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영 목사의 그리스 & 터키 학술탐사 ①
출발하며
길리기아(Cilicia) 다소(Tarsus) 출신으로 가말리엘(Gamaliel) 문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고 열심있는 자이며(행 22:3), 청결한 양심으로 선조때부터 섬기던 하나님을 섬기고(딤후 1:3), 할례를 받았고 자랑할 만한 베냐민 지파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의 선두에서 핍박하던 사람이니 바리새인 입장에서 볼 때에는 도무지 결점이 없는 사람(빌 3:5-6).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었으며(갈 1:14),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행 22:26-28) 사람. 그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그 바울의 선교여행지를 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셨던 현장을 부족하지만 지면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울에 대한 지식을 좀 더 나누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바울은 논리의 힘과 능력의 결합 즉 이성과 영력이 일치된 것이 특색이다. 결점이 있다면 너무 성급하여 후회하는 일이 있었던 점(행 15:39, 23:4-5)이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이 율법을 경히 여기고 성전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었다(행 6:31).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에 가담한 것은 의분심에서였다(행 7:54-8:3). 그 후 기독교인을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Damascus)으로 향하였다(행 9:1-2). 다메섹(Damascus)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크리스챤이 되었다(행 9:1, 22:4, 26:9).
특히 바울은 공중 앞에서 회개한 사실을 간증하고 전환된 음을 수습하고 앞날을 위한 준비로 아라비아(Arabia)에 은퇴하여 더욱 힘을 얻고 돌아와 유대인에게 예수가 기다리던 그리스도임을 전파하였다(갈 1:16-18, 행 9:22).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은 바나바(Barnabas)와 같이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Antioch)에서 출발하여 구브로섬(현재명: Zypern, Syprus)을 경유 소아시아 중남부 지방의 유대인 회당을 순회하면서 그곳을 발판으로 선교하였다. 이 선교활동 중 이방인 회심자와 유대인의 율법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가 야기되어 유대교의 전통을 고집하는 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회의 때 이방인 선교에 관한 문제협정을 지었다(행 13:4-14:28).
2차 선교여행은 실라를 데리고 안디옥을 출발하여 드로아(무시아[Mysia] 해안가, 소아시아 북서쪽에 위치한 고대 트로이[Troy]) 바다를 건너 유럽 땅에 들어가 마게도냐(Macedonia) 지방의 빌립보(Philppi in Macedonia), 데살로니가(Thessalonica, Thessaloniki), 아덴(Athens), 고린도(Corinth)에 이르러 1년 반 동안 머물렀다가 그 후에 에베소(Ephesus, Epenetus)를 지나 예루살렘(Jerusalem)을 방문하고 안디옥(Antioch)으로 돌아왔다(행 15:40-18:22).
3차 선교여행은 소아시아의 내륙지방 갈라디아(Galatia), 부르기아(프리지아, Phryghia) 지방을 지나 에베소(Ephesus, Epenetus)에 도착하여 거기서 3년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스 부근에서 선교하였다. 그 후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마게도냐(Macedonia)에서 고린도(Corinth)로 가서 다시 예루살렘(Jerusalem)으로 갔다. 이 선교여행에서 지중해 연안에 몇 개의 교회가 설립되었고 신약성서에 편집된 성서편지(바울서신)도 많이 썼다(행 18:23-21:14).
3차 선교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Jerusalem)에 도착한 바울은 반대파인 율법주의자들의 선동과 모략으로 입건되어 가이사랴(Caesarea)에 2년간 감금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인연이 되어 바울은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Felix and Festus) 그리고 아그립바(Agrippa)왕 앞에서 자신을 변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후 로마 황제 가이사(CAESAR)에게 상소하여 지중해를 건너 로마(Roma)로 갔다(행 21:17-24:27).
바울은 헬라문화의 교육을 받았으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지중해 연언에서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전도하였다(고후 11:23-28).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30년간 선교사로서 활동을 하였다(고전 9:10)
첫 방문지지인 터키(Turkey) 이스탄불(Istanbul)의 성경적 개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터키(Turkey) 지역은 구약시대에는 헷 왕국(sons of Heth, 히타이트[기원전 18세기경 ~ 기원전 1180년 또는 기원전 8세기] 또는 히타이트 제국은 고대 근동의 청동기 시대[3300~1200 BC] 중 기원전 18세기경에 아나톨리아 북중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형성된 왕국으로, 히타이트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히타이트”라는 낱말은 구약성경의 ‘헷 사람들'[sons of Heth, 헷 족속]에서 유래)과 메대(Mede)왕국이 주로 차지했던 땅이고 앗수르(Asshur), 바벨론(Babylonia) 등 모두가 탐내었던 지역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 지역에 상당한 시간 거주하였고 그의 본토, 고향으로 불리던 지역이다(지금의 하란지역/하란은 터키의 샨리우르파 주의 카르하에로 알려져 있다). 히브리인의 출발점이라 보아도 될 만한 중요한 장소이다. 그 후 신약시대에는 교회의 두 번째 중심지인 안디옥(Antioch)이 이곳에 위치하며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다소(Tarsus) 출신으로 자신의 고향을 중심으로 이방인을 향한 첫 선교활동을 시작한 곳이다. 이방인을 향한, 세계를 향한 복음의 출발점이다. 신약전서의 서신서들이 이 지역을 향하여 쓰였거나 이 지역에서 기록되었다(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베드로전후서, 요한계시록, 요한복음, 요한일이삼서, 사도행전, 디모데전후서, 고린도전서 등). 사도들의 시대가 지난 뒤 수많은 교부와 신앙의 전통을 수호한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나오거나 활동하였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Saint Ignatius of Antioch), 서머나의 순교자 폴리캅(Polycarp: 69-155년), 위대한 갑바도기아(Cappadocia)인들 마크리나(Macrina), 대 바실(330~379년),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황금의 입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등이 이 지역에서 배출되었고 심지오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라는 산타클로스(Santa Claus)까지 이곳에서 일하였다.
이스탄불(Istanbul)은 로마시대에 비잔티움(Byzantine Empire)이라 불렸다. 콘스탄틴(Constantinus, 272-337년) 황제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비잔틴(Byzantine)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비잔틴(Byzantine) 시대는 기독교를 공인한 시대라고 알려진다. 콘스탄틴(Constantinus)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정하고 오스만 터키에 정복될 때까지 로마의 동로마제국의 수도역할을 하였다. 터키가 정복한 뒤에는 이름을 이스탄불(Istanbul)로 불렀다. 이 장소는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중 하나이다. 신화에 관계된 장소로부터 성 소피아 성당(하기아 소피아, Hagia Sophia)과 슐레이만 대제(Süleyman the Magnificent)의 사원(모슐레이만 모스크) 등, 유대인과 기독교인, 회교도 사회가 공존하는 사회이다. _ 학술탐사 자료 참조

윤석영 목사(히스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