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목회단상

“성경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기록되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가?”
이 비판은 매우 오래되었고,
동시에 매우 진지한 질문이다.
필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1. 먼저, 상상력(Imagination)은 허구(Fiction)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없는 것을 지어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상상력은 그렇지 않다.
상상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눈에 보이는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사랑을 생각해 보시라.
사랑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가?
무게를 잴 수 있는가?
수식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사랑은 불꽃이다.”
물론 사랑은 실제 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표현 속에서
사랑의 진실을 이해한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과학적 보고서가 결코 아니라,
인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진실을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신앙의 언어이다.
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인간의 말인가?
기독교 신앙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인간의 언어로 작성 되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라.
조직신학적으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시다.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고 공존한다.
성경도 그렇다!!.
하나님의 영감이
인간 저자의 언어, 문화, 상상력,
역사 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력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상상력을 통해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3. 오히려 상상력이 없다면 성경은 죽은 책이 된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시라!!.
씨 뿌리는 농부,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아들의 귀향.
이 이야기들이 실제 사건일까?
아마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유들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마음을 움직였다.
왜 그렇까?
상상력은
사실을 왜곡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사실보다 더 깊은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눅15장)는
역사적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조건 없이 기다리는 아버지,
죄책감에 무너진 아들, 용서의 기적을 만난다.
그것은 역사 이상의 진실이다.
4. 성경의 진리는 역사적 사실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창세기 1장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니 성경은 거짓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시편 23편은 과학적으로 증명될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나님이 실제 목자일까?
우리가 양일까? 아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로했을까?
성경의 진리는
실험실에서 검증되는 진리가 아니라,
삶 속에서 경험되는 진리이다.
5. 성경은 상상력의 산물인가?
아니다.
그러나 상상력은
성경이 하나님의 진리를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처럼 사용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눈물, 언어, 문화, 상상력, 꿈, 역사,
심지어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셨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책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자기계시 사건이다.
6.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누군가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맞다!!”.
성경에는 인간의 상상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구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실을
인간의 언어로 형상화한 상상력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상상력으로 기록된 성경이 수천 년 동안
인간의 탐욕을 회개하게 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주며,
죽음 앞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것이 단순한 허구였다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성경은 단순히
사실(fact)의 책이 아니라,
진실(truth)의 책이다.
그리고 진실은 언제나
숫자와 공식보다 깊고,
과학보다 넓으며,
때로는 시와 상상력 속에서
더 찬란하게 빛난다.
그렇기에 성경의 상상력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는 장막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도록
그 진리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창(窓)이라고 말할 수 있다.
P/S
이 글을 시드니 인문학모임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담론을
필자는 반론으로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