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55)
에디스 커(Edith A Kerr BA BD, 1893-1975)
한국명: 거이득(巨怡得) 선생, 진주 1921-24; 1927-28; 마산 1924-27; 통영 1928-35; 동래 1935-41
에디스 커는 빅토리아의 에덴호프(Edenhope)에서 태어났고, 멜번고등학교와 멜번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녀는 빅토리아 부 교육부 소속 교사로 일할 때, 선교의 소명을 받았다. 롤런드 하우스(디커니스 훈련소)1에서 훈련을 받은 후에 그녀는 1921년 10월 한국에 도착했다. 그 후 커는 20년 동안 호주선교회의 교육사역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그녀의 첫 임지는 진주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여학교의 교장에 임명되었고 또한 기숙사의 사감을 맡으면서 곧바로 언어 공부가 중단되었다..
1924년에 그녀는 마산으로 이전해서 언어공부를 마쳤고, 의신여학교 교장, 기숙사와 유치원의 감독을 포함한 여러 가지 책임을 맡았다. 그녀는 또한 여성들의 사경회에서 가르쳤다. 휴가를 마친 후 그녀는 여러 가지 임무들 가운데 진주여학교 교장이 되어 진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녀는 1928년에 통영에 배치되었고, 산업프로그램, 유치원, 야간학교를 관리했다. 특히 절망적인 가난으로 인해 부모에게 팔려서 술집과 매춘시설로 넘어간 한국인 소녀들의 끔찍한 곤경과 애절한 상황은 그녀에게 지속적인 도전이었다. 그녀는 이런 소녀들과 또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들과 장애인 소녀들과 같은 상처받은 여성들을 위한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설립할 가능성을 찾아내었다. 그녀는 모든 에너지와 헌신을 통해 세운 동래실수학교(농장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 학교와 지울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 학교를 거쳐 간 소녀들은 기독교적 사랑의 보살핌과 애정과 훈련을 받았고 스스로 자활하도록 회복되었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 공헌하였다.
에디스 커는 지성, 상상력, 열정, 그리고 강한 신앙을 지닌 여성이었다. 그녀는 멜번신학대학(Melbourne College of Divinity)에서 신학학사(BD)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오랜 생애에서 건강이 나빠서 많은 시간을 시달렸지만 신앙적인 섬김을 위해 자신의 큰 재능을 사용하는 것을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어에 능숙했으며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가르치는데 사용했다. 1938년 인도 마드라스에서 국제선교대회(IMC)가 열렸을 때 그녀는 한국 선교사 대표들 중 한 사람으로 파송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그녀는 이화여자 대학에서 가르치도록 임명받았으나 건강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호주로 귀국한 그녀는 여러 학교에서 가르치다가 한동안 발라랏의 클라렌던 칼리지(Clarendon College)의 교장을 역임했다. 그후 뉴질랜드 디커니스 훈련소의 소장으로 2년을 섬겼다.
그녀는 교회 내 여성의 지위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 그녀의 열정과 연구는「호주장로교선교회와 한국선교, 1889~1941」(1970)를 출판하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그녀는 함께 일한 모든 사람들에게 위대한 동료였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