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2015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갑’의 넉넉함을 가지고 ‘을’을 섬기는 자세로
2015년의 첫 달인 1월도 절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1년 가운데 가장 빠르게 지나는 달이 12월과 1월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 했지만 지난 연말에 있었던 두 가지 ‘갑질 사건’인 ‘땅콩회항 사건’과 ‘백화점 모녀 사건’의 여파는 여전합니다. 알면 알수록 답답한 사건의 내막으로 분통이 터진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어제와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젠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이탈리아의 메디치라는 가문이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 가문, 약 3백50년간 유럽을 지배한 가문,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라파엘로 등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해 르네상스를 꽃피운 가문,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하고, 프랑스 왕실에 두 명의 여인을 시집보내 왕가가 된 가문, 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정했던 영광의 가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원래 이탈리아 피렌체 북쪽 지방에서 농사를 짓던 가문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점차 상업이 번창해지자 메디치 가문의 선조는 상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유도시 피렌체로 이주해 옵니다. 귀족이 아닌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을 통하여 유럽 최고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국제무역의 부흥과 함께 여러 도시에서 은행업이 발달하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1397년 지오반니 디 비치(1360~1429)가 피렌체에 메디치은행을 설립했습니다. 15세기 후반 피렌체에는 무려 72개의 은행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고 그중 메디치은행이 가장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지오반니는 1419년부터 부의 사회 환원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빈민구제소를 짓고, 예술 후원에도 적극적이었고 지오반니의 아들 ‘코시모’ 역시 부의 사회 환원과 학문의 진흥에 힘을 쏟았습니다. 수많은 교회, 수도원, 병원, 복지시설을 짓거나 막대한 금액을 기부했습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 코시모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피렌체의 안전’을 자신의 인생철학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군소 도시들로 나뉘어 끊임없이 싸우던 때여서 피렌체의 존립은 외교적 성과에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했고 외교를 통해 전쟁을 줄이는 것이 피렌체 시민들이 잘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코시모는 이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피렌체의 실질적 지배자로 인정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얼마전 한 방송사에서 다시 한 번 조명된 ‘유한양행’의 설립자 ‘고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유일한 박사(1895-1971)는 국내 최대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의 설립인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유일한 박사는 미국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현지에서 식품회사를 운영해 자금을 마련한 뒤 1926년 한국에서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유한양행을 통해 의약품 생산은 물론 위생용품과 농기구, 염료 등을 수입해 국민들의 건강과 생활 향상에 전력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일제의 침략이 더 거세져 사업환경이 급변하자 미국에 체류하면서 수출선의 다변화를 추진하는 한편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1941년 해외 독립운동단체들이 연합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해외 한족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그는 광복 이후인 1946년 귀국한 뒤 유한양행을 재정비해 사장과 회장, 그리고 대한상공회의소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민족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합니다. 또한 1952년 고려공과기술학교, 1964년 유한공업고등학교 등을 설립 운영하고 개인 소유주식을 각종 장학기금으로 출연하는 등 자본의 사회 환원에도 힘썼습니다. 특히, 1969년 경영에서 은퇴하면서 혈연관계가 없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인계함으로써 전문경영인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천했던 사실과 더불어 기업경영사의 미덕으로 남을 것이라는 평가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갑’으로 시작한 기업이나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도 ‘을’로 시작해서 주변의 도움으로 ‘갑’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갑’은 언젠가 다시 ‘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갑’으로 있을 때 ‘갑 다운 역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을’이 되어도 무시 당하지 않습니다.
16세기에 메디치 가문도 결국은 몰락을 합니다. 코시모 3세는 피렌체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고, 불규칙한 폭식과 무절제한 주색잡기로 만성질환을 얻습니다. ‘몸을 낮추고, 대중의 편에 서라’는 신조와는 정반대로 나갔던 것입니다.
메디치가의 리더들은 뛰어난 스펙을 갖춘 사람을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스펙이 갖춰지지 않았지만 세상을 바꿀만한 잠재력을 지닌 창조적 소수에게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메디치가 리더들의 관심은 사람이었고, 그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바꿀 정신이 있었지만 풍요에 치여서 본질을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민심과 멀어졌으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갑들의 모습들이 메디치 가문의 몰락 과정과 비슷해서 씁쓸합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나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품격에 맞는 거룩한 의무’는 ‘성도’라고 불리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덕목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마음은 성도의 기본 정신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민폐를 끼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찔 합니다. ‘품격에 맞는 거룩한 삶’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2015년은 ‘갑’의 넉넉함을 가지고 ‘을’을 섬기는 자세로 성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주십시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