氣力感)을 안겨주었다. 더구나 시(市) 지도자들의 경제적 진보를 지켜보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그 진보에 별로 동참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등을 말하는 바울의 메시지를 혹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해법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교회 내부에서 부(富)가 재분배되기를 기대하였다. (뒤에서 언급되는) 묵시적(apocalyptic) 요소들을 흡수한 일부 신도들은 일하기를 중단하고 부자들처럼 한가하게 살 것을 기대하였다. 사회의 경제적 불공평이 교회 내부에는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기독교는 일반 노동자가 자신의 경제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경제적 고난을 (아마도 묵시록적으로) 해결하고 계신다고 생각되었다. ② 카비루스 종파와의 혼합주의이다. 일반 노동자의 경제적 상태는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적으로 시(市) 지도자들로부터 경제적인 구제를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그들의 교언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로마인들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이 해소될 현실적 여망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데살로니가인들은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데살로니가의 사회적 배경에는, 카비루스가 어느 날 죽음에서 살아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 영구적인 번영과 정의의 유토피아를 창설할 것이라는 어떤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카비루스는 가난한 자들의 해방자라기보다 ‘지도 계층’의 지지자처럼 보였다. 바울은 그런 현장 속으로 들어가 ‘새 시대’의 개시에 관한 약속을 포함하고 있는(그 약속이 중심을 이루지는 않았겠지만) 복음을 선포하였다. 로버트 주엇(Robert Jewett)의 지적에 따르면, 기독교의 메시지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마음 속 깊은 한(恨)에 다가감으로써 즉각적으로 그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분명 바울의 메시지 가운데 어떤 부분, 특히 그리스도의 묵시록적 귀환과 심판, 변호에 대한 대망을 설파하는 부분에 크게 마음이 끌렸을 것이다.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바울의 회심자들이 그의 말을 그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우려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일부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경제적, 사회적 병폐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에 그리스도의 귀환을 간절히 기다렸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에 대한 예언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③ 기타 신비 사상과의 혼합주의이다. 디오니시우스 예배는 시민 생활 깊숙이 흡수되어 있었으며 강력한 성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일부 데살로니가 주민들은 무차별 성행위를 실시했으며 성적 속박이 없는 삶을 즐기고 심지어 이를 조장하기도 하였다. 바울의 교회는 자체의 윤리적 표준을 복음이 아닌 사회의 습속으로부터 이끌어 낼 우려가 있었다. 경제적 불균형과 좌절이 바울의 시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데살로니가인들 처럼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묵시록적 귀환에만 사회적 개혁의 여망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관한 예언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바울이 직면했던 문제들은 우리 자신들의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다.
둘째로 규모 없는 자들에 대한 문제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아타코이’(놈팡이들)를 어떤 식으로든 도와야 했다는 것은 살전 5:14에 분명히 나온다(또한 살후 3:6-15에도 나타남). 이 형용사는 실명사로 사용될 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된다. 베스트(Best)와 브루스(Bruce) 같은 비교적 최근의 주석가들은 ‘아타코이’를 ‘놈팡이들’(loafers)로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은 살후 3:7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단어가 세속 문헌에서는 (동족 부사와 함께)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후서만의 문맥에 의존해 지나치게 좁은 의미를 이 낱말에 부여해서는 안 된다. ‘아타코이’의 통상적 의미는 “필요한 기존 질서 밖에 자신을 두는 사람”이다. 따라서 ‘아타코이’는 불순종하는 자들, 반도들, 말썽꾸러기들이었다. 이런 노선에서 흠정역과 필립스(Phillips)는 이를 ‘unruly’(다스릴 수 없는, 불법적인, 제멋대로 하는)로 번역하였다. 바울이, 제멋대로 게으르게 사는 자들만을 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우리는 바울이 지도자들에게, 권위에 저항하는 자들을 경고하도록 촉구했다고 보아야 한다. ‘아타코이’는 군사적인 문맥에서 태만한 장교들이나 무질서한 군대, 혹은 불복종하는 병사들에 대해, 즉 보조를 맞추거나 질서를 지키려 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살전 5:12-13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독자들에게 교회 지도자들의 업무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이미 지도자들의 업무를 잘 알고 있었다. 믹스의 주장이 아마 옳을 것이다: 여기의 지도자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보호자들(patrons)이었다. 영적 열성자들은 그들의 리더십에 저항했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지도력이 저항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들의 업무를 지지해준 것이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존경하라’는 권면의 근거를 어떤 교회의 계급 제도가 아닌 사랑에 두고 있다. 상황이 얼마나 불안정했는가는, 바울이 순종에 관한 전형적인 언어를 피했다는 사실이 암시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화목하라”는 말은 외부 세계와 평화로이 지내라는 뜻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화평을 가리킨다.
3. 사역의 내용과 동행자
데살로니가는 로마 속령인 마게도니아의 수도였는데, Dyrrhachicum에서 Byzantium에 이르는 Via Egnatia라고 하는 대 군사로(路)의 도상에 있으며, 이 길을 통해서 로마는 동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은 당시에 회당이 있었고(행 17:1), 많은 유대인인 ‘경건한 자들’(행 17:4)이 있었던 번화한 도시였다.
소위 제 2차 선교여행이라고 하는 여행중에 약 49년경 바울은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왔고 그 곳에서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의 도움으로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하였다(살전 1:1, 5-8; 2:1-14; 3:1-6; 빌 4:16; 행 17:1-10; 18:5 등 참조). 그 공동체는 거의 전체가 이방인들이었다(1:9; 2:14; 행 17:4). 아리스다루고(행 20:4)는 골 4:10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출신의 유대인 기독교인이었다.
행 17:2의 바울이 그곳에서 오직 3-4주간 동안만 활동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는다. 살전 2:9-12, 17, 19; 3:6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과 같은 신뢰관계는 그렇게 단 시간 내에 발전될 수 없는 없으며, 더욱이 데살로니가인들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일들(1:8)도 그렇게 짧은 기간에는 불가능하다. 빌 4:16에 따르면, 빌립보의 기독교인들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바울에게 한 번 이상, 지원을 보냈다고 하므로, 그가 거기 체류한 것은 보다 긴 기간이었음에 틀림없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엄격한 공동체 조직을 만들지는 않은 것 같다. 5:12은 공적인 의미에서 직분맡은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딤전 5:17), 자발적으로 형제들을 돌보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가리키며, 권면(5:14)은 직분 맡은 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구성원들의 영적인 복지를 위한 책임감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공동체는 빨리 그것도 은혜스러운 방법으로 성장했음에 틀림없다(1:3; 2:13). 바울은 그들을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신자들에 대한 모범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1:7).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대항하여 그 도시의 폭도들을 선동했기 때문에 그들은 밤에 베뢰아로 도망가야만 하였다(행 17:5). 거기서 먼저 아덴으로, 그리고 다시 고린도로 여행하였다(행 17:13). 행 17:14에 따르면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아 있었지만, 아덴에 있는 바울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자기에게로 오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들은 마게도냐에서 나와서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났다(행 18:5).
4. 사역의 특징
바울은 빌립보에서 약 160km를 걸어서 데살로니가로 간다. 행 17:1에 보면,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다녀가’(passed through)는 그 도시를 그냥 통과해서 지나갔다는 의미이다. 이곳(암비볼리와 다볼로니아)에서는 바울이 본격적인 선교를 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우리는 바울의 중요한 선교 전략을 볼 수 있다. 즉 바울은 중요한 도시, 전략적인 도시, 복음의 파급 효과가 큰 도시를 골라서 집중적인 선교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집중의 원리’이다. 바울은 초점이 분명한 선교를 하여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의 효과를 일으키는 선교를 했다. 이에 본장에서는 바울의 데살로니가 사역가운데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이동하며 선교사역하는 바울(행 17:1a)
바울은 유대인을 우선하는 전도와 함께 이방인의 사도로 이동하며 선교하였다. 바울은 공중앞에서 회개한 사실을 간증하고 전환된 마음을 수습하고 앞날을 위한 준비로 아라비아에 은퇴하여 더욱 힘을 얻고 돌아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예수가 기다리던 그리스도임을 전파하였고(갈 1:16-18; 행 9:22) 이방인을 향해 3차 걸쳐 전도여행을 실시하였다. 1차 선교여행은 바나바와 같이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구브로섬을 경유 소아시아 중남부 지방의 유다인 회당을 순방하면서 거기를 발판으로 선교하였다. 이 선교 활동 중 이방인 회심자와 유대인의 율법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가 야기되어 유대교의 전통을 고집하는 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회의 때 이방인 선교에 관한 문제 협정을 지었다(행 13:4-14:28). 2차 선교여행은 실라를 데리고 안디옥을 출발하여 드로아 바다를 건너 유럽 땅에 들어가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에 이르러 1년 반 동안 머물렀다가 그 후에 에베소를 지나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행 15:40-18:22). 3차 선교여행은 소아시아의 내륙지방 갈라디아, 부르기아 지방을 지나 에베소에 도착하여 거기서 3년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그 부근에서 선교하였다. 그 후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마게도내에서 고린도로 가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이 선교 여행에서 지중해 연안에 몇 개의 교회가 설립되었고 신약성서에 편집된 성서 편지(바울서신)도 많이 썼다(행 18:23-21:14). 3차 선교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반대파인 율법주의자들의 선동과 모략으로 입건되어 가이사랴에 2년간 감금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인연이 되어 바울은 총독 벨렉스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을 변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후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지중해를 건너 로마로 갔다(행 21:17-24:27).
2) 대도시를 중심으로 선교하는 바울(행 17:1b)
바울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선교하였다. 선교사 한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과 활동능력은 제한된 것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본래의 사명은 “멀리 이방인에게”(행 22:21)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바울이 집중적으로 선교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대도시였다. 이와같이 대도시를 선교의 대상지로 삼은 것은 그 도시가 복음화 됨으로 인근 지역의 복음화를 부채질 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이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와 아덴에서 했던 것처럼 그의 복음이 주변 지역으로 퍼질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삼았다. 사도행전은 그의 방문이 중요한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간 기록으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제자들을 가르치며 1년 남짓한 세월을 보낸 바 있는 안디옥을 기점으로 하여 복음을 들고 출발한다. 안디옥은 알렉산드리아와 로마를 뒤이은 제국의 세 번째 도시로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300마일 되는 곳에 있는 크게 번영하는 중요한 상업 도시였다. 안디옥은 여러 종족들이 뒤섞여 사는 도시였고, 동서의 상업의 요충지로서, 예루살렘으로부터 퍼져 나아가기 시작한 기독교 신앙의 확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안디옥은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가 사방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최적의 전략기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안디옥은 팔레스타인 경계선에 인접해 있는 도시로서 복음전파의 진원지에 가까이 위치한 까닭에 모교회와도 계속적인 연계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으며, 팔레스타인으로부터 희랍, 로마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안디옥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으로 파급시키는데 있어 최적의 전략기지였던 것이다. 지도를 살펴보면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이 도시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임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안디옥교회는 훌륭한 선교기지로 바울의 유명한 3차 선교여행의 출발지도 이곳이었고 끝마친 곳도 바로 안디옥이었다. 안디옥교회는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한 교회였고 또한 직접 선교한 교회였다.
바울은 세 번의 선교여행에서 로마 제국에 의해 건설되고 유지된 유명한 도로들을 잘 활용했다. 그 길을 따라 로마 제국의 가장 중요한 도시들이 위치해 있었다. 그 도시들은 모두가 로마의 행정과 헬라문명의 중심지였다. 그 도시들 가운데는 빌립보와 같은 로마의 식민도시, 데살로니가와 같은 상업도시, 아덴과 같은 문화의 중심지, 그리고 고린도와 같은 무역(교역)과 교통의 중심지, 에베소와 같은 로마제국의 종교적 중심지도 있었다.
바울은 도로 연변에 위치한 모든 도시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신속한 복음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시들을 선별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예컨데 그가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여행하는 동안 도로변에 있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는 그저 통과하였을 뿐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다(행 17:1). 또한 도시마다의 체류기간도 일정한 것이 아니어서, 어떤 도시에서는 2-3년 간이나 체류한 경우도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에베소는 바울이 활동했던 모든 도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이 지역은 아시아 지역의 수도일 뿐 아니라 유명한 아카데미신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어서 로마제국의 종교적 중심지였으므로 매년 수 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했으며 상인들은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행 19:25-27).
에베소의 중요성은 바울이 1개 도시 체류기간 중 가장 긴 기간인 3년 남짓이나 그곳에 머물렀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으며(행 20:31), 또한 그가 에베소를 떠날 때에는 디모데로 하여금 그곳에 잔류하여 주님의 일을 계속하도록 하였으며(딤전 1:3), 브리스길라, 아굴라, 그리고 아볼로도 모두 에베소에서 활동하였고(행 18:24-26), 그 후에 사도 요한도 그곳에 정착하여 거주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보아 그 도시가 바울의 선교전략 기지로 얼마나 중요했던 도시였던가를 알 수 있다. 사도행전을 통해 누가는 4개의 바울이 행한 주요설교를 기록하고 있는 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였으며(행 20:), 이는 그의 선교방법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 체류 중 최초의 석달 동안은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행 19:8) 하였으나 반대세력들에 의해 회당에서 추방당하고 나서는 두란노서원에서 듣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날마다 강론하며 지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선교가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는가는 누가의 다음과 같은 기술로부터 알 수 있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며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 이는 사도행전을 통해 가장 놀라운 진술중의 하나로서 바울이 전략기지를 중심으로 발휘했던 엄청난 영향력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누가가 “아시아에 사는 자는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라고 진술했다고 해서 우리는 단지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널리 뿌렸다는 사실만을 말한다고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며, 이에 수반하여 열매를 거두기 위한 집중적인 노력도 아울러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7교회들이 어떻게, 언제, 누구에 의해 설립된 교회인지 알 수 없다. 케인(H. Kane)은 에베소 주변의 많은 상인, 관리, 군인들이 빈번히 왕래했던 곳으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두란노서원에서 바울이 설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며, 그들이 귀향할 때에는 복음도 가지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만간에 그 지역 전역에 걸쳐 교회들이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개척 방식은 가히 산술급수적인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예를 골로새서를 통해 말한다. 골로새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90마일 가량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그 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그 교회의 지도자들의 이름은 에바브라와 두기고였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태생이면서 그 교회를 설립한 인물로서(골 1:7)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다. 바울은 골로새에 한번도 간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들이 만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통해, 에바브라가 에베소에 가서 복음을 듣고 귀향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고향에 교회를 세운 것이라고 한다. 바울의 대도시 집중의 선교는 각 도시의 특성을 살려 복음을 전파함으로 그가 직접 가지 않은 지역에도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설립되었다.
3) 회당에서 선교하는 바울(행 17:1c-2)
행 17:1-9을 보면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살전 1:1; 3:2, 6)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유대교 회당에 들어가 세 안식일에 성서를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바울은 어느 도시에 가든지 먼저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 원칙을 고수하였다. 어느 도시에 가든지 먼저 회당을 찾아간 이유는 구원사에서 복음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신학적인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롬 1:16,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아울러 그곳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구약과 유대교를 알아서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준비된 사람들이 많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의 회당은 예배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여행객의 숙소나 직업 알선소, 혹은 유대인들의 모임의 장소로서 그들 삶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울에게는 처음 방문하는 낯선 도시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회당에서 숙소를 얻어 체류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다면 회당은 바울에게 있어서 선교여행 경비를 조달하는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새로운 도시에 가면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 전파를 시작하였다.
로마의 식민지 도시인 빌립보에서 만은 회당을 발견할 수 없어서 강가에서 복음을 전하였지만(행 16:13), 그 외의 지역에서는 주로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습관이 있었다. 예수 당시 초기의 기독교인들의 시대에는 이스라엘 국내에 거주하는 유대인보다는 디아스포라(Diaspora)인 유대인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포로시기에서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쟁 등 여러 가지 고통들로 인하여 여러 지역에 분산되었었기 때문이다. 흩어진 유대인들은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한 증가를 보임으로서 그리스도 당시에 지중해 연안에 있는 로마제국에서 전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연구 중에 하르낙(Harnack)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유대인 총 인구는 450만 명이었을 것이라고 추산하였다. 여기서 중대한 사실은 유대인들은 어느 지역을 가든지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유대인이 거주하는 곳이라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회당은 세워졌고 안식일마다 모여서 신앙예식을 가졌다. 또 헬라와 로마세계의 여러 도시에 산재해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함께 회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여 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당에서는 방문하는 랍비에게 모인 경배자들을 상대하여 ‘권면의 말씀’을 하도록 초청하는 습관이 있었다(행 13:15). 이것은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이미 준비된 상황에서 관심을 가지고 경건하며 성경 지식이 있는 청중들에게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항상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 중에는 살라미 회당(행 13:5),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행 13:14), 안디옥 회당(행 13:44), 이고니온 회당(행 14:1)에서 설교하였고, 2차와 3차 여행 중에는 데살로니가 회당(행 17:1), 베뢰아 회당(행 17:10), 아덴 회당(행 17:17), 고린도 회당(행 18:4), 에베소 회당(행 18:19)에서 설교했다. 바울이 회당에서 추방당할 경우에는 그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며(행 18:7; 19:9) 다른 도시에 도착하는 즉시 회당으로 향하곤 하였다. 바울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대부분 회당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회당은 이방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어 최선의 기회를 제공했다. 1세기에 기독교 신앙을 전파함에 있어서 회당의 전략적인 중요성은 지대한 것이었으며, 바울은 그의 선교에서 그런 기회를 잘 활용하였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핵심으로 하는 바울의 선교사역(행 17:3)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규례대로” 회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세 번의 안식일에 걸쳐서 성경을 해석하고 강론하면서 그 성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메시지에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는 설교를 하였다. 즉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을 설명하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으니 예수께서 곧 메시아라는 설교,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설교하였다(행 17:2-3).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사건을 ‘구속사의 대 전환점’이요 절정으로 이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구속의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이른바 ‘기독론적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 회당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유대인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구약을 잘 알고 있었고, 구약에서 시작된 그 약속들이 어떻게 예수의 생애와 죽음,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 17:3에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바울의 설교 형태가 잘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 설교의 중심은 대개가 ‘증거와 선포’의 형태였다. 그는 구약성서에서 예언된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심과 부활을 해석하여 선포하였으며 그 예언이 예수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증거하였다. 이러한 증거와 선포는 행 13:16이하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을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 구약성서 구절은 신 21:23; 시 2; 16; 110편; 사 53장 등이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더라도 바울은 먼저 1장에서 자신의 전도가 그들에게 “호소력 있게” 들어간 것을 언급하고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온 사실을 지적한다(살전 1:9). 그리고 2장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해”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었음을 아주 분명하게 한다. 이 표현은 여기의 짧은 문단에서 네 번 나온다(살전 2:2, 4, 8, 9).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 가운데서 사역할 때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회심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살전 2:12). 그는 자기 의도를 숨기거나 일정표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예수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었다면 많은 분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복음을 대충 넘기거나 희석하는 것은 곤란을 피하는 좋은 방편이 아니었다. ‘신앙간(間) 대화’(Inter-Faith Dialogue)가 바울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5) 모든 계층에게 선교하는 바울(행 17:4)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말씀을 전파할 때(행 17:1-9) 많은 무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고, 베뢰아에서 말씀을 상고할 때(행 17:10-13)도 ‘헬라의 귀부인’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행 13:6-12에 바울이 바보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데 총독 서기오 바울이 바울과 바나바를 불러 말씀을 듣고자 하는데 박수 엘루마가 총독을 믿지 못하게 하였으나 바울은 엘루마를 소경이 되게 하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됨을 총독이 보고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기사가 나온다.
행 14:6-13은 루스드라에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를 고쳤고, 이미 살펴보았듯이 귀신 들린 소녀를 고쳤다. 행 18:5-8은 회당장 그리스보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했을 때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가 믿었고(행 17:22-34), 빌 4:22은 황제의 집안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졌다고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는 사회 각계 각층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교회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바울은 갈 3:28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교회가 인간 쓰레기들을 주워 모은다고 비난하였고, 켈수스(Celsus) 같은 인물은 그리스도인들을 ‘무가치하고 경멸스러운 자들, 천치, 노예, 비천한 여인과 아이들’이라고 묘사하였다. 이는 기독교 교회의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으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자를 부르셨기 때문이다(마 11:28).
초대교회야 말로 지위가 높든 낮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노예든 자유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그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어서 인종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문제까지도 해결했던 로마제국에 하나밖에 없는 공동체였다. 바울의 선교전략은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바울의 설교 끝에는 늘 권고가 뒤따른다. 행 17:4에서 바울의 권고로 많은 회심자들이 생긴다. 여기서 행 20:4에 언급된 ‘아리스다고’와 ‘세군도’가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귀부인들’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부인들로서 당시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람들로 짐작된다. 마게도냐 지방에서는 다른 지방에서보다도 여성들이 많은 자유를 누렸다. 호르트(Hort)는 이 ‘귀부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들의 유대인 아내들’이라고 주장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한편 여기서 헨첸(E. Haenchen)은 사회 지도급 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그들이 바울 일행에 대한 박해를 막지 못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 있어 핍박의 주동세력은 시(市)당국자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의문은 쉽게 해소될 수 있다
6) 대적자들에게 핍박을 당하며 선교사역하는 바울(행 17:5-9)
바울의 데살로니가에서의 복음 전도는 대적자들로 인해 핍박을 받게 된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싸우고 있던 대적자들은,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에서 공격하던 자들과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바울도 자신에 대한 같은 비난들에 대해서 반복하여 변호하고 있다.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처럼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복음을 훼방하기 위해 소동을 일으켰다. 살전 3:3-10에 의하면 이 유대인들의 시기는 단순한 시기가 아니라 갖가지 중상모략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좇게 되자 유대인들은 이를 와해할 목적으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 중 하나가 시장이나 광장 등의 불량배들(5절, ‘괴악한 사람들’)을 고용하여 소란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매도(罵倒)하는 것이었다.
바울의 세 안식일에 걸친 데살로니가 전도의 결과 그 반응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바울은 몇몇 유대인들과 이방신을 섬기던 많은 헬라인의 무리와 유력한 인사들의 부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얻을 수 있었다(행 17:4). 데살로니가에 있는 동안 바울 일행을 접대했던 야손, 아리스다고(행 19:29; 20:4; 27:2; 골 4:10), 세군도(행 20:4), 데마(골 4:14; 딤후 4:10), 가이오(행 19:29) 등이 주를 영접하였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환영받지 못하자 그들은 데살로니가의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하였고, 그 결과 데살로니가를 떠날 때 그들이 설립한 기독교 공동체에 상당수의 이방인들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 주 후에 바울 일행은 소동에 휘말리게 된다. 그 소동의 주체는 유대인들이었다. 폭동을 일으킨 이유는 이방인들, 즉 유대교에 호감을 가지고 유대교 회당 예배에 참여하던 이방인들이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으로 전향하는 것을 시기했기 때문이었다(행 17:5). 그래서 바울 일행을 응징하기 위해 군중 봉기를 일으켰는데, 그 증거로 제시했던 죄목은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라고 하여, 즉 “예수를 가이사로 선포한다”는 것이었다. 폭동을 선동한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이끌고 갔던 것이다. 그들이 바울 일행들에게 덮어씌웠던 죄명은 중대한 범죄였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행 17:6). 이 말 속에는 체제 전복이나 선동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들이 고소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당시 상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로마는 황제 숭배 사상을 강요하고 그것을 정치 이데올로기화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는 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가이사와 그 후계자들은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고, 17:7에 나오는 ‘가이사의 명’은 황제에게 개인적인 충성을 바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로마 황제 숭배와 더불어 로마 제국 전역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 공동체에서 광범위한 반(反)로마적 소요가 일어나고 있었던 상황도 기억해야 한다. 로마의 속박에서부터 자유 하려는 유대 팔레스타인의 반(反)이방적, 반(反)로마적 운동은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 치하 때(주후 41-54)에 유대 땅에서 매우 활발하였는데, 이들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은 본토 팔레스타인에서만 제한된 것이 아니었다. 호전적인 메시아사상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열병처럼 번져나갔고 로마 제국의 속주와 성읍들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그러한 유대인들의 반로마적 정치적 소요와 바울의 ‘메시아사상’을 구분하지 못하였다. 로마시(市)에서도 최근에 소요가 일어나서 그 결과 글라우디오는 유대인 공동체를 로마에서 추방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주후 49년, 행 18:2 참조). 한편 알렉산드리아에서도 헬라인 공동체와 유대인 공동체 사이에 격렬한 분규가 일어났는데, 이 사건 직후에 글라우디오 황제는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에게 엄중한 경고의 서신을 보낸 적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이 황제의 명을 거스려 황제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 또는 ‘왕’이라 부르고, 그가 통치하는 새시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선포했을 때 어떻게 보면 로마제국과 정치적 대결을 초래하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물론 바울은 제국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라고 교훈하였으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시기하여 정치적 사건으로 본질을 교묘하게 위장하여 바울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었다.
7) 데살로니가 읍장들의 판결(행 17:5-9)
데살로니가 행정 책임자인 읍장들은 어떤 판결을 내렸는가? 그들은 단순히 보(평화보석금)를 받고 놓아준다. 이것은 처음에 읍장들이 소동했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으로 결국 읍장들이 그 고소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고소 건에 대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사도행전이 야손의 변호 내용과 재판 과정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문은 유대인들의 고소가 거창했지만 법적으로 볼 때 얼마나 무가치한 것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는 로마제국에 반역적인 종교가 아님을 다시 로마 당국자들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이 주제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 과정에서도 나왔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재판(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에도 다시 확인되는 중요한 주제이다.
8) 인격적 모범이 있는 바울의 사역(살전 1:6)
기독교의 모든 사역에 있어서 사역자의 인격이 메시지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기독교 사역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그것은 신적인 차원과 인간적인 차원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데살로니가에서의 그의 성공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 두 가지 차원에 관하여 언급했다. 신적인 차원이란 성령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며, 인간적인 차원이란 디모데, 실라를 포함한 사도들의 인격에 관계되는 것인데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5). 즉 말로만 전해진 복음은 살아 있는 복음이라 할 수 없으며 실제로 활동하는 복음이 살아 있는 복음이다.
마르센(W. Marxsen)은 “자신의 삶으로 증언되는 복음만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살전 2:1-13에 걸쳐 복음의 내용으로서 데살로니가교회에서 자기가 살았던 삶 외에 어떤 다른 내용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리하시도다”(살전 2:10).
그는 또한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에게 “너희는…우리와 주를 본받을 자가 되었다”(살전 1:6)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스도는 ‘모범’이고 바울은 그를 ‘본받은 자’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로서의 바울은 공동체의 ‘모범’이다. 여기에서 그 순서가 중요하다. 즉 그들은 바울에게 먼저 돌아오고 나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모범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바울에게 이끌려 왔고 그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된 것이다.
바울은 그의 삶에서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말씀과 같이 훌륭한 인격적인 본을 보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는 말을 자신있게 하였던 것이다.
Ⅲ.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1.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1) 연속성
제롬(Jerome)이 사도행전을 가리켜 ‘적나라한 역사’(naked history)라고 부른 이후 오랫동안 사도행전은 최초의 교회 역사가였던 누가가 기록한 초대교회 역사로 생각되어 왔다. 보수주의자들은 사도행전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신빙서 있는 역사로 옹호하면서 사도행전의 내용이 그 당시의 지리, 여러 관리들의 명칭들 및 제 1세기 생활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증명하려 했다. 반면에 회의적 비평가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이 바울 서신들에 기록된 내용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곤 하였다. 그러나 여하간에 옹호자나 반대자를 막론하고 그들이 사도행전을 사도시대의 역사로 보는 점에 있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사이의 일치성은 역사나 성경본문의 관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사도행전 16-18장까지 나타난 바울의 제 2차 선교여행의 노정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이다. 이것은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오는 장소들과 일치한다. 또한 살전 1:1의 문안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할 당시 실라는 바울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실라는 제 2차 선교여행시에 바울과 동행했었지만 1차나 3차 선교여행 때에는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들이 데살로니가전서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여정대로 제 2차 선교여행중에 기록되었다는 보는 것이다. 구체적인 시기를 보면 주후 51-53년 사이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할 당시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기대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잇는 것 등으로 인해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음이 판명되었다. 막 9:1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한 예수의 말씀을 직접들었던 자들도 전부 죽었다. 그런데도 세상이 매일매일 그대로 계속되고 있으며 마지막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 종말의 재난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되자 기독교 메시지가 전부 잘못된 것이나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교회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교회가 존속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이 계속 지속되는 이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여 적응해야만 했었다. 거기에 대한 누가의 대답이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이었다. 누가는 예수에 대한 전승 자료를 재정리하고 사도들 및 기독교가 새로이 전파되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기독교의 종말론적 메시지를 역사화시켰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가 죽은 후에도 교회에 의해, 성령에 의해 계속된다는 그의 신학적 입장과 해석에 의해서 그리고 역사를 인정하는, 그리고 바로 그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은 약속되고 성취되어 간다는 ‘구원사’라는 개념에 의해서 그는 그의 동료 기독교인들에게 이 위기에 대처하도록 도운 것이다.
이런 관심과 의도로 인해서, 사도행전에서는 마지막 날들이 보다 긴 시대로 나타나고 있고,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 자체가 마지막의 시작이 아니라 “보다 긴 시대”의 시작, 즉 교회의 시작으로 이해되고 있다. 더 이상 성령이 종말론적 은사로서가 아니라 궁극적 구원의 소유를 위한 보증과 담보, 즉 그 대리로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가에서 종말의 선구자로 등장한 세례 요한을 누가는 더 이상 종말론적 선구자로서가 아니라 예언자중 마지막 인물로 그렸으며 따라서 요한은 오직 한 가지 율법만을 즉 나보다 강한 자가 오실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만을 선포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종말에 관해서는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며 땅 끝까지 내 증인”(행 1:75)이 된 후에야 이를 것으로 보고 그 때까지를 교회 선교의 시대로 보았다. 이렇게 누가에게서는 종말론이 바울 신앙의 중앙에서부터 끝으로 옮겨졌으며 마지막 일들에 관한 항목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누가의 신학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는 자기 자신을 바울에게서 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의 부활, 세계 종말을 임박한 미래로 기대한, 그리고 재림을 새시대의 시작으로 이해한 초대교회와도 구분시켰다.
바울도 초대교회적 임박한 재림의 기대 가운데에서 살았고 그렇기에 세상에 대해서는 “않은 것처럼”의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고전 7:29 참조).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세계 역사의 전환점은 이미 일어난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행위를 나타내심으로써 시작되었다(갈 4:4). 이렇게 ‘때의 완성’(갈 4:4)이 이미 일어났기에 그는 오는 세대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더구나 바울에게 있어서 ‘이미’와 ‘아직’은 양적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구원의 현재성과 미래성이 역설적으로 동시적인 것이었지 결코 시간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이원론은 아니었다.
물론 누가도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행 2:16-35; 눅 16:16). 그 점에서 누가는 바울과 일치하며 초대교회와는 구별된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며 만물을 회복시키는 재림의 때에만 일어나는 것이다(행 3:19). 이 점에서 누가는 초대교회와 일치하며 바울과 구별된다.
여기에 누가의 역사 개념이 계속적인 구속적 역사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옛시대의 종말을 고하셨기 때문에 새시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에 새시대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누가는 구원사건을 구원역사로 바꾸어 놓았다. 이와 같이 누가의 사상에서 우리는 임박한 최후 구원에 대한 초대교회의 기대를 찾아 볼 수 없고 ‘지연된 종말론’적 접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데살로니가서에 언급한 ‘지연된 종말론’과 그 내용을 같이 한다.
2) 불연속성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사이의 불일치성은 성경본문과 신학적 배경의 관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공동체의 상황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바울이 아덴에서 데살로니가로 디모데를 보낸 사정이 전제되어 있는 진술들을 제시하고 있다(3:1). 1:1과 3:6에 따라서 디모데와 실라가 바울과 함께 있었고, 디모데는 데살로니가로부터 소식을 가져왔으며, 더욱이 3:1에서는 바울이 더 이상 아덴에 있지 않은데도 아덴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대다수 견해는 데살로니가전서가 고린도에서 쓰여졌다고 한다. 바울은 아덴에서부터 고린도로 왔었으며, 행 18:5에 따르면, 그것에서 디모데와 실라가 바울을 다시 한번 더 만났다. 디모데가 아덴에서 데살로니가로, 다시 고린도로 돌아오는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데살로니가인들의 믿음의 상태에 관한 소식이 퍼지려고 해도 시간이 허락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는 50년경에 쓰여졌어야만 한다. 여러 가지 반대가 이 제안에 대해서 제기되었다.
먼저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싸우고 있던 대적자들은,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에서 공격하던 자들과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바울도 자신에 대한 같은 비난들에 대해서 변호해야만 하였다. 그것은 데살로니가전서가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에서와 같은 활동기간동안에 쓰여진 것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인들의 신앙에 관한 소식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퍼졌다든지(1:8), 그 공동체가 박해를 당했다든지(2:14), 그 안에 이미 조직이 있었다든지(5:12) 하는 등의 보도는 그 교회가 세워진 때로부터 몇 달 이상임에 틀림없는, 보다 긴 시간적인 거리를 암시해 준다. 또한 공동체 내에 발생한 여러 건의 사망은 그렇게 짧은 기간 이내에 있을 수 없다.
행 17:14에 따르면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아 있었지만, 아덴에 있는 바울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자기에게로 오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들은 마게도냐에서 나와서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났다(행 18:5). 그러한 이야기는 살전 3:1-6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바울은 자기가 그렇게 급히 떠나야만 했던 새로운 공동체의 소식을 알고 싶은 심정에서, “우리만 따로 아덴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디모데를 보냈다”(살전 3:1). 즉 데살로니가로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3:5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제거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은 증명할 수 없고, 아마도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은 바울의 동료들의 여행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학적 배경을 통해 살펴본 불일치성이라면 누가 문서의 특징 중 하나는 예수의 죽음에 관한 견해가 신약의 다른 문서들, 특히 바울 서신과 다른 점이다. 즉 누가 문서에서는 예수의 죽음이 바울 서신이나 다른 공관복음서들에서와 같이 죄의 용서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 사도행전의 설교들에서 예수의 죽음의 구원론적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울 이전 전승 가운데서도 나타나고 있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 사상이 사도행전의 설교들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가 명하신 대로 베드로와 바울이 죄의 용서를 전하고 있기는 하다(베드로-행 2:38; 3:19; 5:31; 10:43; 바울-행 13:38; 17:30; 26:18).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죄의 용서를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연관시키고 있지 않다.
누가의 이런 관심은 세례와 성만찬을 예수의 죽음과 관련시키지 않은 데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인의 세례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지만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또한 성령과 연관되고 있을 뿐 예수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지 안다. 성만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눅 22:16-19은 순전히 종말적이 어조로 되어 있을 뿐 희생적인 어조로 되어 있지 않은데, 부활하신 주님이 예수와 함께 음식을 나눈 이야기도 성만찬의 형태로 주어지고 있지만 여기서도 예수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나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 식사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축하하는 것이며, 제자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만찬에 대한 언급들(2:42-46; 20:7, 11, 27-35)에서도 떡 떼는 일이 예수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
이외에도 누가 문서에는 십자가, 죽음, 속죄 등과 같은 개념들이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누가 문서 연구가들은 누가 문서에 ‘십자가 신학’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C. H. Dodd는 사도행전 설교의 케리그마와 바울 서신의 케리그마를 비교해 볼 때 “예루살렘 케리그마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생애, 죽음, 부활의 결과가 죄의 용서이지만, 이 용서가 구체저긍로 그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으며, J. M. Creed는 누가의 문서들 가운데서 십자가에 대한 바울적인 해석이 나타나고 잇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예언서들에서 그렇게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되는 것 이외에는 사실상 십자가의 신학이 없다”고 말했다. 케제만(E. Käsemann)은 이것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영광의 신학이 이제 십자가의 신학을 대치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하였으며, G. Vos는 “부가에서는 예수의 죽음이 희생의 성격을 갖고 있지 않으며, 속죄적 활동으로 이해되고 있지도 않다”고 하였고, C. F. D. Moule은 “사도행전에서는 누가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분명한 구원론적 해석이 거의 완전히 나타나지 않다”고 지적한다. H. Conzelmann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십자가 사상이 선포 가운데서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누가가 paradidonai(넘겨주다)란 단어를 사용할 때에 있어서 조차도 속죄의 사상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누가가 바울의 주석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수난과 십자가의 구원적 의미에 관한 교리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가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보다 부활에 더 관심을 갖고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모든 설교들의 기독론적 케리그마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는 말로 요약되고 있는 점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행 2:23-24, 32, 36; 3:15; 4:10; 5:30; 10:39-40; 13:29-30; 17:31-32 참조).
이처럼 누가의 증언에서는 십자가의 죽음보다 예수의 부활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누가의 신학을 부활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누가의 신학적 관심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치중하는 서방신학과 달리 예수의 부활 승천을 강조하는 동방 신학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2.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1) 연속성(통일성)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사이의 일치성을 살펴볼 때 기록자와 수신처에 동일성이 있다.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모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기록자이다. 그리고 수신처 또한 모두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이다.
그러나 하르낙(Harnack)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서로 따로 모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살전은 이방인교회에게, 살후는 유대인 교회에게 보내어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살전에서는 수신자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하므로 이방인에게 보낸 것이며, 후서에는 구약성경과 관련된 단어가 많으므로 유대인들에게 보낸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이방인들로 구성된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많은 구약성경의 자료들이 제시된다는 것과 본서신에는 유대주의 색채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구약성경을 직접인용한 귀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위의 견해의 타당성을 희박하게 한다. 그리고 두 서신의 서두는 동일하게 시작된다(살전1:1; 살후1:1-2).
그리고 Hugo Grotius(1641) 이후로 데살로니가후서가 데살로니가전서보다 더 먼저 쓰여졌다는 것이 자주 제안되어 왔다. 데살로니가후서의 진정성을 처음으로 부인한 사람은 슈미트(J. E. Christian Schmidt)이다. 그는 주로 살후 2:1-12을 문제삼았다. 즉 거기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언급된 바 있는 재림문제에 대하여 상기시키는 말이 전혀 없고 재림에 대해서 처음 다루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으며, 또 적그리스도에 관한 경고와 또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들이 바울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데베테(De Wette)도 슈미트를 따라서 처음에는 진정성을 부인하였지만 후에 그 태도를 바꾸었다.
케른(F. H. Kern)은 살후 2:1-12에 나타나는 묵시문학적 묘사가 계 13:3이하와 17:8이하와 유사한 것이어서 주후 68-70년에 해당한다고 하여 후서가 바울의 글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바울주의자가 후에 전서의 자료에서 만들어낸 윤곽속에다 그러한 묵시적 광경을 그려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우어(Baur), 힐겐펠트(Hilgenfeld), 플라이더러(Pflwiderer), 하우스라트(Hausrath) 등이 케른의 주장을 따랐다.
홀츠만(Holtzmann)은 살후 2:1-12과 살전 4:13-5:11에 나오는 미래에 대한 묘사가 상반된다는 사실과 후서는 거의 전적으로 전서에서 발췌하거나, 풀이하거나 변형한데 불과하다는 이유를 들어 후서의 진정성을 부인하였다. 브레데(Wrede) 역시 후서의 진정성을 부인하고 후서는 주후 100년경에 전서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글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밖에도 후서의 진정성을 부인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타났다(Masson, Braun, Julicher, Bultmann, Scoeps, Fuchs, Bornkamm, Schart, Beker 등).
데살로니가후서가 전서보다 더 먼저 쓰여졌다는 근거로는 첫째, 데살로니가전서가 정경에서 데살로니가후서보다 앞에 놓인 것은 그것이 더 길기 때문이었다. 둘째,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파송되었을 때, 서신을 지니고 갔었을 것이다. 셋째, 데살로니가후서의 관심은 현재에 있는데 전서에서는 그것이 과거에 있다. 넷째, 살후 3:11에 나타난 무질서는 새로운 것인데, 살전 4:10, 12은 너무 간단해서 그 경고는 살후 3:6에 근거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다섯째, 개인적인 서명에 대한 언급은 살후 3:17에 나오는데, 이것이 첫 번째 서신이라고 할 때에만 이해된다. 여섯째, 그 공동체가 때와 기한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진술(살전 5:1)은 그 구성원들이 이미 살후 2:3를 읽었다고 할 때에만 더 잘 어울린다. 일곱째, 살전 4:9, 13; 5:1에서 περί를 사용해서 그 공동체에서 문제가 되었던 질문들에 언급한 것은, 이러한 질문들이 데살로니가후서에 있는 진술들에 대해서 공동체가 문제를 제기했다고 할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여덟째, 데살로니가후서에 있는 종말론과 기독론은 데살로니가전서에 있는 것보다 더 원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 그 근거로 첫째, 수집된 바울서신들 사이에서 위치변동을 추측한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둘째, 디모데는 동료 발송인이다. 그러므로 편지를 소지했을 리가 없다. 셋째, 살전 3:3에 따르면 환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데살로니가에 주어진 상황들은 어느 때이고 새롭게 시작될 수 있었다. 살후 1:4이 보여주듯이 환난은 사실상 시작되었다. 넷째, 바울은 이미 그 공동체를 설립할 때에, 종말론적인 여광주의에서 발생되는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경향에 대하여 경고하였다(살전 4:11). 그는 그것을 살전 4:10과 5:14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데살로니가후서는 엄격한 기준들을 택하여야만 되었고, 그것을 위해서 바울은 살전 4:10; 5:14에 언급하는 것보다는, 그 공동체가 설립되던 때에 주어졌던 구두 명령에 자연히 더 호소하게 되었다. 다섯째, 바울은 고전 5:9; 고후 2:3; 7:8, 12뿐만 아니라 살후 2:15에서도 그 이전에 쓰여진 편지들을 회상시키고 있다. 그리고 살후 2:2은 아마도 자기 이름을 된 위조 편지가 데살로니가에서 회람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자기의 편지 쓰는 버릇에 대한 살후 3:17에 있는 표현을 충분히 정당화시킨다. 여섯째, 살전 5:1은 4:9에서처럼 구두로 가르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일곱째, 공동체 안의 현재의 어떠한 문제들도 바울의 편지에 의해 야기된 것임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여덟째, 데살로니가후서는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을 언급하지 않지만, 그것이 데살로니가전서보다 더욱 초기의 종말론적인 견해를 암시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데살로니가후서에서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거기서부터 순수한 미래적 종말론을 추측할 수는 없으며, 특히 살후 3:18은 이미 높임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그러나 살전 2:17-3:10은 공동체에 보낸 첫째 편지 안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은, 데살로니가전서가 그 공동체에 대한 두 번째 편지라는 가정에 대해 결정적으로 반대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의 순서는 원래의 것임에 틀림없다.
2) 불연속성(불통일성)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사이의 종말론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바울서신중 초기서신으로 알려진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유대교와는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의 종말론 교리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서신이다. 데살로니가전․후서에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교인들에 대한 칭찬과 아울러 행위에 대한 윤리관도 어느 정도 서술되어 있는 반면 이신칭의로 대변되는 바울적 구원관은 아직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사이 나타나는 종말론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서술되었음을 찾을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휴거와 지상천국에 대한 견해차를 볼 수 있다. 전서에서는 휴거를 주장하지만(살전 4:16-17), 후서에서는 지상천국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살후 1:6-7). 살전 4:16-17을 보면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 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4:16, 17)고 하였다. 한편 살후 1:6-7에서는 지상 천국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살전 1:6-7을 보면 “하나님은 공정하셔서 여러분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괴로움을 당하게 하시고 괴로움을 당하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일은 주 예수께서 당신의 능력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복수하는 야훼 대신 복수하는 예수가 등장한다.
둘째로 재림시 예수의 묘사에 대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전서에서는 예수 재림시 하나님의 진노에서 성도들을 보호해주시는 권능자로서 보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는(살전 1:10) 반면, 후서에는 비신자들을 처벌하시는 예수로 묘사(살후 1:8)된다. 살전 1:10에 하나님의 진노에서 성도들을 보호해주는 권능자로서의 예수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그분은 장차 닥쳐 올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실 분입니다”(1:10). 한편 살후 1:8에는 비신자들을 처벌하시는 예수를 묘사하는데 “주께서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1:8)라고 하였다.
셋째로 종말의 때에 대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전서에서는 예기치 않을 때 종말이 임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살전 5:3), 후서에서는 종말의 때에 배교자가 생기며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등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나리라고 예언한다(살후 2:3). 살전 5:3에 사람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을 때 종말이 올 것을 예언한다. “사람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해산할 여자에게 닥치는 진통과 같아서 결코 피할 도리가 없읍니다”(5:3). 그런데 살후 2:3에는 배교자가 생기며 소위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등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나리라고 예언한다.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며, 또 멸망할 운명을 지닌 악한 자가 나타날 것입니다”(2:3).
넷째로 최후의 심판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살전 5:9-10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을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반면, 살후 2:8, 12에는 최후의 심판시 불신자, 배교자, 적그리스도 등을 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살전 5:9-10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을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읍니다”(5:9-10). 반면 살후 2:8, 12에는 불신자, 배교자, 적그리스도 등을 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는 다시 오실 때에 당신의 입김과 그 광채로 그자를 죽여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2:8). 그리고 “결국 진리를 믿지 않고 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단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2:12)라고 멸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주지하는 바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 묘사된 종말론의 차이는 그리스도인들만의 지상천국을 그리는 후서와 재림 후 최후의 심판 그리고 휴거를 주장하는 전서와의 사이에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종말관 적용의 차이발생의 근거는 무엇이며 그 의도는 무엇인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 나타난 종말사상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후서의 진정성을 반대하지만, 후서에 나타난 표현들(2:3; 2:7)이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전통적인 종말적 표현들이며 유대교화 초대기독교회가 가졌던 묵시사상이라는 점을 알 때 그것들이 서로 모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후서의 언어와 문체에 있어서도 몇몇 낱말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바울적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후서는 전서를 모방하거나 발췌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동일 저자의 글이기 때문에 일어난 유사성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Ⅳ.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 사이의 독특성 비교
1. 부활․승천론 비교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과 함께 증거가 있었음으로 해서 처음에 미미하게 시작된 복음운동이 불과 30년 동안에 로마 제국의 중심지까지 이르는 놀라운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초대교인들이 증거한 중심문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이것은 바울을 회개시킨 진리이며 바울이 전한 복음의 힘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지만 초대교인들의 증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아직도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누가의 부활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복음서들 가운데서 오직 누가 문서에만 등장하는 예수의 승천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들처럼 부활현현(the resurrection appearance) 이야기들로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승천’(ascension or assumption)으로 끝나고 있다(눅 24:51 참조). 이것은 누가복음의 속편인 사도행전의 서두에서 예수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더불어 계시다가(행 1:3)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다”(행 1:9-10)고 말하는 것과 일치되고 있다(행 1:9-10, 11 참조). 행 1:10-11에서는 “하늘로”란 문구가 4번이나 반복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의 승천에 관한 언급이 오직 부활 현현의 문맥 가운데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의 특수 자료라고 말 할 수 있는 여행 부분의 첫머리에서 누가는 이미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가까웠기”(눅 9:51) 때문에 부활과 승천의 장소인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을 떠나시는 것으로 언급한 바 있다. 마치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이 그가 하늘로 들려 올라가기 위한 승리적 과정의 일종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런 승천 이야기와 함께 주목해야 될 본문은 예수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심을 강조하고 있는 본문들이다(행 2:33-35; 5:31; 7:55; 눅 22:69 참조).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는 이제 더 이상 ‘땅 위에’ 계신 분이 아니라 ‘하늘에’, 그리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신 분이다. 행 2:33에서는 높이 들려 올리우신 예수가 성령을 부어주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행 3:21에서는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예수는 하늘에 계실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예수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날 때에도 하늘로부터의 특별한 나타남이었다(행 9:3; 22:6; 26:13). 다른 경우 예수가 나타날 때에는 오직 ‘환상’(vision) 가운데서 였다(9:10; 22:17-18; 23:11). 또 다른 경우에는 ‘성령에 의해서’ 혹은 ‘천사들(사자들)에 의해서’(8:26, 29-39; 11:28; 12:7; 13:4; 15:28; 16:6, 7; 20:23; 21:11; 27:23)였다. 이와 같이 다른 어떤 신약 문서들에서 보다 더욱 일관성있게 사도행전은 예수를 “높이 들려 올리우신 분”(the exalted one)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말하자면 잠정적으로 이 땅위에 안계신 분(the absented one)으로 그러나 성령에 의해 지상에 “나타나시는”(represented)분으로 등장되고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 특히 사도행전의 기독론을 가리켜 ‘부재(不在) 기독론’(the absentee christology)이라고 말하기도 하다. 따라서 누가의 ‘부재 기독론’은 누가의 ‘승천의 신학’ 혹은 ‘영광의 신학’의 또 다른 한 면이기도 한 셈이다.
2. 재림론 비교
데살로니가전서에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갖고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의문과 염려에 대해 바울이 답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를 ‘재림의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재림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쓰여졌다. 그러므로 종말론적 교훈과 묵시 문확적 표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를 성결의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깨어 근신해서 빛의 거룩함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며, 재림을 소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하나님이 유일하고 참되신 분으로(살전 1:9) 모든 것을 인도하신다는(살전 3:11) ‘신론’과 그리스도를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는(살전 1:1) ‘기독론’이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환난가운데서도 기쁨을 주시는 성령(살전 1:5)에 관한 ‘성령론’과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성도들이 구원을 얻게되었다는 ‘구원론’이 기록되어 있다(살전 5:10). 그러나 본서신에서 가장 중심되는 사상은 이방인 개종자들의 사회적 책임과 종말론으로 특별히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나타날 현상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의 압력을 데살로니가 교회는 잘 견디고 있었다. 반면에 문제가 된 것은 내부에서 일어난 잘못된 종말관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생활이 문란해진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여 일도 하지 않고 세상에서 해야할 육신의 일을 등한시하였다(살전 4:11).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지를 염려하고 걱정하여(살전 4:13-18) 신앙생활에 많은 혼란을 빚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일들은 초보단계에 있던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해야할 자신들의 사명을 망각하게 하고 세상일에 무관심하도록 만들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바울의 지론인 ‘이신칭의’의 구원론을 중점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으나 다만 종말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은 본문중에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가장 절정에 이른 구절은 1:10; 2:19; 3:13; 4:13-18; 5:23이다. 주의 재림에 관하여 벵겔(Bengel)은 말하기를 “주를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 신자의 가장 확실한 특징이다”라고 하였다. 또 칼빈(J. Calvin)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 세상의 것으로써 우리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함으로써 만 우리의 심령을 안정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가르친 재림교훈의 내용에 대한 오해가 있는 듯하다. 먼저 초대교회에서는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안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살전 4:17; 살후 3:8-13; 참조, 마 16:28; 요 21:22).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신자로서 이미 죽은 사람은 예수의 재림에 기쁨을 누리지 못할 터이니 걱정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일까 하여 추측해 보는 사람도 있었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재림관으로 ‘죽은 자의 문제’이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첫째, 우주적 부활과 심판은 주의 강림하실 때 일어난다. 둘째, 그때 살아있는 자(성도)라고 해서 이미 잠든 성도보다 앞서지 못한다.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호령과 나팔소리와 함께 심판자로서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신다. 넷째,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부활에 참여한다. 다섯째, 그 후에 살아있는 성도들도 공중으로 휴거하여 주를 영접하고 그 다음에 영원히 주와 함께 사는 천국영생에 들어간다.
한편 데살로니가후서를 쓰게 된 동기는 데살로니가에서부터 온 다음과 같은 소식으로 인한 것이니 첫째로 교회를 반박하는 핍박이 증가되며(살후 1:4-5), 둘째로 주님의 재림과 주의 날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살후 2:1-2), 셋째로 그들 가운데 혹자의 망상적이고 태만한 기대(살전 3:6-12) 등에 대한 소식을 듣고 기록한 것이다. 아마도 이런 소식은 데살로니가전서를 가지고 간 사람을 통하여 바울에게 전달된 듯한데, 하여간 이것은 고린도에 퍼졌던 단순한 하나의 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즉각적으로 재림할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재림에 대한 바른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 후서를 기록하였다.
결론적으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모두 종말론적 교훈이 신학적 이슈이며 주제이다. 후서 또한 전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며 따라서 연속되어지는 서신이라 하겠다. 데살로니가교회는 핍박을 당하면서 신앙관에 혼란이 왔고 적절한 지도와 위로가 필요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두 가지 서로 관련된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 하나는 파루시아가 지체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당하여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죽음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태에 있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 친족들은 어떠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재림의 사건이며 그 전의 징조이다. 후서의 재림관에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는데, 즉 살전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은밀하며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으로 표현된 것에 반해(살전 5:2) 후서에는 재림전의 종말의 징조로 거짓교사들과 거짓그리스도의 출현이 언급되어 있다(살후 2:1-12).
한편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사이에 상이한 분위기의 흐름이 있다. 전서에는 어버이와 같은 자상한 바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었음에 반해(살전 2:11-12, 17) 후서에서는 사도로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훈계하는 엄격한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살후 3:6-14). 그런데 이와 같이 데살로니가후서가 내용상 데살로니가전서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림관이나 분위기상의 차이가 있는 것은 전서를 쓸 때와는 달리 후서를 쓸 때에는 데살로니가교회에 큰 위험이 있었음을 암시한다(살후 2:1-3; 3:6-14).
3. 종말(심판)론 비교
사도행전은 역사이지만, 분명히 신학적이고 특히 종말론적이다. 사도행전은 종말론적인 문제를 제시하며(1:6) 종말론적인 용어를 사용한다(하나님의 나라, 28:31). 그리고 사도행전은 예수와 함께 종말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도한다. 왜냐하면 종말론이 단지 미래의 문제만이 아니며,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죽음과 부활에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을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획의 완성에 대한 강조는 예수가 다윗의 왕위를 받아 이스라엘을 회복할 자(행 1:6; 눅 24:21 참조)와 다윗의 자손(행 13:23)으로 언급되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활동하는 예수와 사도행전에서 예수의 부활 이후 설립된 교회를 마지막 날들이 도래했음을 증거하는 표상으로 이해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예수는 참 메시아도 아니고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종말이 교회가 살아가는 현재의 세상에 이미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활동하는 시간인 현재에 대한 신학적인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사도행전에 드러나는 누가의 종말론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종말론의 문제를 여러 곳에서 다루고 있다(6:20-26; 12:1-13:9; 17:20-18:8; 19:11-27; 21:5-38).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그가 강조한 것을 다시 고려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특이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시간보다 그 나라에 속할 대상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종말론에 관한 진술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단지 몇 개의 연설들에서만 간단한 언급들을 발견한다.
행 1:11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누가는 파루시아를 무시하지 않고, 예수가 승천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시 올 것이라는 사실을 확언한다. 누가는 예수가 기대한 것만큼 빨리 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행 3:19-21에서 사용되는 ‘유쾌하게 되는 날들’(καιροι αναψυξεως), 그리고 ‘만물의 회복’(αποκαταστασεως παντων)이라는 언급에서 종말론에 대한 유대교의 전승들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70인역 출8:11(15절)에서 아낲슄시스(αναψυξις)가 단 1회 쓰이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데, 이것은 회개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서 얻게 되는 휴식과 회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브루스(Bruce)는 이것을 초기 종말론의 혼합으로 이해한다. 특히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에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한 사실은 새 시대의 여명을 알리는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다. 그 이유는, 2:17이 밝히듯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이 자기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의 큰 일’(τα μεγαλεια του θεου)로 지시하는 행 2:11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누가는 행 2:17-21에서 욜 3:1-5를 인용하는데, 요엘서를 길게 인용하는 이유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요엘의 예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며, 둘째는 이스라엘이 성령의 새롭게 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제자들의 체험과 결합해서 새로운 역사의 전환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서와 그 이후 시대에서 성령의 갱신은 다가올 시대를 상기하게 만드는 종말론적 기대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러므로 누가가 현재를 종말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요엘의 예언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누가는 분명히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을 종말 사건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누가의 종말론을 해석함에 있어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행 2:17에서, 70인역의 ‘이 일들 후에’(μετα ταυτα)를 ‘그 마지막 날들에’(εν ταις εσχαταις ημεραις)로 대치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수정을 통해서 누가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성취된 것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종말의 시작으로 파악하고 있다. 즉 누가가 이렇게 수정하는 이유는 기대했던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요엘서의 인용은 이 마지막 날에 무엇이 일어날지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 마지막 날들은 파루시아와 함께 끝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이것은 눅 21:5-28에서 성전의 종말, 공동체가 당할 박해, 예루살렘의 종말 그리고 인자의 도래를 언급하는 예수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여기서 누가는 종말론적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들과 주의 날에 끝나는 묵시적 사건을 구분한다. 우리는 눅 17:20-37의 연설에서 동일한 분리를 발견하게 된다. 종말의 시간은 예수와 함께 하지만, 인자의 날은 종말 때의 마지막이 된다. 그러나 주의 날이 얼마만큼 가까운지 혹은 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래서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도 없다. 파루시아의 지연에 대하여 어떤 언급도 없으므로 누가 시대의 교회는 박해의 시간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발생하는 여러 가지 박해는 종말론적 증거들이다. 눅 21:31 이하는 가까운 미래를 지적한다.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이것은 예수와 동시대의 세대가 종말론적 현상들과 파루시아를 포함하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기 전에 모두 죽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임을 의미할 수 있다.
동일한 입장에서 눅 21:31이하는 눅 9:27에 있는 예수의 말씀들을 지적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의 말씀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현재적 사건임을 지시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서 분명히 인자가 오는 것과 일치한다(눅 9:26).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이후 항상 실재하지만, 그의 도래의 날은 미래에 놓여 있다. 놀란드(Nolland)는 그의 논문에서 첫째 논제를 이렇게 개진한다. “복음서에서처럼 사도행전에서도 누가는 그 자신의 세대에 파루시아에 대한 기대를 지속한다.” 그의 둘째 논제 역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적 차원과 현재적 차원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의 빈도가 복음서보다는 사도행전에서 훨씬 못 미치지만, 7회는 확정적으로 쓰이고, 나머지 5회는 복음서의 언어를 반영한다고 주장함으로 누가 문서가 제시하는 현재와 미래 두 차원의 종말론적 이해를 제안한다.
그렇다면 누가의 이러한 의도는 어떻게 해명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누가의 종말론 해석에는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누가는 예수의 파루시아를 통한 종말론적 진술이 갖는 현재와 미래의 긴장을 통해서 그의 독자들에게 ‘목회 지침’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누가 문서의 원 독자들이 경험한 역사적 사건과 그 배경에 대한 여러 입장들이 있지만, 70년을 전후해서 로마에 대항한 유대 전쟁과 로마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현실 속에서 신앙의 위기에 처한 독자들을 향해서 누가는 목회자의 정열과 관심을 가지고 종말의 현재화로서 예수의 도래를 역설한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독자들인 누가의 공동체에게 큰 용기를 제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사례를 에슬러(P. F. Esler)와 공유할 수 있다. 에슬러(P. F. Esler)가 초기 기독교에서 이방인 선교에 대한 심각한 갈등을 설명하면서 식탁 교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듯이, 누가의 그룹에는 유대교의 정결법을 준수하는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이 함께 하는 식탁 교제로 갈등이 표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누가의 청중들에 대한 일치된 의견은 헬레니즘적이고 비-유대적 그리스도인들로 규정했었지만, 최근의 경향은 그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합류했다는 의견에 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에서도 그 타당성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이 노골화되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답변을 누가는 종말론적인 진술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누가는 승천한 예수가 다시 올 시간을 먼 미래의 것으로 제시하지 않고 근접한 것으로 말함으로 진정한 신앙의 모습을 드러낼 것과 신앙 생활의 긴장을 제공함으로 독자인 그리스도인들을 지도하며 현재의 삶에 지침을 제공하는 ‘권고(paraenesis)의 종말론’을 개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데살로니가전서는 여기저기에 종말론과 관련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재림주로 오시는 예수를 다가올 심판에서 성도들을 건지시는 분으로 나타내고 있다(살전 1:10). 또한, 주의 강림과 죽은 자들에 대하여(살전 4:13-18) 말하고 재림의 시기(5:1-11)에 대하여 말한다.
바울은 살전 4:13-18에서 ‘죽은 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종말에 대한 것들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바울의 일행은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늘 하던 대로 유대인의 회당을(행 17:1). 그 곳을 중심으로 약 한 달에 달하는 기간을 사역하고 ‘어떤 괴악한 사람들’(행 17:5)로 인하여 그곳을 떠나게 된다. 강단에 설 기회를 세 번밖에 가지지 못하였기에 그가 증거한 것은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과 그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것이었다(행 17:3). 짧은 기간이었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기초적인 것들만 알았지 자세한 것까지는 알지 못하였다.
그들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던 이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미 사망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주의 재림 때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들에 참여 할 수 없는가?”
바울은 이것에 대해서 주의 강림의 순서를 말해준다(살전 4:16, 17). 먼저 주의 강림의 나팔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지고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불복종하는 자들이 받는 영원한 멸망,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물음은 ‘죽은 자들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에 관하여는’이라는 표현을 통해 3차례 바울에게 질문을 던지는 데, 이것 중 2개가 재림에 대한 것이었다. 종말을 기대하는 인간의 심리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고 어려운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기에 그들에게 닥친 환난과 고난의 정도가 상당했음을 상상케 해준다.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서는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르게 된다고(살전 5:2) 말한다. 그러나 그날은 어둠에 있는 자들은 도적같이 느끼겠으나, 우리에게는 그날이 도적 같이 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빛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믿는 이들이 재림을 기다리면서 오직 깨어 근신할 것을 말하는데, 이는 종말론적인 기대감이 현실에 대한 도피 혹은 거부로 변질되어 데살로니가교회에 이미 있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는 데살로니가전서 이후의 교회의 상황을 정리하면서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언급하였던 몇 가지 주제를 더욱 넓고 깊게 전개하고 있다. 데살로니가전서가 데살로니가교회에 전해진 이후에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전서와 후서 사이에 있었음직한 일을 생각해보면, 재림에 대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궁금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질문은 하나님의 심판과 재림에 대한 것으로 이전보다 좀 더 깊은 것이었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바울은 먼저 심판 전에 성도들에게 환난이 있음을 말한다(살후 1:4). 이 환난은 복음과 함께 나타나는 것(딤후 1:9)으로써 이것의 목적은 우리가 그 나라를 위하여 받는 것이다. 이 심판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지 아닌지 여부를 판가름 받게된다(살후 1:5). 그의 이러한 말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에게 한 말과 맥을 같이 하는 데,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도 특별한 영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그들의 고난은 고난을 가하는 대적자들에 대한 심판의 징조와 마찬가지로 그들에 대한 궁극적인 구원의 확실한 징표임을 지적한다(빌 1:28, 29). 바울은 공의로운 심판의 때에는 ‘역전’(Reversal)이 일어나게 됨을 말한다(살후 1:6, 7). 이는 구약의 종말사상인 옵 1:15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왔나니 너의 행한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불법의 사람들’(미혹하는 자들)이 등장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영으로, 말로, 사도에게서 받았다는 편지로써 사람들에게 주님의 날이 곧 이르렀다고 미혹했으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 말에 두려워하거나, 그 쪽으로 쉽게 마음이 움직였다(살후 2:1, 2). 아마도 이 세 가지 중 사도에게서 받았다는 편지가 가장 크게 그들에게 작용했을 것 같다. 브루스(F. F. Bruce)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주의 날이 갑자기 임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그 말에 주의 날의 도래가 “매우 임박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를 통하여 살전 2:2에서 말하는 사도에게서 받았다는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일 가능성을 주장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미혹된 이런 것에 대해 바울은 주님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있을 한 징조를 말해주면서, 여러 말들에 미혹되지 말 것을 당부한다(살전 2:3). 그 징조는 먼저 ‘배도’하는 것이 일어나고, ‘불법의 사람’, 즉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일 후에야 주님의 날이 이른 다고 말한다(살후 2:3). ‘배도’는 정치적 반란이나 종교적 변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권위에 맞서는 전 세계적인 반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치적 반란과 종교적 변절을 결합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승천한 예수가 다시 올 시간을 먼 미래의 것으로 제시하지 않고 근접한 것으로 말함으로 진정한 신앙의 모습을 드러낼 것과 신앙 생활의 긴장을 제공함으로 독자인 그리스도인들을 지도하며 현재의 삶에 지침을 제공하는 ‘권고(paraenesis)의 종말론’을 개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통해서 드러나는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리 우면서 그는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성도들은 깨어있어 그 날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날은 도적같이 임하는 ‘갑작스런 종말’인 동시에 규모있는 생활을 해가며 기다려야 하는 ‘지연된 종말론’을 보인다. 한편 이 종말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런 종말’인 동시에 ‘준비된 종말’이다(살전 5:1-11 참조).
Ⅴ.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서의 통합적 관점에서 본 바울사상의 공시성과 신학적 배경의 종합
행 17:1-9에서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던 바, 바울과 실라는 이곳을 발칸반도 전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초 기지로 삼은 것 같다. 이곳에서의 메시지의 핵심 역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심판이었다(살전 1:3, 10). 한편 훗날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굳건한 신앙과 인내는 바울의 심령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였다(살전 3:6-10).
바울은 핍박으로 인해 급히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난 후에 최초의 서신인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했다. 놀라운 것은 전서가 감사로 시작한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때문이었다(살전 1:3).
그러면 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첫 번째 서신을 기록했는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교회 안에 음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향해서 “음란을 버리라”고(4:3) 하면서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마라”(4:6)고 하였다. 여기서 분수란 말은 경계선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넘어서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 말라는 뜻이다. 성(性)은 세 가지 목적 즉 부부간의 사랑의 표현과 출산과 행복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경계선을 넘어 부도덕(不道德)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님이 곧 재림할 것이란 생각에서 직업에 성실치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권면하기를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4:11-12)고 하였다.
셋째 이유는 재림의 때와 방법을 놓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4:13-17에서 바울은 구체적인 답변을 하게 되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은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들어올림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데살로니가후서는 1-2장은 교리편이고, 3장은 윤리편으로 되어 있다. 바울이 첫 번째 서신을 보냈지만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에 관해서 좀더 기록해야 할 이유가 생겨 바울은 일년도 안 되었을 때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에 두 번째 서신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이유가 후서 2장에 기록되어 있다. 후서도 감사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장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살후 1:3). 후서를 기록할 때에도 교회에 대한 핍박은 여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잘 참고 있었다. 이것을 바울은 기뻐하였던 것이다.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애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1:4). 2장에서는 불법의 사람 즉 적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문제를 대한 답변이기도 하였다. 그러면 심판 전에 일어날 일은 무엇인가? 첫째는 배도하는 일이 일어나겠고(2:3), 둘째는 불법한 자(2:8)가 일어날 것이다. 셋째는 그리스도에게 도전(2:10)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끝으로 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가를 언급한다. 그 이유로 첫째는 주님께 충성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고(2:15), 둘째는 세계 복음화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고(3:1), 셋째는 교회에게 기도를 기회를 주고(3:1-2), 넷째는 그리스도의 인애에 들어가게 할 기회를 위해서이며(3:5), 다섯째는 성결한 생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3:6-14).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인내할 것을 권면하며 데살로니가서신을 마친다.
Ⅵ. 결 론
행 17:1-9에 기록된 것처럼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을 머물며 전도한 바울은 유대인의 폭동으로 인해 베뢰아로 피신하나 그곳까지 좇아온 유대인들로 인해 아덴까지 가게되었다(행17:10-15). 그때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행 17:10), 실라를 베뢰아에(행 17:14) 각각 남겨두었고, 그뒤 베뢰아에서 합류한 실라와 대모데는(행 17:14) 아덴으로 가서(살전 3:1-2; 행 17:15) 데살로니가 교회가 박해와 시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직접 데살로니가로 가기를 원했으나 가지 못하고(살전 2:17-18) 대신 디모데를 그곳에 보내었다(살전 3:2).
얼마 후 고린도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통해(행 18:5)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을 잘 견뎌내며 그 가운데서도 기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그들을 격려하고 또 그들이 가진 잘못된 종말관을 시정함으로써 데살로니가 교회를 굳게 세우기 원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이런 기회에 자신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자들과 정면으로 맞서서 자신은 하나님의 사도로서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전한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말하기 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25년 내외 정도 경과하여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복음서나 다른 서신보다 훨씬 더 순수한 복음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 서신에는 교회가 조직화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대망하는 순수한 성도들의 소박한 일면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본 서신에는 바울의 다른 서신에 비해 종말 사상이 매우 상세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교회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본 서신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후한 사건들과 그리스도의 재림 시 죽은 성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신실한 성도들에 대한 찬사와 격려의 메시지와 함께 그리스도의 재림과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들의 생활 가운데서 구현해야할 성결한 삶을 전서에서 기술하였고 후서에서는 더욱 진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전서와 후서 두 서신은 칭찬과 아울러 애정어린 충고와 권면의 글을 받고서도 그 내용을 곡해하고 잘못된 종말관을 유포함으로써 바르지 못한 행동을 자행하는 일부 완고한 자들에 대한 엄격한 권계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갑작스런 재림을 즉각적인 재림이라고 곡해한 일부 완고한 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경계와 그에 대비한 성도들의 교리적, 실천적 무장을 권면한다.
주의 오심이 가까워 올수록 재림의 시기와 방법에 관한 갖가지 위해한 가르침이 횡행하게 마련인바, 데살로니가후서는 그러한 예언적 혼란기를 겪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말세를 대비한 참된 종말론적 신앙관과 삶의 지향점을 제시해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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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편집·발행인)
CerIII · IV, Diplom, B.Th, M,A, M.Div, M.Th, D.Th, D.Pt ca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