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1
문화야! 놀자
문화는 친구입니다. 친구없는 사람은 외롭습니다.
어릴적 바보상자(TV가 주는 부정적인 역활을 강조하신던 어르신들의 표현법)’ 앞에서 자주 듣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 ‘MOO 문화방송’…” 이 노래는 참 짧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정말 인상 깊게 다가 왔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언젠가부터 ‘바보상자’는 제게 ‘친구상자’ 로 다가 왔으며 ‘문화상자’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친구상자’ 의 도움으로 저는 처음 ‘문화’ 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바보상자’로만 알았던 ‘친구상자’는 제가 알 수도 없었고 볼 수도 없었던 수많은 것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역시, 친구는 다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는 늘 우리 가까이에 있구나!”
‘문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왠지 대단한 무언가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단한 미술품이나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음악이나 아니면 웅장한 건축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문화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위키 백과’에게 ‘문화(文化, culture)’에 대하여 물어 보았습니다. 제게 이런 대답을 주었습니다. “문화(文化, culture)는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체계를 말한다. 문화란 사회사상, 가치관, 행동양식 등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관점의 이론적 기반에 따라 여러 가지 정의가 존재한다. 문화는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영화와 같은 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류학 사회 전반의 기술, 예술, 관습, 양식 등 보다 광범위한 것들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문화를 정의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소비재로서의 문화 상품은 문화의 다른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키’는 참 친절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문화’를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문화는 친구입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문화가 없으면 외롭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단 모이면 ‘민증(!)’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동갑이나 비슷한 또래이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 친구네!” 부담가는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잘 써 먹는 문장이 있습니다. “우린 친구잖아!” 진짜 친구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친구라며 더 적극적으로 부담을 줍니다. 가끔 문화가 그렇습니다. 원하지 않지만 자꾸 ‘친구’라며 부담 줍니다. 이 부담을 외면하면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처럼 취급합니다. 요즘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SNS’ 그리고 ‘최신 스마트 폰’ 같은 것을 외면하면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처럼 취급합니다. 문화는 가끔 그렇게 부담스러운 친구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가 가까운 친구와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문화적인 해택을 통하여 각자가 필요로하는 많은 정보와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는 함께하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을 들어 보셨는지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God blessed them an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increase in number;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Rule over the fish in the sea and the birds in the sky and over every living creature that moves on the ground. Gen 1:28).
이 말씀을 읽고 있으면 왠지 전쟁을 앞두고 연병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군사들에게 전달되는 명령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복하라’, ‘다스려라…’ 이 말씀을 들은 병사들은 큰 함성을 지르며 전쟁터로 달려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복하라’, ‘다스려라…’ 이 말씀만큼 강력한 ‘문화 정복’을 명령하는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던 ‘정복’과 ‘다스림’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 보다는 주도적이며 함께하는 역할을 말하시는 것 같습니다. ‘문화’를 친구라고 했는데 친구를 정복하고 다스린다고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문화는 친구입니다.” 문화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친구입니다. 이 친구와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 친구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보면 좀 더 주도적인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가 ‘문화라는 친구’를 만날 때는 좀 더 주도적인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정복하며 다스리지만’ 언제나 함께하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문화라는 친구’를 만난 곳은 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영화와 연극’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라이브 밴드(교회 찬양단의 모습)’의 공연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남학생과 여학생의 예능 대결(개인적으로 이 일이 가장 좋았습니다)이 이루어진 곳도 교회였습니다.
20세기 지적, 영적 거장 가운데 하나이며 ‘라브리 공동체’를 섬겼던 ‘프란시스 쉐퍼’는 자신의 저서인 ‘기독교 문화관’에서 이러한 내용의 글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의미있는 역사속에서 의미있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며 하나님 반역하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문화’ 가 친구라면 이 친구가 방황하지 않도록 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문화와 기독교 문화로 구분을 짓기 이전에 먼저 문화를 잘 돌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신경을 쓰지도 않던 친구가 나쁜 길로 빠지면 그 다음부터 ‘나쁜 친구’ 라며 외면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문화’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화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문화야! 놀자.”
문화가 아프거나 너무 떨어져 있으면 함께 놀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의 역활을 하는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영화와 같은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잘 돌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친구인 ‘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며 ‘문화’를 맡기신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히 문화를 친구로 삼아서 돌봐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문화를 잘 돌봐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며 하나님께 반역을 하면 문화를 잘 돌봐 줄 수도 없고 도리어 문화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문화가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본 지면을 통해 문화가 좋은 친구임을 소개하고 알리려 합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도록 도우려합니다.
‘메시지교회’를 섬기는 임기호 목사(facebook: James Ki Ho L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