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34)
로티 켈리 부인 (본명: 애더슨) (1885. 10. 12-1967. 11)
한국명: 길아각 목사 부인, 진주 1912-13; 거창 1913-18
로티 켈리는 제이. 티. 엔더슨(J. T. Anderson)의 장녀로 프라한(Prahran)에서 태어났다. 앤더슨씨는 1910년에 빅토리아 해외선교위원회의 대표로 한국에 갔던 두 위원들 중에 한 사람이었고, 그 비용을 자비로 부담했다. 1900년에 그 가족은 소렌토(Sorrento)로 이사해서 그곳의 장로교회에 출석했다. 로티는 주일학고 교사였고, 1909년에 켈리 목사와 결혼할 때까지 교회의 오르간반주자였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1912년에 한국에 갔다.
켈리 부인은 교인들과 신앙탐구자들에게 복음과 기독교의 신앙을 가르치는 일에 전심을 다했다. 1913-14년 그녀는 거창에서 여성들의 신앙을 돌보는 책임을 맡았고 전도부인들과 함께 대다수 교회여성들의 가정을 방문했다. 그녀는 또한 거창의 주일학교에 대한 책임도 맡았다.
1915년 4월부터 켈리부인은 여학교의 운영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창에 머무는 동안 줄 곳, 가정심방을 계속해서 고무적인 결과를 얻었고, 여성 연례 사경회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또한 모임의 사람들에게 교인됨의 자격을 준비시키면서 세례문답교육과 입교인 반을 가르쳤다. 그녀는 주일학교의 책임자로서 교사들과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켈리 부부는 1918년 병으로 고통을 당했고 5월에는 네 살 된 아들 데이비드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졌다. 그들은 호주로 휴가를 떠났고 결국 1919년 12월 17일 사임하였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