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교육 칼럼
아빠 밥 먹어!
어느 한가한 오후 학교를 마친 아들이 할머니 손에 이끌려 시골의작은 개인병원에 도착을 합니다. 아빠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들이 오랫동안 병원에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지쳐있는 아빠를 바라봅니다. 아빠는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를 부축하여 앉힌 다음 병원에서 주는 밥상을 엄마에게 가까이 밀어 줍니다. 하지만 기력이 다한 엄마는 쉽게 밥을 먹지 못하고 아빠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당신이 좀 먹여 줄래요?” 숟가락에 반쯤 밥을 담고 반찬을 그 위에 올려 놓아 엄마에게 건네 줍니다. 몇 숟가락 받아 먹던 엄마가 상을 물리며 아이에게 말합니다. “배 고프지?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밥 먹을래?”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의 눈가에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표정이 스치더니 “아빠 밥 먹어!” 합니다. 이 순간 이들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잠시 서로의 사랑에 취하여 행동이 이어지지 않는 특별한 감상에 젖어 있을 때 건너편 병상에 누워 있던 아주머니 환자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빠에게 ‘아빠 밥 먹어’가 뭐니? 진지 잡수세요. 해야지!”
그 아주머니의 보호자들도 저녁시간에 맞추어 병실을 찾습니다. 아버지 인듯한 남자와 어린 꼬마가 병실로 들어와 누워 있는 아주머니 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어머니 오늘은 좀 나아지셨나요?” “그래, 너는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니?” “네, 어머니 오늘 학교에서 수학 덧셈을 배웠어요. 쪽지 시험을 봤는데 백 점 맞았어요.” “ 잘 했구나.” “ 네 어머니 진지 잡수세요.”
어머니와 어린 아들의 대화를 비교해 보시고 잘 키운 아들이 어느 쪽 아들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크고 중요한 사업이 자식농사라고 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자식들을 잘 가르친다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중요하고 큰 일이라는 것이겠지요.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육환경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 이사를 다니는 것 정도로 알고 계시다면 말입니다. 맹모삼천지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내 자식은 내가 책임지고 키운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좋은 선생님과 좋은 교재를 가지고 내 아이를 가르치도록 돈을 지불하면 부모의 책임이 끝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남의 손에 맡겨진 아이의 불안해 하는 심정을 생각해 보셨나요? 잔뜩 경계하며 알고 싶지도 않고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지도 않은 어떤 지식을 억지로 배워야 하고 암기해야 하고 그것을 사랑하지도 않는 선생님이나 어른들께 확인시켜 드려야 하는 그 어린 영혼을 말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우리 부모들이 반성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조직 폭력배들이나 씀직한 언어를 무의식 중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확인 해 보실까요? 아침에 침대에서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아이에게 하는 말입니다.
“ 이제 그만 일어나라!”
“ 얼른 씻어라!”
“ 밥 먹어라”
“ 방 정리했어?”
“ 침대는?”
“ 도시락 챙겨라”
“ 이빨 닦고 가야지”
“ 갔다 와라”
“ 끝나면 바로 전화해!”
“ 학원가야 하니까”
아직 눈치 못 채셨나요? 뭐가 어때서? 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이에게 하는 말에서 주어가 빠져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에 사랑이 빠져 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위와 같은 정도는 아직 많이 나빠진 정도는 아닌 가정입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나빠질 수 밖에 없는 가정이라는 것도 사실 입니다. 위의 가정이 몇 년 지나면 대화의 수준이 이렇게 바뀌어 갑니다.
“ 일어나!”
“ 씻어 냄새나”
“ 밥 안 처먹니?”
“ 방은 또 개판이지?”
“ 맞지 말고 침대 정리해라”
“ 밥 가져가”
“ ……더 이상은 예가 필요가 없겠죠?
어떻게 하면 대화에 사랑을 얹어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모르시는 어른들은 없으십니다. 다 아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으신 것뿐 입니다.
어떤 분 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애들이 좋게 말해서 말을 듣습니까? 악을 써도 말을 안 들어요. 요즘 아이들 외계인 이예요.
와이셔츠 첫 단추를 맞지 않는 구멍에 끼우면 다음에 끼우는 단추도 엉뚱한 구멍에 끼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아이들의 교육도 이와 같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고 하지 않나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아이에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존칭을 사용하여 대화 하는 것입니다. 늦었다고 생각 하고 느꼈을 때가 아이와 부모 사이에 가장 빠른 시기란 것을 기억하세요. 존칭 사용을 시작도 안 했는데 아이가 벌써 다 자랐나요? 그렇더라도 지금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존칭 사용이 어색하고 잘 안 된다 하시는 분들은 이제부터라도 주어를 넣어서 대화의 문장을 만들어 사용해 보세요.
어른들이, 부모들이 존칭을 사용함으로 얻어지는 엄청난 효과는 이렇답니다. 아이들이 마음의 빗장을 풀어 헤치고 엄마나 아빠를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계심을 풀어버린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 아빠에게 존칭을 사용하지 않아요. 무섭지 않거든요.
어린 아이들이 “ 아빠 밥 먹어!” 하는 것은 사랑으로 양육 된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물론 어른스러워 지는 사춘기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부모님들에게도 존칭을 사용하게 되지요.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른들이 아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내 아이는 물론 동네 아이도 사랑해야 하구요. 낯선 곳에서 만난 모든 아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행복해 집니다. 행복한 아이들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경계하지 않으면서 공부한다면 그 아이가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합시다.
우종필(아름다운교회 안수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