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870년 9월 4일,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퇴위하고 제3공화국 선포
프랑스는 1870년에 일어난 보불전쟁에서 패배해 당시 제2제정 황제 나폴레옹 3세를 내쫓고 1870년 9월 4일 제3공화국을 선포했다.

나폴레옹 3세 또는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 Charles Louis Napoléon Bonaparte, 1808년 4월 20일 ~ 1873년 1월 9일)는 최초의 프랑스 대통령이자 프랑스 제2제국의 유일한 황제이다.
프랑스의 마지막 세습군주이기도 하다.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이자 의붓외손자로 1848년에 2월 혁명 이후 수립된 새로운 공화국에서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쿠데타를 통해 제2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나폴레옹 3세는 국내외 정책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 나폴레옹 3세는 유럽과 세계 곳곳에 프랑스의 영향권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민족주의와 공공 주권을 지지했다. 유럽에서 그는 영국과 연합해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을 패배시켰고, 이탈리아 통일을 지지했으며 이 결과로 사보이와 니스를 획득했다.
같은 해 그는 이탈리아의 교황청 합병을 반대했다. 그의 군대는 멕시코에 원정대를 파견해 제2멕시코 제국을 설립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1866년부터 그는 새로이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한 프로이센과 충돌했다.
1870년 7월 그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스당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
1870년 프랑스 제3공화국이 선포되었고, 그는 영국으로 망명해 1873년 사망했다.
프랑스 제3공화국 (프: Troisième République française)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69년간 프랑스에서 존속한 가장 안정적이었던 공화정 체제이다.
또한 1789년 이후 프랑스의 체제 가운데서 처음으로 안정적으로 돌아가던 체제이기도 하다.
대혁명 이후로 프랑스는 80년간 세 차례의 입헌 군주정, 짧은 두 번의 공화정 (각기 12년과 4년씩)과 두 번의 제정, 총 일곱 개의 정치 체제를 겪었다.
이러한 혼란은 1870년부터 1879년까지 왕정 철폐와 제3공화국 헌법 제정을 위해 생긴 9년간의 국회의 우유부단을 보여 준다.
헌법 제정의 타협으로, 1875년 헌법은 양원제 의회를 확립했고, 공화파들은 프랑스 제2공화국의 선출된 대통령 나폴레옹 3세의 1851년 쿠데타를 떠올리며 국가 수장의 대의적 역할에 동의한다.

제3공화국은 필리프 노르가 말한 것처럼 공화주의자들의 시대, 말하자면 교육과 정교분리, 동맹파업과 노조결성의 자유를 명시한 위대한 법들이 설명하는, 강력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시대에 설립되었다.
이 시대는 프랑스인의 삶이 ‘혁명이 없는 때에 살고 있는듯 정치에 열광적이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것은 뱅상 뒤클레르가 정치국가로서 프랑스 정신의 탄생 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대중들이 원하던 잇따른 사회개혁들, 특히 피고용인을 위한 법률의 제정이 이 시대의 특징이였다.
더욱이 제3공화국은 프랑스 정치사에서 12년밖에 지속되지 않은 제1공화국 (1792~1804)과 4년만에 소멸된 제2공화국 (1848~1852)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공화정 체제를 장기적으로 자리잡게 했다.
보불전쟁의 패배로 건국된 제3공화국은 독일과의 대립이라는 맥락속에서 발전했다.
1940년 7월 10일,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국회는 페텡에게 권력을 위임했다.
다음날인 11일에 페텡은 마침내 프랑스의 국가원수 (비시 프랑스)가 되었고, 제3공화국은 실질적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