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아름다운 패자에게도 박수를
류중일 감독의 배려를 바라보며…
스포츠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관람을 하는 편임니다. 호주에 살면서 럭비나 크리켓과 같은 영국식 스포츠를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야구를 볼 수 없다는 것이 크게 아쉽기도 합니다.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먼저 ‘프로’라는 명칭을 달았던 야구는 어린 시절 우리들의 로망이었습니다. 어른들로부터 간혹 ‘너 커서 뭐가 될래?’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일순위로 나오는 대답은 ‘야구선수요’ 였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 과 같은 만화책은 수도없이 보았고 만화를 보고 나면 어김없이 동네 공터로 달려가 서로 까치를 하려고 하지 아무도 마동탁을 하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전 201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컵은 ‘사자’가 아닌 ‘곰’이 차지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린시절 곰팀의 야구점퍼를 입고 다니며 응원하던 저는 10여년 만에 우승을 차지만 곰팀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4년 연속이나 우승을 차지했던 사자팀이 이번에는 우승을 놓쳤던 것입니다.
지난 10월 3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에서 두산 베어스가 삼성라이온스를 13대2로 꺾고, 전적 4승 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난 2001년 삼성을 이기고 프로야구 정상을 차지한 이후 14년에 우승의 감격을 얻은 것입니다. 이날 두산의 우승으로, 올해 ‘5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기록 수립을 노린 삼성은 신기록 수립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은 초반부터 삼성과의 점수차를 벌렸습니다. 1회말 2사 후 주자 2명이 출루한 뒤, 곧바로 양의지의 좌전 적시 2루타가 터지면서 주자가 모두 들어와 2대0 리드를 잡았습니다. 삼성의 자랑인 선발 장원삼은 실점 후 3회에 마운드를 내려오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때부터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두산은 4회말 이미 7대1로 앞섰고, 7회 터진 정수빈의 쓰리런 홈런으로 삼성과의 점수차는 12대2까지 벌어졌습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이라는 말이 있지만 벌써 분위기는 두산으로 넘어간 것 같았습니다. 정수빈은 팀이 9대2로 앞선 7회 2사 1, 3루 상황에서 우익수 키를 넘는 쓰리런 홈런을 쳤고 승리의 여신의 두산을 항해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두산은 7회 선발 유희관에 이어 지난 경기 동안 삼성 타선을 묶어놨던 ‘니퍼트’가 등장시켰습니다. 유희관은 6이닝 동안 1탈살짐 2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틀어막고 승리 분위기를 만든 뒤 마운드를 내려왔고 뒤이어 등장한 니퍼트는 만루 위기에서 나바로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역쉬 니퍼트’ 라는 친창을 받으며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두산은 8회말 무사 만루에서 오재원의 희생플라이로 한 점을 추가했고 이어 삼성이 9회초 무득점으로 물러나면서 2015년 한국시리즈의 주인공은 두산으로 확정지었습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아쉬운 일이지만 삼성은 간판 선수들의 ‘도박 파문’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한국시리즈를 시작했었습니다. 팀의 주축이던 윤성환과 안지만 그리고 임창용까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이가 없으면 잇몸 야구’라는 구호 아래 경기에 임했지만 잇몸으로만 두산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은 지난해 ‘통합 4연패’를 달성한 삼성 류중일 감독에게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류감독은 인터뷰에서 “덕장(德將), 복장(福將)보다 지장(智將)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올 시즌 류 감독은 패장(敗將)으로 한국시리즈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류 감독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통합 5연패에 실패해 죄송스럽다. 두산의 우승을 축하한다. 우리의 완패였다”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하여 전력에 차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핑계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돗보였습니다.
기자회견장 밖에서는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류감독의 마음이 편하지 못했을 겁니다. 2011년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놓친 한국시리즈 우승이었기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치며 ‘통합 5연패’에 거의 다가갔기에 아쉬움은 더 컸을 겁니다. 한국시리즈 직전 도박 파문으로 이탈한 선발-셋업맨-마무리 투수 ‘빅3’의 부재가 치명적이었습니다. 류감독은 “결과로 말해야 하는 프로에서 2등은 비참하다”며 쓰라린 마음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류 감독은 “두산 축하하러 가야 한다”며 다시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간 류 감독은 기뻐하는 두산 선수들을 지켜보다 공식 시상식이 열리자 코칭스태프, 선수들을 불러 3루 쪽에 일렬로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두산 김태형 감독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삼성 선수단은 20분 넘게 진행된 공식 시상식 내내 자리를 지켰습니다. 덕분에 우승 구단 선수단만 남아 우승의 기쁨을 나누던 시상식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국내 프로야구에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낮선 이번 이벤트는 류 감독이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류 감독은 이날 선수들에게 “(두산의 우승을)축하해주고 가자”며 앞장섰습니다. 최근 4년 동안 야구의 마지막을 정상에서 보냈던 삼성 선수들은 패배의 아픔에도 기꺼이 수장의 뜻에 따랐고, 류 감독은 적장 김태형 두산 감독에게 축하 악수를 청한 뒤에야 잠실야구장을 떠났습니다. 두산 관계자는 “나는 10월 31일에 두 번 눈물을 흘렸다. 우승을 확정한 순간과 시상식에 삼성 선수들이 도열한 모습을 보고…” 라며 삼성 선수단에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프로야구는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시리즈 종료 후 2위 팀도 시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상식을 위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세리머니를 지켜봐야 하는 준우승 팀의 심정을 고려해 1위 팀만 시상식에 참석하기로 규정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류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나는 우리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패하면 공식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상대팀을 축하할 생각이다. 얼마나 멋지겠나”라고 말해 왔다고 합니다. 2011년 삼성은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 소프트뱅크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었습니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더그아웃 앞에 도열해 삼성의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축하했고 류 감독은 “정말 멋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고 말했었습니다.
2011년부터 지휘봉을 잡자마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를 차지하고 올 정규시즌에서도 우승을 놓치며 통합 5연패는 실패했지만 이날 류 감독이 보인 행동은 그를 한국 야구역사에 남을 명장(名將)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경기에서 진 감독이 이런 행보를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여기에 따라주는 선수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에서 지금 나의 모습을 다시 바라봅니다. 정정당당히 싸우고 승자에게 박수를 칠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이며 아름다운 패자가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기 보다는 자신의 실패에 대한 변명을 준비하고 승자의 영광을 깍아내릴 궁리를 하는 모습이 더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삼성의 이건희회장은 세 가지의 스포츠에서 경영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심판이 없는 골프에서는 정직한 플레이를 배워야 하고 파워를 가진 럭비에서는 투지를 배워야 하며 절대 혼자할 수 없는 야구에서는 팀웍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이 가운데 야구의 팀웍에 마음이 갑니다.
서효인이 쓴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어느 젊은 시인의 야구 관람기> 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음 등판이 남아 있다. 실패의 여정과 다시 시작하는 도전은 우리의 삶이 퍼펙트 게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
영원한 승자는 없습니다. 또한,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패자에게 감사를 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브리서 10: 24)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와 문화 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크리스챤 커뮤니티’ 를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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