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택 목사 칼럼

아르테미스 2호와 인간 관계망의 확장 : 우주적 풍경의 형성
4명의 우주 탐사 승무원을 태우고 달 뒷면 탐사를 떠난 아르테미스 2호 (Artemis II ) 우주선은, 그 이름을 달의 여신이자 아폴로의 자매인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에서 유래하였다.
달의 뒷면 (the far side of the moon)은 오랫동안 어둠과 심연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헐리우드 영화가 형성해 온 외계 생명체의 세계와 같은 다양한 상상적 서사를 담아온 상징적 세계었다.
몇 차례 우주 탐사를 통해 달의 뒷면은 사진으로 기록되어 지구로 전송된 바 있다.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던 달의 뒷면은 여전히 경험 밖에 존재하는 영역이었다.
이제 그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 속에 살아 있는 장이 되었으며, 우리는 이와 같은 변화를 우주가 인간의 의미 속으로 들어온 ‘풍경 (Landscape)’이라 부른다.

풍경이 뜻하는의미는 무엇인가
영국의 역사학자 존 가디스 (John Gaddis)는 그의 저서 『역사의 풍경 (The Landscape of History)』에서 “역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것은 화가가 화폭에 그려내는 풍경화와 같다고 설명한다 (Gaddis 2002).
화가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의 각도와 범위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해석하여 화폭에 담는다.
그 결과로 자연은 화가의 관계망 때문에 ‘풍경’이 된다. 역사도 인간의 무수한 관계망이 만들어낸 한폭의 풍경과 같다.
역사풍경은 역사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 속에 관계된 인간의 관계망을 해석하는 작업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 말이 있다. 옛날 5일장에 다녀온 사람에게 마을 사람들이 질문한다. 오늘 시장풍경이 어떠했소?
이렇게 묻는 말의 내용은 그날의 경제시세는 어떠했는지, 사람 사는 모습이 어떠했는 지를 묻는 즉 시장에서 보여준 인간 관계망를 묻는 질문이다. 시장이라는 이미지에 인간의 관계망이 얼켜진 상황을 시장 풍경이라고 부른다.

10일 간의 우주선 승무원들이 우주풍경 안에 담겨 놓은 인간 관계망이 무엇인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10일 간의 우주선 승무원들이 우주풍경 안에 담겨 놓은 인간 관계망이 무엇인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다녀온 시간은 과거에는 우주의 공간이였지만 이제는 인간이 경험하고 느끼고 측정 가능한 존재론적 시간이 되었다. 존재론적 시간이란 위기와 대처, 서로간의 협동과 우정,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경험이 담긴 시간이다. 달의 공간에 남겨진 한 이름 – 선장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를 기억하며 남긴 ‘캘롤 (Carol)’ – 은 우주를 단순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기억이 각인된 관계적 장소로 전환시킨다. 나아가 또 하나의 운석 충돌 분화구 (impact crater)에 부여된 ‘인테그리티 (Integrity)’ 라는 명명은 인간 존재가 지향하는 본질적 가치, 곧 온전함과 통합성을 향한 열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달뒷면에 만든 인간 관계망의 확장은, 인간 사회 속에서 형성된 지구의 풍경을 우주로까지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이 과정에서 과학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과학은 인간이 주술과 미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며, 자연의 신비를 공포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비인간적 태도를 거부하게 만든다. 동시에 과학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고, 그 이해를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과학은 단순한 기술적 수단을 넘어, 인간의 관계망을 형성하고 확장하는 근본적인 토대로 기능한다.
달의 뒷면은 지구를 향하는 일부 운석 충돌을 흡수하거나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도 확인했다. 달 뒤 표면에 남겨진 수많은 운석 충돌 흔적들은 마치 희생의 흔적처럼 보이며, 생명을 보호해 온 우주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인류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풍경 속에서 서로 연결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선이 달의 뒷면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약 40분간 이루어지는 완전한 통신 단절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깊은 침묵과 고독의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우주 공간 속에서 경험한 고립과 침묵은 영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16세기 스페인의 수도사 십자가의 요한 (John of Cross, 1542–1591)은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더 깊이 경험된다고 하였다. 그는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은 임재의 방식이며 침묵은 하나님의 처음 언어라고 한다. 여승무원은 그 시간을 감사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신학적 통찰에 비추어 볼 때, 우주에서 침묵의 경험은 하나님이 떠나신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욱 깊이 함께하시는 자리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경험은 지구 중심적 하나님 이해를 넘어, 우주의 풍경 속 관계망 안에서 함께하시는 ‘우주적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열어준다.
한편, 승무원들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국경이 없는 하나의 작은 행성으로 드러난다. 작고 연약하지만, 동시에 가장 소중한 우리의 고향이라 했다. 분리가 아니라 연합, 경쟁이 아니라 공존의 삶이라는 윤리적 가치관을 인류에게 상기시킨다. 우주적 풍경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의 관계망은 이제 희망의 풍경, 책임의 풍경, 그리고 공동의 운명을 함께 나누는 윤리적 책임을 우주와 함께 공유해야 한다.
아르테미스 2호는 달 뒷면의 관찰을 한 단계 넘어, 우주를 인간의 시선과 정신적 확장 그리고 실존적 인간 경험 속으로 가져왔다. 우주의 자연 현상 위에 인간의 참여와 경험, 그리고 인간의 관계망 (relational connections)이 결합됨으로써, 지금까지 단순한 자연 공간으로 이해되어 온 우주는 ‘관계적 우주 풍경 (Relational Cosmic Landscape)’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아르테미스 2호는 우주를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 관계와 의미가 형성되는 경험의 장으로 전환시킨 우주적 풍경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류는 우주적 풍경 속에서 형성된 인간 관계망을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 우주는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장이며, 인류는 공동의 운명과 공동선을 향한 새로운 우주적 풍경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야 한다.

이상택 목사
(이이오나콜럼바대학 학장, 신학과 실천신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