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900년 6월 29일, 프랑스의 공군 장교이자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1900 ~ 1944) 출생
앙투안 마리 장 밥티스트 로제 드 생텍쥐페리 (프: 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 1900년 6월 29일 ~ 1944년 7월 31일)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공군 장교였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출생: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론알프 리옹
.사망: 1944년 7월 31일 (추정), 프랑스 부슈뒤론주마르세유
.사인: 제2차세계대전 당시 공군장교로 참전해 비행중 행방 불명
.직업: 군인, 에비에이터, 소설가, 극작가
.언어: 프랑스어
.국적 프랑스
.학력: 빌라 생 진 국제 학교
.모교: Collège Villa St. Jean, 스위스 프리부르
.종교: 가톨릭
.활동기간: 1929 ~ 1944년
.장르: 자서전, 벨레스 레츠, 수필, 아동 문학
.부모: 부) Jean-Marc de Sant Exupéry (1863 ~ 1904), 모) Marie de Fonscolombe
.배우자: 콘수겔 드 세인트 엑우페리 (1931 ~ 1944)
북서 아프리카, 남대서양, 남아메리카 항공로의 개척자이며, 야간 비행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장교로서 참전하고 비행 도중에 행방 불명되었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의 리옹에서 태어나 다카르에서 툴루즈까지 우편물을 항공 수송하는 회사에 다녔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공군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프랑스 북부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1943년부터 다시 프랑스의 공군 조종사로 활동하다가 1944년 7월 그의 마지막 비행에서 실종됐다 (추락사로 추정). 1990년그의 유품으로 보이는 비행기 부품이 발견되었다.

○ 생애 및 활동
앙투안 마리 장 밥티스트 로제 드 생텍쥐페리 (프: 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 1900년 6월 29일 ~ 1944년 7월 31일)는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성주였으므로 성 (城)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연극 대본 등을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아서 1917년에 보쉬에 고등학교와 생루이 고등학교에서 해군 사관학교에 지원하였으나 1차 필기에 불합격했다. 그 후 파리에 있는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 (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 건축학과에 비학위과정 청강생으로 입학했으나 학업보다는 대학가 카페와 세느 강변의 한 호텔방을 오가며 생활을 즐겼다.
1921년 4월 프랑스 육군 이등병으로 징집되어 프랑스 육군 제2항공연대 항공정비병으로 근무했다.
1921년 6월에 남불 이스트르에서 자비로 민간항공기 조종훈련을 1시간 20분 동안 받고 민간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922년 1월 육군 상등병으로 진급과 동시에 군용기 조종 면허장을 취득했다.
1922년 4월 파리에 있는 육군 사관후보생 EOS 과정에 입교, 예비군 소위로 임관했다.
1922년 8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있는 육군 제37항공연대 배치되었으나, 프랑스 본토 근무를 희망하여
1922년 10월 프랑스 파리 르 부르제에 있는 육군 제34항공연대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1923년 후일 유명 소설가, 시인, 언론인이 된 루이스 드 빌모린과 약혼했다. 이후 항공기 추락사고로 두개골이 골절되어 소위로 의병 전역했다.

프랑스 육군 항공의 선구자인 에두아르 바레스 장군의 권유에 따라 재입대를 할 계획이었지만 약혼녀와 가족들의 반대로 포기하고, 보알롱 타일제조회사의 제품 검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23년 9월 약혼녀와 파혼했다.
1924년 Allier and Creuse 트럭회사의 Saurer 자동차판매 대리점 영업사원으로 이직했으나 1년 6개월간 단지 1대의 트럭을 판매하고 일이 힘들어서 사직했다. 이후 몇몇 산문과 시를 집필하기 시작, 1926년 첫 저서인 ‘비행사’ (L’aviateur)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취업하여,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지배 하에 있었던 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와 현 세네갈의 다카르간의 정기 항공우편 조종사로 근무했다.
이듬해인 1927년에는 야간 항공우편 비행을 시작했으며, 불시착 항공기 수리 업무와 조난 비행사 구조 업무도 함께 병행했다. 같은 해 ‘남방 우편기’ (Courrier Sud)를 집필하여 작가로 데뷔하였고, 3년 뒤인 1930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이를 출간했다.
그해 6월에는 ‘야간 비행’ (Vol de Nuit)를 집필하였다.
이듬해인 1931년 1월에 고메즈 까리요라는 신문 기자의 미망인 콘수엘로 슁생과 결혼하였고, 12월에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 문학상을 받았다.
1935년 생텍쥐페리는 비행기 엔지니어와 함께 코드롱사 (Société des avions Caudron)에 의뢰해서 개인 전용기 ‘Caudron C.630 Simoun’를 주문하게 된다.
당해 11월 파리 – 사이공 구간의 비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장거리 비행시합 도중 기체결함으로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여 5일 만에 구조되는 사고가 있었다. 물론 애써 주문한 전용기도 부서졌다.
1938년 과테말라 상공에서 항공기 엔진 폭발로 불시착하여 두개골과 좌측 쇄골이 파열되는 사고가 있었다. 참고로 친한 친구이던 앙리 기요메 (Henri Guillaumet)도 남미 횡단 비행기를 조종하다가 비행기가 추락했으나 놀랍게도 안데스 산맥 척박 산지에서 엿새 밤낮을 걸어와서 구조되었다. 당시 생택쥐페리와 다른 친구들이 손수 비행기를 몰며 닷새동안 안데스 곳곳을 수색해 찾지 못했는데 결국 포기했더니 다음 날, 당당하게 스스로 걸어서 돌아온 기요메를 보고 다들 기겁했다고 한다. 이 일은 생택쥐페리가 쓴 책 ‘인간의 대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 일을 다룬 책도 나왔으며 1995년에는 아이맥스 영화 사랑의 날개 (Wings of Courage)로도 만들어졌으나 흥행하지는 못했다. 이 영화에서도 생택쥐페리가 나오는데 바로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연기한 톰 헐스가 맡았다. 여담으로 연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으로 알려진 장 자크 아노가 감독했으며 발 킬머도 나왔었다. 앙리 기요메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공군 조종사로 참전, 1940년 이탈리아군에게 격추당해 38세로 전사했다. 기요메의 죽음에 생택쥐페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939년 2월에 ‘인간의 대지’를 출판하여 그 해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둔 1939년 9월 3일 예비군 동원령으로 민항기 조종 경력을 인정받아 공군 대위 계급을 부여 받고, 프랑스 공군 제33정찰비행대대 2비행대 (Groupe de reconnaissance II/33e escadre de reconnaissance)에 동원 지정되어 공군 정찰기 조종사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5월 23일 블로흐 174 정찰기로 정찰비행 중 독일 전차부대를 발견한 직후 대공화기에 피격되었으나 무사히 귀환하여 정찰비행 사진을 제공했다. 1940년 6월 2일 이 일로 훈장을 받았다.
1년 뒤인 1940년 ‘성채’ (Citadelle)의 집필을 시작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함락되어 다 완성하지 못하고 12월에 미국 망명을 위해 뉴욕으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1개월 뒤인 1941년 1월 뉴욕에 도착하여 ‘전시 조종사’ (Pilote de Guerre)를 집필하였으며, 2년 뒤인 1943년 4월에 그 유명한 어린 왕자를 출간하였다. 비시 프랑스 정부가 생텍쥐페리를 일방적으로 정부 요직에 임명하고, 자유 프랑스 정부의 샤를 드골 장군은 생택쥐페리를 친독일 인사라고 공개적으로 암시하는 등 정치적인 색깔논쟁에 휘말린 생택쥐페리는 자유 프랑스군에 재입대 하기 위해 5월 4일 프랑스령 알제리에 도착했다. 당시 프랑스 공군은 최신형 미제 항공기 조종사 연령을 만 35세 이하로 제한했는데, 당시 43세였던 그는 연령제한을 8년 초과한 데다, 잦은 추락사고로 인한 부상 후유증으로 비행복을 스스로 입을 수도 없었고, 왼쪽으로는 고개를 돌릴 수도 없어서 후방의 적항공기를 확인할 수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조종사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이미 유명인사로 자유 프랑스군 사령부 고위 장교들과 친분이 있었던 그는 예비군 공군 소령 계급을 달고, 조종사로 복무하게 되었다. 다만, 매우 정교한 미제 최첨단 고성능 장거리 정찰기인 F-5B-1-LO 라이트닝 정찰기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7주간의 기종전환 훈련을 받아야 했다.
1943년 7월 21일 튀니지 부근의 라 마르사 기지에 위치한 미 제7군 소속 자유 프랑스 공군 제33정찰비행대대 2비행대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2번째 출격 후 착륙하는 과정에서 조종 미숙으로 항공기를 고장내는 바람에 비행대장은 그를 비행 부적합자로 분류하여, 지상근무를 명령하였다. 이후 8개월에 걸친 지루한 지상근무를 견디다 못한 그는 개인적으로 지중해 지역 연합공군사령관 Ira C. Eaker 미 육군 중장을 만나 비행을 할 수 있도록 청탁을 넣어, 1944년 5월 16일, 사르데뉴 섬의 알게로 기지에서 비행대로 복귀하였다.
비행대로 복귀한 후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평소 취미였던 조종 중 독서와 조종 중 글쓰기를 재개했다. 전쟁 중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은 완전히 그를 사로잡고 있어서 전시에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건 문학이었고, 군 복무는 둘째였다. 그는 비행에 필수적인 절차인 비행 전 점검이나 엔진 예열 등의 필수 점검을 하지 않고 그 시간에 혼자 독서를 했다. 한 번은 정찰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데, 비행 중 읽던 소설책을 다 읽지 못해 지상 병력이 그의 착륙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기지 상공을 1시간 동안 빙빙 선회하며 소설책을 다 읽은 다음에 착륙을 하기도 했다.
그는 친독일이냐 반독일이냐 하는 정치적 색깔 논쟁에 휘말려 우울증이 왔고, 이 때문에 전쟁 중 술을 마시기 시작해 폭음을 하곤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 상태를 악화일로에 있었다.
1944년 6월 29일에는 출격 순서가 아님에도 자신이 잘 아는 사부아 지역에 대한 정찰이라는 이유를 들어 비행을 지원했고, 안시 상공에서 엔진 고장이 일어나 실수로 방향을 잘못잡아 적 점령지인 이탈리아 제노아 상공에 진입하여 격추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1944년 7월 17일 그의 비행대는 코르시카 바스티아 인근 Borgo로 기지를 이동하여, 8월 15일로 예정된 남프랑스 상륙작전 (용기병 작전)을 위한 상륙지역 지도제작용 항공사진 촬영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7월 31일 오전 8시 25분 그는 일상적인 정찰비행을 위해 비무장으로 6시간 분의 연료를 탑재한 정찰기를 몰고 이륙했으나 6시간이 지나도록 기지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륙 8시간 30분 뒤 실종 보고가 들어왔다.
그를 존경하는 부대원들은 그가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진 것에 놀랐다. 그의 실종 소식은 국제뉴스에 헤드라인으로 올라갔다.
정찰기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인근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전시 상황이라 추락지역에 대한 조사나 사고원인은 조사되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실종처리가 되었으나 사망으로 추정되어 1948년 전쟁 중 사망으로 인정되었다.
– 죽음에 대한 논란
항상 자유롭게 하늘이 날고 싶다던 생텍쥐페리는 결국 1944년 7월 31일, 지중해 상공에서 F-5B-1-LO 라이트닝 정찰기로 정찰비행하다가 실종되었다. 그리고 53년이 지난 1998년 4월 마르세이유 남동쪽 해저에서 어부 장 클로드 비앙코가 우연히 그물로 그의 이름이 적혀진 팔찌를 건져올림으로서 그의 행방이 드디어 밝혀졌다. 수중탐사장비로 바다 깊숙히 가라앉은 라이트닝 정찰기를 발견함으로서 그의 최후도 밝혀진 셈이다.
하지만 이해가 안되는 점은, 그 동안에 제기되어 온 독일군에게서 격추당했으리라는 짐작과 달리 비행기 겉에는 총탄 자국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비불량이나 아니면 일부러 마지막 비행에서 스스로 추락한 건가 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2008년 3월의 헤르만 괴링 공군 원수에게서 훈장도 받은 공군 에이스 조종사인 호르스트 리페르트(Horst Rippert. 1922 – 2013)가 생텍쥐페리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서 독일 전투기에 격추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해졌다. 왜냐하면 P-38의 우측엔진에 피탄으로 인한 윤활유 누유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기습공격을 받아 엔진 하나가 망가진 상태로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는 게 유력하다.

더불어 프랑스에서 건져올렸다는 팔찌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시각이 많다. 유족들이 팔찌가 생텍쥐페리의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팔찌를 발견한 어부가 은팔찌가 진짜 생텍쥐페리의 것이라며 유족들을 고소하기도 했으나 생텍쥐페리의 아내인 콘수엘로 (1903 ~ 1979)와 집안 사람들은 비웃었다.
마지막 비행 지점으로부터 200km 이상 떨어진 곳이었기에 결국 자살한 거 아니냐는 주장으로 조작했다며 일절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해저 탐사로 잔해를 발견했다는 잠수부 뤽 반렐은 자살설을 믿었으며 생텍쥐페리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주장을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텍쥐페리의 친한 친구들도 그가 마지막 얼마 전까지 굉장히 말이 없었고 우울했었다는 증언을 했으며 죽기 하루 전인 7월 30일 비행전에 친구들과 같이 바닷가를 거닐다가 어느 여인 (전혀 모르는 여인이었다고)에게 “나와 함께 수영하지 않을래요? 내일이 되면 난 여기에 없을지도 몰라요.”라며 쓴웃음짓는 바람에 친구들이 불길한 농담 말라고 한 일화까지 있다.
위에 나온 것처럼 매우 친했던 친구인 기요메가 격추당해 죽은 것도 생택쥐페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기요메의 죽음을 이야기한 편지에서도 ‘죽음 속에서, 안데스 산맥을 걸어서 빠져나온 그 친구도 결국 격추당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네….나도 그럴까?’ 라는 글귀가 남아있던 걸 보면 충격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가정적으로도 그는 매우 고민했다. 아내인 콘수엘로는 엘살바도르 출신 여성으로 이미 나이 27살에 전 남편들과 2번이나 사별한 과부였다. 지방귀족 출신으로 좀 보수적인 생텍쥐페리 집안은 그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아서 1931년 결혼하고 13년동안 그녀를 무시해왔기에 그의 고민은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 왕자 때문에 순수하다고 사람들이 오해한다는 편견이나 인식과 달리 그는 매우 정열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 작품 저서 목록
체험을 토대로 한 소설로 명성을 얻는다. 행동주의 문학으로서 위험 상황 속에서 높은 인간성과 연대 책임 등을 실천적 관계에서 택하여 신선한 세계를 창조하였다고 평가된다.
주요 저서들로 ‘어린 왕자’,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 ‘성채’, ‘환상’, ‘비행사’, ‘삶의 감각’, ‘아라스로의 비행’ 등이 있다.
– Literary works
* Saint-Exupéry’s notable literary works (published English translations in parentheses)
L’Aviateur (1926) (The Aviator, in the anthology A Sense of Life)
Courrier sud (1929) (Southern Mail) – made as a movie in French
Vol de nuit (1931) (Night Flight) – winner of the full prix Femina and made twice as a movie and a TV film, both in English
The Wild Garden (1938) – Limited to one thousand copies privately printed for the friends of the author and his publishers as a New Year’s Greeting. The story is taken from the forthcoming book, Wind, Sand and the Stars, to be published in the spring of 1939.
Terre des hommes (1939) – winner of the Grand Prix du roman de l’Académie française
Wind, Sand and Stars (simultaneous distinct English version) – winner of the U.S. National Book Award
Pilote de guerre (1942) (titled in English as: Flight to Arras) – winner of the Grand Prix Littéraire de l’Aéro-Club de France
Le petit prince (1943) (The Little Prince), posthumous in France – translated into more than 250 languages and dialects and among the top four selling books in the world; made as both movies and TV films in a number of languages, and adapted to numerous other media in many languages
Lettre à un otage (1944) (Letter to a Hostage, posthumous in English)

* Published posthumously
Citadelle (1948) (titled in English: as The Wisdom of the Sands) – winner of the Prix des Ambassadeurs
Lettres à une jeune fille (1950)
Lettres de jeunesse, 1923–1931 (1953)
Lettres à l’amie inventée (1953)
Carnets (1953)
Lettres à sa mère (1955)
Un sens à la vie (1956), (A Sense of Life)
Lettres de Saint-Exupéry (1960)
Lettres aux américains (1960)
Écrits de guerre, 1939–1944 (1982) (Wartime Writings, 1939–1944)
Manon, danseuse (2007)
Lettres à l’inconnue (2008)
* Other works
Other shorter pieces include (in French except where translated by others to English):
“Une Lettre de M. de Saint-Exupéry”, Les Annales politiques et littéraires, 15 December 1931; (extracts from a letter written to Benjamin Crémieux).
Preface of Destin de Le Brix by José le Boucher, Nouvelle Librairie Française, 1932.
Preface of Grandeur et servitude de l’aviation by Maurice Bourdet, Paris: Editions Corrêa, 1933.
“Reflections on War”, translated from Paris-Soir and published in Living Age, November 1938, pp. 225–228.
Preface of Vent se lève (French translation of Listen! The Wind) by Anne Morrow Lindbergh, Paris: Editions Corrêa, 1939.
Preface of Pilotes d’essai by Jean-Marie Conty, Paris: Edition Spes, 1939.
“Books I Remember”, Harper’s Bazaar, April 1941.
“Letter to Young Americans”, The American High School Weekly, 25 May 1942, pp. 17–18.
“Voulez-vous, Français, vous reconcilier?”, Le Canada, de Montreal, 30 November 1942.
“L’Homme et les éléments”, Confluences, 1947, Vol. VII, pp. 12–14 (issue dedicated to Saint-Exupéry;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in 1939 as ‘The Elements’ in Wind, Sand and Stars).
“Lettre Inédite au General C”, Le Figaro Littéraire, 10 April 1948 (posthumous).
“Seigneur Berbère”, La Table Ronde, No. 7, July 1948 (posthumous).

– 기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저작물들은 국가를 위해 싸우다 숨진 사람들 (Mort pour la France)의 저작권을 추가로 보호하는 프랑스 저작권법에 의해 저작권을 30년간 추가로 보호받는다. 생택쥐페리의 작품들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2015년부터 퍼블릭 도메인이지만 프랑스에서는 2045년까지 저작권이 소멸하지 않는다.
2578 생텍쥐페리 (Saint-Exupéry)는 소행성대에 위치한 작은 소행성으로, 타마라 미하일로프나 스미르노바가 1975년 11월 2일에 발견했다. 임시번호 1975 VW3였던 것에 프랑스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이름이 붙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에서 살고 있다. 소행성 46610 베시두즈는 프랑스어로 B612를 읽은 것이 바로 그 이름이다.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 (프: Aéroport Lyon Saint-Exupéry)은 프랑스 리옹의 국제공항으로 에어프랑스, 이지젯의 프랑스 제2의 허브공항이며 프랑스 국내선, 유럽, 북아프리카 노선 위주의 항공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리옹 시내에서 공항으로 갈 수 있는 대중교통은 2012년에 리옹 파르디유 역에서 공항으로 이어주는 트램이 유일하고 또 다른 교통수단이었던 셔틀버스 Satobus는 공항-리옹 시내간 운행을 중지하였다.
‘어린왕자’는 약 30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세계 160개국에서 출판되었는데, 단 한 나라에서는 ‘어린 왕자’라고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일본은 ‘별의 왕자님’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하코네에는 어린 왕자 박물관이 있는데, 소행성 B612를 비롯하여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것들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The Little Prince, 프: Le Petit Prince)
“모든 성인은 한 때 어린이었다. 비록 그들 중 몇몇만 그것을 기억할 뿐이지만.” _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서문중에서
– 소설 ‘어린 왕자’ (The Little Prince) 개관
어린 왕자 (The Little Prince, 프: Le Petit Prince)는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1943년 발표한 소설이다.
1943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그 해 비시 프랑스 치하의 프랑스에서 비밀리에 출판되었다. 프랑스가 해방된 이후 1947년 가리마르사 (社)가 작자 자필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삽화를 넣어 프랑스에서 새로 출판하였다.
현재까지 180여 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한국어판 중에는 저자의 삽화가 삽입되어 있는 번역본이 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 어린 왕자 (The Little Prince)
.저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삽화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표지 화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국가: 프랑스
.언어: 프랑스어
.출판사: 갈리마르 (프랑스)
.발행일: 1943년
– 내용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자기의 작은 별에서 여러 별들을 거쳐서 드디어 지상에 내려온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결국 소년이 뱀에게 물려 자신의 별로 돌아갈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 동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띄면서도 풍자적인 내용이 섞여 있는데 (혼자있는 별에서 왕을 칭하는 사람이라든지, 흑백 논리 신봉자라든지), 이 때문에 어린 시절의 느낌과 어른이 되어 읽는 느낌이 사뭇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많은 매체에서 동심의 상징으로 다루고 있다. 작중 동심에 관련된 이야기로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이 유명하다. 이후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 이야기가 널리 퍼져 아이든 어른이든 그 유명한 그림을 보여줬을 때 모두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이라고 답하게 되자, 작가인 생텍쥐페리는 이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생텍쥐베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의 동심에서 비롯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을 말하고자 한 것인데, 정작 이 우화를 통해 ‘또 하나의 틀’이 생겨나버리게 된 셈이니 말이다.
작중 삽화가 대부분의 판본에서 동일한 이유는 이것 역시 작가가 직접 그린 오리지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잘 그렸다고는 말하기 힘들고, 작중 화자 스스로가 자신은 보아뱀그림 이후에 그림 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어린왕자가 화자가 그린 그림을 보고 이상하게 그렸다고 지적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묘한 매력이 있으며, 우화 스러우면서도 풍자적인 면모가 잘 살아나는 글의 분위기와도 당연히 가장 잘 어울린다. 근래에 화려한 일러스트로 수정되어 새로 출판되는 경우도 많지만 원작의 그림을 선호하는 경우가 꽤 많다.

– 명대사
작품 안에 명대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여기에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어떤 별에 사는 꽃을 좋아한다면 밤에 하늘을 쳐다보는 게 즐거울 거야. 어느 별이나 다 꽃이 필테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야.
.누가 수천,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떤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밤하늘의 별이 된 어린왕자
이제 가 봐, 내려가고 싶어
나무가 쓰러지듯 그냥 천천히 쓰러졌다.
모래 때문에 쓰러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등장인물
.나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
.어린 왕자 – 화산 셋과 장미가 있는 소행성 (B612)에서 살고 있었고, 바오밥나무가 자라려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붉은 장미 – 자존심이 강하고 까다로운 성격이지만, 어린왕자를 사랑하고 있음

* 지구에 오기전 여행한 곳에서 만남
.왕
.허영심에 찬 남자
.사업가
.점등인
.지리학자
* 지구에 온 뒤 만남
.뱀
.꽃잎이 세장인 꽃
.여우
.철도원
.장사꾼
– 소재
‘어린 왕자’는 ‘인간의 대지’ 처럼 생텍쥐페리 자신이 사하라 사막에서 겪은 경험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우는 그가 사막에서 본 페넥여우이다.
– 감상 및 평가
순결한 소년과 장미 (여성)의 사랑 이야기나 갖가지 지상의 성인을 반영하는 다른 별에서 겪은 체험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일종의 초월적 비판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비판을 담은 시 (童心)는 그것이 비판과 분리되지 않고 일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작자의 심정과 윤리가 혼연히 융합되고 표백 (表白)되어 있어, 프랑스는 물론 미국·독일 등 각국에서도 비상한 호평으로 환영하였다.
– 출판 과정
미국에서 처음 발간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유래가 참 재밌는데, 생텍쥐페리가 뉴욕에 체류 중이었을 당시, 미국의 담당 출판업자인 유진 레이날 (Eugene Reynal)과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에 냅킨에 낙서로 아이 한 명을 그렸다. 유진이 그 그림을 보고 생택쥐페리에게 “크리스마스 전까지 그 아이를 소재로 동화를 쓰면 참 좋을 텐데요.”라고 제안한 것이 이 소설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그림이나, 동화 창작에 관심이 많았다. 1940년 당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도중에, 어느 여배우가 그에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읽게 했고, 또 다른 친구가 그에게 수채화 물감을 선물해주었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 기분전환으로 긁적인 아이디어가 실제 작품이 된 케이스라고 하겠다. 일러스트를 다른 삽화가들에게 부탁했으나, 느낌이 오지 않았는지 결국 자신이 직접 그리게 된다.
뉴욕의 펜트하우스에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지만, 뉴욕의 여름 날씨와 시끄러운 소음에 괴로워 하던 차에,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뉴욕에서 기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롱아일랜드 노스포트 근처 이튼 네크의 Asharoken이란 마을에서 식민지풍의 하얀 삼층집을 세내어 살게 된다. 그는 여기에서 주로 밤에 커피와 담배의 도움을 받으며 창작했는데, 한밤중에 친구들을 깨워서 작품에 대한 조언이나, 드로잉의 자세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한다. 친구 중 한 명이 어린왕자나 여타 다른 사람들의 포즈를 담당하는 식으로 도와주기도 하였다. 참고로, 양에 대한 영감은 그 집에서 기르던 푸들을 보고 떠올렸고, 호랑이는 역시 같은 집에서 기르던 복서에게서 영향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작업하다가 책상에서 자던 일도 흔했다고 한다.
그렇게 1942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작업한 원고를 같은 해 10월에 끝마쳤다. 그렇게 1943년 4월 6일, 뉴욕에서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을 동시 출간하게 된다. 이 때 유진의 회사가 프랑스의 갈리마르 사 (社)와 분쟁을 겪기도 했는데, 생텍쥐페리의 모든 원고의 저작권은 갈리마르 사 (社)가 가지고 있다는 계약 때문이었다. 비시 프랑스에서 몰래 출판되다가, 갈리마르 사는 출판된 원고의 타자기 본을 바탕으로 1945년 11월에 프랑스어 판을 정식으로 출간한다 (그러나 전후 종이 사정으로 인해 1946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서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왕자의 번역이 역자마다 미묘하게 다른 이유는 이러한 판본의 차이 때문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