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43)
E. K. 로마스 교장(Mr E K Lomas)
한국명: 노마시(盧馬是)교장, 마산(1914. 1-1916. 2)
뉴질랜드 웰링턴 사범대학(Teachers Training College)의 과학교사였던 로마스(Mr E K Lomas)는 1913년 6월 한국에 가는 교육 선교사로 임명받기를 추구하면서 해외선교위원회에 지원하였다. 로마스는 오타고 대학에서 탁월한 학생이면서 기독학생연합(SCU)의 리더였고, 웰링턴의 그의 교회 안에서 청년성경반(Young Men’s Bible Class)의 리더였다.
그는 건강 검진을 통과할 것을 조건으로 1913년 6월 18일에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해외선교위원회는 그를 빅토리아로 데려와 선교사로 안수하여 한국으로 파송시키도록 실행위원회에 위임했다. 그는 11월 18일에 안수를 받았고 11월 26일 시드니에서 탕고마루 호를 타고 한국으로 출발했다.
로마스는 창신 중학교의 교장으로 예정되었다. 그는 마산에 도착한 즉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교장 직을 수행했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당시 1915년 7월에 학교에는 8명의 한국인 교사들과 181명의 학생들이 있었고 그중 58명이 상급반에 속해 있었다. 그는 주당 4시간 (노래와 영어를) 가르쳤고, 세 명의 교사들에게 주당 2회 영어를 가르쳤다.
그해 일본당국은 새로운 사립학교개정법을 도입했다. 그것은 학교 안에서 종교교육과 예배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양심에 반하는 것이었고, 그는 정부 당국과 협력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장직을 사임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는 1916년 2월에 한국을 떠났다. 해외선교위원회가 1916년 빅토리아장로교총회에 보낸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2년 동안 그의 외국인과 한국인 동료들로부터 깊은 애정과 존경을 받았던 로마스 씨의 선교사직 사임은 우리 사역에 또 다른 손실이 되었다. 로마스 씨는 한국에서 일본 당국의 적대적인 태도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신교육법을 사용해서 신앙인으로서 그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에 학생들을 참여시키도록 지시했다. 그는 공손하면서도 확고하게 저항했고 그에 대한 당국의 응답은 ‘우리는 일본 천황이 첫째이고, 모든 다른 신들(gods)은 그 다음이다.’는 것이었다. 본위원회는 한국에서 우리 교육사역에 일어난 헤아릴 수 없는 손실에 깊은 유감을 표하지만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서 로마스 씨가 취한 행동 이외에 다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는 것에 공감한다. 로마스 씨는 뉴질랜드 교육부 산하 웰링턴의 사범대학의 과학교사로 과거의 직에 다시 임명되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