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8)
칼빈의 생각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구약에서의 언약은 그 옛날 그시대의 이야기 이고, 지금 이 시대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약 만 잘 알면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나님의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효력의 연속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구약이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약속되어 있고, 신약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관점에서 언약의 효력이 차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의문을 낳게 한다. 지난 주에는 마틴 루터가 유대인들을 향해 던진 저주의 말들을 살펴 보았는데, 16세기 종교 개혁의 시대에 칼빈은 루터와 달리, 유대인들에 대해, 성경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기록을 남겨 놓고 있다. 그의 유명한 저서인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신 구약에 대한 유사성과 차이점을 기독교 강요 제2권10장과 11장에서 ‘신구약의 유사성’, ‘신구약의 차이점’이라는 개별적인 제목으로 구별하여 논술하고 있다. 오직 말씀과 믿음, 은혜로 돌아가야 한다는 종교 개혁의 슬로건 안에 칼빈은 특별히 말씀의 권위와 성경의 진리 안에서만 시대를 변화 하려고 했던 것은 다시금 상기 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그가 두 장에 걸쳐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과 유사성, 또 그 효력의 관계성을 따로 할애해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 중요성에 대한 칼빈의 각별한 관심을 짐작 해볼 수 있다.
기독교 강요
칼빈은 먼저 10장을 열며 부제로 그는 “구약의 언약은 신약의 언약과 실제는 같다”라고 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신 구약의 차이로 인해 단순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표현하며(601),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 시대의 이단이라 불리던 세베투스와 재 세례파들을 언급하며, 이러한 오류를 제거 하기 위해 그리스도 강림 전에 주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과 그리스도 출현 후에 우리들과 맺은 언약이 얼마나 같으며, 또 다른 가를 나타내기 위해 이 글을 써야 하는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구약의 유사성
칼빈은 신구약의 유사성을 전개 하는데 있어, 우선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을 때 육적인 번영과 행복이 아닌, 영생의 희망을 주셨고, 신탁과 율법과 예언자들에 의해 이 선택을 보증하시고, 두번째, 그 언약이 그들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하고, 셋째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 한다고 믿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구약은 장래를 내다 보는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구약은 하나님의 은총을 토대 삼고 그리스도의 중보에 의해 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 한다. 칼빈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들을(아브라함과 유대인) 감히 복음에서 끊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수님 스스로도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 하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심으로 옛 맹세를 실행하신 것이라면, 구약의 목적도 그리스도와 영생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그 동일성에 대해 서술 하고 있다.
언약의 표징에 있어서도 성례전을 할 때 과거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사도바울이 세례의 특권이 유대인들의 것보다 더 우월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영원한 하늘 생명의 약속을 유대인들에게도 알릴 뿐 아니라 진정한 영적 성례전으로 그 약속에 인을 치셨다고 말하며 유대인의 위치가 변함이 없음을 말한다.
흔히, 유대인들에게도 영생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칼빈은 조상들에게 약속의 말씀과 자기 백성과 사귐으로 인한 친밀한 교제 안에 영생을 주셨음을 주지 하고 있다. 창17:7절의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죽음을 초월한 심판자와 인도자와의 영원한 생명의 관계가 있다고 그는 가르친다. 칼빈은 하나님의 언약이 아담과 아벨, 노아를 통해서도 궁극적인 축복이 지상적인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칼빈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족장들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로운 약속은 동일하게 적용되며, 나그네 인생을 사는 가나안 땅의 고된 삶 이후에 약속의 결과를 기대하는 영생의 삶을 추구 했음이 이미 구약에서 보여 주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칼빈은 모세의 약속을 지나 다윗의 시편의 고백을 통해 의와 구원의 영구성과 확실성을 강조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욥과 같은 의로운 이들이 가진 하늘의 소망의 고백은 성령으로 인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의 지상성을 초월해 예언자들의 예언을 통한 영원한 영적 생명과 축복, 즉 구원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10장 마지막에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향해 “복음의 은총의 상속자들”이라고 선언하며, 선지자들의 자손과 언약 백성임을 강조 했던 것은 (행3:25) 그들에게도 동일한 믿음의 영들이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구원의 동일한 능력으로 기업의 보증이 되시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안타 깝게도 지금이 시대의 유대인들은 아직 그들의 눈이 모세의 수건에 가리워져있고, 그리스도께 그들의 얼굴을 돌릴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글을 맺고 있다.
11장 –신구약의 차이점
칼빈은 11장에 이르러, 신약이 구약과의 차이점이 물론 있지만, 성경의 엄연한 통일성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조심스런 운을 떼며 그 글을 시작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다섯가지의 차이를 서술하는데, 첫번 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지상의 축복에 강조 점을 두었다면 신약은 내세에 더욱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갈라디아서를 인용해 어린 상속인을 비유했지만,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후손에게 영생의 소망을 갖도록 훈련 시키려하셨다고 말한다. 언약을 주신 동안은 미래의 영원한 행복도 지상적인 혜택으로 상징하며, 벌에 대한 신체적 체벌로 영적 죽음의 중대성을 지상의 일시적 축복안에서 상징하고자 하신 것이라 칼빈은 설명하고 있다.
두번째는 구약은 실체가 없고, 대신 형상과 그림자만을 보였고 신약은 진상의 실체가 현재에 있는 것으로 계시하므로 상징으로 그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칼빈은 ‘율법은 장차올 일의 그림자’이고 그 언약의 성취는 그리스도인 것을 주지 시킨다. 예수님의 최후 만찬에서의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에 대해 ‘하나님의 언약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쳐질 때 진리에 도달하고, 영원한 새 언약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와 ..듣는 바를 볼 수 없었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시대를 위한 것임을 서술하고 있다.
세번째 차이는 구약은 문자적인 반면 신약은 영적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사도바울은 구약의 율법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부패를 시정하지 못하는 한계성을 지적한다고 말한다. 고린도 후서3장을 들어 율법이 죽음의 저주를 가져왔지만, 신약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얻게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율법자체가 가진 언약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은혜를 잊은 백성이 이탈함으로 폐기되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네번째 차이는 이러한 율법의 죄에 대한 구약의 구속과 신약의 복음으로 인한 자유가 가진 차이들 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구약에서는 한 민족에게만 은총의 언약을 국한 시켰다면, 신약에서는 그 담을 허물고, 이방인들과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은총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11장의 후반부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다른 민족들은 남이었다. 유대인들은 선별되었으나 이방인들은 속화된 채 방치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때가 차매, 그들이(이방인) 함께 하나님과 화평하여 한 백성 (한 새사람-개역)으로 융합하게 하시려는 뜻이라고 에베소서 2장16절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유대인이나 헬라인(갈3:28), 할례나 무할례의 차별이 없고(갈6:15), 오직 “그리스도가 만유시요, 만유안에 계시다”(골3:11) 라고 설명하고 있다.
칼빈은 이러한 서술을 통해 축복의 질에 대해서는 동등하지만, 그의 우선순위는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우리가 흔히 생각 하듯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교회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둘이 새롭게 하나되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통해 강조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신약 학자들의 생각
신약학자 James Dunn 은 ’바울신학’에서 로마서 11장을 주해 하는데, 세계선교를 위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를 기대했던 바울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비젼은 아직 이루어 지지않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바울이 “유대인-이방인”이라는 대결 구도에서 ‘이스라엘’ 이라는 단일구도로 변화 시켰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자”들로 재 정의 하려고 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대인 바울의 시도는 실패하고 엣적의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새 이스라엘’이 ‘교회’로 주장되는 일들로 인해 로마서 9-11장의 신학적 소망은 파국을 맞게 되었고, 바울이 제시한 신학은 끊임없는 혼란과 오해의 희생물이 되어 버렸다고 안타까와 한다.
이에 대해, 영국 성굥회의 주교이며, 신약학자인 톰 라이트는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축복들의 수령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마틴 루터는 토라가, 모세를 유대인들의 수장으로서, 그를 악한 인물로 설정하고 정죄하는 것 말고는 하는 역할이 없는 악한 율법을 전수 한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반면, 칼빈은 “모세의 율법은 이미 구속받은 백성들에게 삶의 방식으로 주어진 것으로 이해 된다”고 차이를 두어 말했다. DA Carson같은 신학자도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의 언약의 말씀을 구원 받은 백성에게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E.P 샌더스라는 신학자가 유대교 의 율법 준수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구약의 율법에 대한 학자들의 이해는 이스라엘이 이미 구원 받은 백성이며, 그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훈련과 모범을 위해 그들에게 주신 교훈적 지침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 또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약을 통해 하신 그 시대의 구원의 약속은 현재에도 지속적이고 유효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의 생각
칼빈은 ‘온 이스라엘의 구원’(롬11:27)에 대해서 “이방인들이 영입 될 때 유대인들도 돌아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온 이스라엘이 완성 될 것이다”라고 주장 했다. 그것은 양 쪽에서 모여야 하는 것이지만, 유대인들은 첫번째 자리를 차지 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가족에서 장자처럼..” 회복 될 것이라고 구약에서의 유대인들의 장자의 위치를 재삼 확인 시키고 있다.
칼빈이 강조 하듯 구속사의 전과정은 언약적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원 역사에서 성취된 아브라함의 언약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이 영원한 언약은 이삭과 야곱을 통해, 노아와 모세,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 까지, 신구약 시대를 거슬러 궁극적인 세계를 위한-이스라엘을 통한- 변함없는 하나님의 연속적이고, 단일한 구원 계획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그 효력이 지속되며,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유대인과 이방인들 안에 아름다운 새 한 사람이 되는 화해의 열매로 분명히 맺혀지게 될 것이다.
정원일 목사 (Christians for Israel – National Director. Korea)
베다니 사역 본부 대표, 키비 호주 대표(문화 교류학 박사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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