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45)
마가레트 매크레이 부인(본명 홀)
한국명: 맹호은 목사 부인, 마산(1915-40)
마가레트 홀(Miss Margaret Hall)은 일본에서 살고 있었던 영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녀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도쿄에 있는 귀족부인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명문태생의 일본인들과 자유롭게 교제했다. 그녀는 1915년 1월 9일 프랭크 매크레이 목사와 결혼했다. 그들은 처음 여러 달 동안은 거창에서 살았으나 그녀의 나머지 한국생활은 마산에서 살았다.
그들이 마산으로 이사한 직후, 그들은 마산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매크레이 부인의 능숙한 일본어 지식은 목회에 큰 공헌이 되었다. 그녀는 수 년 동안 일본어로 성경반을 운영했고 1940년 그들이 한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본인 공동체와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했다. 그녀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혹은 선교사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오해가 발생했을 때 화해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확신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녀는 넘치는 친절함과 삶에 대한 드문 열정, 큰 능력과 무한한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에 대해 용기 있고, 재능이 넘치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았다. 성공회 교인으로 자라난 그녀는 자신이 속해 있는 장로교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이슈들에 대해 객관적인 견해를 내어놓았다.
그들이 마산에 거주하는 동안에 마가레트 매크레이는 계속하여 많은 가정심방을 하였는데 그것은 마산에 국한되지 않았다. 후반기에 그녀는 특별히 병자 심방에 집중했다. 1926년부터 그녀는 환자 방문 외에도 마산에 유아복지사역을 시작했다. 매크레이 부부는 선교사역에 동반되는 개인적 희생을 경험했다. 그들의 딸 캐슬린(Kathleen)은 질병에 걸려 1927년 7월 25일 생후 2년 반 만에 죽었다.
그들의 장남 파쿠하(Farquhar)는 중국에서 의사 선교사로 섬겼고(1941-51), 그후 아프리카에서 사역했다. 목사가 된 차남 노만(Norman)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했고(1943-60), 그후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에서 사역했다. 그들의 딸 마가레트는 간호사가 되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