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모두가 주인공인 졸업식
선사 그래듀에이션 어워드(Sunsa Graduation Award)를 소개합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총동문회 모임을 갔었습니다. 오랫만에 만나는 동문들을 보며 함께 공부했던 시간들이 떠 올랐습니다. 제가 공부할 당시 학생들의 평균 연령이 ‘불혹’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만큼은 ‘청춘’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입학은 했지만 학업양이 많아서 천신만고 끝에 학교를 졸업하던 날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단상으로 올라가 졸업장을 받고 총장님과 학장님 그리고 교수님들과 차례로 악수를 했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대학을 다녔지만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는 것은 20년 만의 일인 것 같았습니다.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남편을 너그럽게(?) 용서해준 아내와 부족한 사람을 끝까지 이끌어 주신 교수님들 그리고 함께 학업을 하며 힘이 되어준 학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졸업은 참 훌륭한 일입니다. 졸업을 했다는 것은 조금은 미급할 수 있지만 어쨌든 ‘정규과정을 마쳤다’ 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식이 중요하듯 졸업식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과정을 잘 끝냈다는 공식적은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졸업식은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대학 졸업식은 예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졸업식 문화가 달라진 것입니다. 졸업식에 빼놓을 수 없는 ‘짜장면 파티’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이나 편의점의 삼각김밥과 컵라면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하고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던 뻣뻣한 자세의 졸업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없어서 졸업식장을 누벼던 전문 사진사들도 하나 둘씩 떠났다고 합니다. 졸업생들은 단체 사진이나 졸업앨범을 만드는 대신 ‘셀카’를 찍어서 SNS 사진첩에 올리는 것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졸업장 또한 택배로 집에서 받는 일이 다반사라고 하니 더 이상 졸업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졸업’이라는 행사를 새롭게 혁신한 학교가 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난 2011년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선사고입니다. 선사고는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율성을 이끌어내는 교육 실험이 활발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학급 당 학생수를 줄이기 위해 한 반을 둘로 나눠 담임 두 명을 배치하는 ‘작은학급제’를 운영하고, 반별로 직접 기획해 떠나는 테마여행 등 창의적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학생·학부모·교사로 구성된 3주체가 협의해 지켜야할 생활 규칙을 정하는 ‘3주체 공동체 생활협약’이라는 것도 있는 ‘새로운 모델’의 학교입니다.
선사고는 이번 졸업식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동영상으로 올라 온 내용과 신문의 기사들을 종합하여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목은 ‘선사 그래듀에이션 어워드(Sunsa Graduation Award)’ 입니다. 지난 2월 11일 오전 서울 강동구 선사고등학교 3층 대강당에선 불이 꺼진후 핀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1학년과 2학년 학생은 힘찬 목소리로 “선사 그래듀에이션 어워드(Sunsa Graduation Award)를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어 무대 뒤편 스크린에 ‘후보 소개 영상’이 등장합니다. 지난 2012년 봄. 서먹서먹한 첫 단체사진부터 담임선생님과 떠난 테마여행, 가을축제 장기자랑 등 영상에는 졸업생 214명의 얼굴이 모두 등장합니다. 그리고, 수상자는 졸업생 전원이 됩니다.
후보 소개가 끝나자 이번엔 시상을 맡은 김용성 교장선생님이 등장합니다. 실제 연말 시상식처럼 여학생과 팔짱을 낀 채로 강당 한가운데 놓인 레드카펫 위를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걸어서 들어 옵니다. 이어 시상 도우미인 3학년 담임선생님들이 무대로 오르자 졸업생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요즘 선생님 멱살잡는 학생들도 많다는데 이 장면이 참 감동적입니다. 한 남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합니다. 이어서 이날의 가장 중요한 순서가 시작됩니다. 1반부터 8반까지, 모든 졸업생이 졸업장을 받기 위해 레드카펫을 지나 무대 위로 올라가는 시간입니다. 모두가 상을 받는 영광스러운 시간입니다. 음악에 맞춰 강당 입구부터 무대까지 약 10여 미터를 걸어 들어오는 순간, 무대 양쪽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학생의 이름과 어린 시절 사진이 흘러 갑니다. 졸업장을 받은 학생들은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선생님과 일일이 포옹하며 작별인사를 나눈 뒤 자리로 돌아 갑니다. 감사와 칭찬의 포옹입니다.
일반 고등학교와 다른 이번 졸업식은 학생들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졸업식준비위원회’를 꾸린 학생들은 모든 걸 스스로 기획했답니다. 이들의 목표는 ‘모두가 주인공인 졸업식’이었습니다. 소위 ‘모범생’만 무대 위로 호명하는 것은 ‘선사고’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린 학생들의 생각이 아주 기뜩합니다. 당연히 ‘올해는 서울대를 OO명 보냈다’는 식의 훈화말씀도 찾아볼 수 없었고 졸업장 외에 ‘서울시교육감상’, ‘강동송파교육장상’ 등 소수만 받는 특별상은 해당 학생들만 따로 불러 수여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주인공인 졸업식’의 졸업생들이 레드카펫을 걸을 때 강당 안의 모든 시선이 그 쪽을 향했고 그 위를 평범하게 걸어가는 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복과 비녀로 가수 이정현의 ‘와’ 무대를 그대로 본 딴 여학생은 두 달 전부터 이날만을 기다렸고 음악과 함께 열정적인 춤을 선보였습니다. 한 남학생은 엄마의 크림색 블라우스와 사촌누나에게 빌린 한복 속치마를 입고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 흉내를 내며, 주제곡 ‘렛잇고’가 맞춰 눈 스프레이를 뿌리며 걸어가는 페러디를 보였습니다. 친구 사촌오빠의 군복을 빌려 입고 온 한 여학생이 레드카펫 위에서 군가 ‘멋진 사나이’에 맞춰 팔을 흔들며 등장을 하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학생이 교장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릴 땐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시상식 중간, 잠시 쉬어가는 순서엔 3학년 담임선생님들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무대에서 MBC <무한도전> 멤버들이 부른 ‘그래, 우리 함께’를 합창했고 노래 중간 “혼자 걷는 이 길이 막막하겠지만 느리게 걷는 거야, 천천히 도착해도 돼”라는 가사가 울릴 때쯤 함성을 지르던 학생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어습니다. 나머지 시간도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축하공연으로 채운, 온전히 학생들을 위한 졸업식이었습니다. 학부모들도 이날 졸업식을 지켜보며 흡족했습니다. ‘엘사 엄마’ 최연숙(48·여)씨는 “학생들이 이날을 위해 오후 9~10시까지 기획회의를 하는 등 고생하는 걸 지켜봤다”면서 “일반 졸업식과 달리 학생이 주체가 되는 모습에 같이 온 친척들도 감동했다”고 전했으며 홍혜경(48·여)씨는 “졸업장 수여식이 끝나고 특별상을 따로 발표할 줄 알았는데 안 했다”라며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고 똑같이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경미(50·여)씨 또한 “한두 명만 단상에 올라가는 게 아니라 모두가 공평하게 졸업장을 받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다”고 전했습니다. 졸업식을 총괄한 권재호(56) 선생님은 “선생이 거의 개입하지 않고 학생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교육 덕분에 어느 대학에 합격했는지 등을 가리지 않고 졸업생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이전에 근무했던 일반 학교에서는 이런 졸업식을 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졸업식을 축제로 만들어 주고 학교를 졸업하고 치열한 경쟁사회로 나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선사 그래듀에이션 어워드(Sunsa Graduation Award)’ 라는 마지막 선물을 안겨준 학교와 선생님들께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 납니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준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실천한다면 그 감동을 받은 아이들 또한 어떻게 하면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모두가 단상에 오르고 정성을 다하여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리는 졸업식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새출발을 하는 모든 졸업생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라며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 22)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와 문화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크리스챤 커뮤니티’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messageschool.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