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54)
매이지 타이트(Deaconess Maysie G Tait)
한국명: 태매시(太邁施) 선생, 거창 1919-22; 마산 1923-41
매이지 타이트(Maysie G Tait)는 리스고우 타이트 목사의 딸이었다. 그녀는 성장하면서 그리스도와 자신 사이에 살아있는 관계가 없다고 느끼면서 개인 신앙의 문제로 고민을 하였다. 그러다가 한 복음전도자와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여성으로 깊은 종교적 체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타이트는 수년 동안 사무실 일을 했다. 그리고 간호훈련을 받았으나 그것이 자신의 길이 아님을 확신하고 몇 달 후에 포기하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디커니스ㆍ선교사 훈련소에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었고, 2년이 지나 그녀는 한국선교사로 임명을 받게 되었다.
타이트의 첫 임지는 거창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주일 학교에서 가르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여학교와 야간학교를 운영할 책임을 맡았고 여러 차례 순회사역에 나섰다. 그녀는 최소한 한 번의 여름방학을 서울에 있는 한국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보냈다.
1923년 그녀는 마산으로 이전해서 18년을 보냈다. 그곳에서 그녀의 임무들은 전도하고, 지역을 철저하게 순회하고, 교회들의 여성들을 중심지로 모아서 사경회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임무들 중 일부는 전도부인들의 사역을 감독하는 것이었는데 타이트는 전도부인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녀는 또한 성경학원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위해 매년 준비반을 모아서 가르쳤고, 성경학원에서도 가르쳤다.
타이트는 1941년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에서 철수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타이트는 PWMU의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장로교회에서 분립한 독립해외선교부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이 선교부의 선교사들은 해방 이전에 일제가 한국인에게 강요한 신사참배에 저항 했는가 부분적으로 굴종했는가 하는 문제로 경남지역 교회들 안에서 야기된 긴장을 더 악화시켰다.
수년이 지나서 타이트는 한국의 주요 장로교단들로부터 분리된 가까운 한국인 여성친구들이 이끄는 작은 단체를 지원하였다. 메이지 타이트는 1955년 6월경에 호주선교회와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