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21)
앨리스 라이얼 부인 (본명: 로리머, 1881. 12. 25-1977. 7. 4)
한국명: 라대궐 목사 부인, 진주 1909-14; 마산 1914-21; FMC 직원 1922-29
로리머는 데이비드 라이얼과 결혼하기 전에 수 년 동안 스코츠 교회 선교회(Scots Church Mission)에서 일했고 수개월 동안 압보츠포드(Abbotsford)에서 디커니스로 섬겼다.
두 사람은 1909년 2월 10일에 결혼했고, 2월 24일에 시드니에서 출발하여 4월 8일에 한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4월 15일에 아담슨 목사와 함께 진주에 도착했다.
1910년 9월 라이얼 부인은 장티푸스에 걸렸고, 프랜시스 클러크의 간호를 힘입어 두 달 만에 회복했다.
1911년 엘리스 라이얼은 일본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생각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해 말부터 그녀는 성경공부를 원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주간 영어 성경반을 인도했다. 그리고 그녀의 언어 선생의 도움으로 그녀는 일본인들 사이에 여성을 위한 예배를 인도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자주 남해를 방문했고, 여성들을 가르쳤다. 그 활동은 1914년 초 그들이 마산으로 이전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마산에서 그녀는 지역교회의 삶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남편과 함께 시골 교회들을 방문하였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엘리스 라이얼은 여성반, 마산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고, 마산에서도 일본여성들을 가르치고 복음화 하였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몇 차례 순회사역을 수행했고 지역의 마산여성들을 심방였다.
1921 남편이 사망한 뒤, 라이얼 부인은 1922년 3월부터 1929년 10월 31일까지 빅토리아 장로교회 해외선교위원회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교회를 섬겼다. 그 후에는 다양한 분야의 교회 사무실들에서 일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