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교육자가 본 촛불민심과 민주주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본적인 민주주의개념을 거의 무시하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국주의 국가관으로 대통령 자리를 지키려 한 것 같다. 인간이 민주화의 길을 걸어온 역사를 성찰해 볼 때 1인 또는 1당에 의한 독재적 전횡이나 전체주의적 통제로 개인이 무시당하고 타율이 강요되는 방식과는 그 지향점을 전혀 달리한다는 것이며, 한국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민주주의 개념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밑바탕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일으켜 인류사회에 파문을 던져왔다고 생각된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 4·19, 1980년의 광주민주 항쟁, 1987년의 6월 항쟁, 박근혜대통령을 탄핵시킨 연인원 1,600만명의 촛불집회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너무나 자명하고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외면한체 수세기를 뒷걸음질 해서 군국주의 시대로 회기 시켜보겠다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다. 박근혜정권의 몰락과 함께 새시대를 기대하는 한국인들의 여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으며 이 여세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말고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일으켜 세워서 국가체제며 사회 구석구석이 민주주의가 충만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엄한 인간의 삶의 조건을 부단히 재형성해 가는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촛불민심으로 불의와 적폐세력을 몰아 내게 되었다 해도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반민주세력들은 엄청난 폭풍에 잠시 목을 움추리고 있을뿐 호시탐탐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기에 긴장을 늦출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는 민주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개방적 탐구와 자율의 원리라고 생각하며, 이 원리를 통해 그 자신과 그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신장시켜 가는 것이다. 정신이 닫혀 있는 인간과 사회는 그 만큼 아는 세계가 좁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발전이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사회제도가 입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운다고 해서 모두가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박근혜정권은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철저히 무시 하려고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이다. 집요하게 추진하려고 하였던 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망각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 같지만 이를 강행하려고 하였던 그 의도를 되새기며 촛불 민심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논의는 2013년 유엔에서 조차 반대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며 유엔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베트남에 폐지를 권고했고, 베트남정부는 유엔의 권고를 받아들여 국정교과서를 검정으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는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법이다. 제10조 본문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류의 보편적가치의 최고의 덕목이며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堡壘]이다. 인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박근혜정권의 실정을 열거할 수 없이 많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시도는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들려고 한 가장 치졸한 정책이었다. 독재자로 기록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을 미화하며 그의 후손이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음모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받게 한 것이다.
역사는 사실의 학문이 아닌 해석의 학문이기에 학자나 평범한 시민 각자가 자유롭게 역사정보를 탐색하며 해석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 주는 것이 민주정부가 할일이다. 19세기 이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오면서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발전시킨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그 사회공동체는 국민들의 정신문화에 있어서나 물질의 풍요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남다른 풍요를 누리고 있다. 또 그러한 나라들은 국내외로부터 도전 받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자유사회에서의 절차를 통하여 문제를 잘 해결하고 오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한 근대 이래 민주주의 국가들은 파시즘 나치즘과 같은 군국주의와 대결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였다. 일당 독재를 근간으로 했던 구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 체제의 가치가 우월하다는 것을 온 인류에게 일깨워 줬다. 국가공동체 생존을 영위 하는데 있어서 민주주의 방식만큼 중요한 원리는 없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국의 보수세력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라를 맡아야 한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독재자들의 공통된 행태는 반대를 인정하지 않고 타압하며 권력을 유지해 가는 것이다. 독재자들이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경찰력과 총을 갖은 군대를 사유화해서 반대와 저항을 무력화 시키고 공포감을 조성해서 국민들을 길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군주론”의 마키아벨리[Machiabelli 1469-1527]는 현명한 군주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덕을 갖춘 것처럼 보이며 신민[臣民]의 결속과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잔인하다는 평을 듣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 이론이 500년 전에 통용된 것이 아니라 21세기라는 오늘날에도 그런 군주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망상에 젖어 있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각계 각층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하려고 하였던 박근혜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통해 인권탄압과 독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을 미화하여 학생들에게 그를 가장 모범적인 지도자상으로 각인 시키겠다는 의도였으며, 지난 1월 31일 공개된 국정역사교과서에 여실히 들어내 보였다.
교육이란 플라톤이 국가[또는 政體]에서 동굴 속에 갇혀있던 죄수가 동굴 밖의 환한 세상을 바라보며 놀라워하는 묘사에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교육이란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배움과 깨달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동굴안에서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을 모범으로 삼을 것인가? 동굴밖으로 나가서 세상 밖의 참모습의 사람을 모범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차이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려면 좋은 시민을 길러야 한다. 좋은 시민이란 민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민주시민의 개념을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로 서술해 본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공동선으로 추구하는 사람이여야 하며 자유를 행사하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인간이어야 한다.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과 편견으로 대하지 않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해 가는 인간을 민주시민으로 간략하게 정의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민주시민이 동굴속 같은 어둠속에서 잘난척 하며 뽐내는 지도자가 역사교육이니, 헌장이니, 맹세니, 하는 것을 복창시켜서 복종의 노예를 만들려고 하는 사이비 지도자 밑에서는 길러질 수가 결코 없는 것이다.
이 논리는 국가체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어떤 조직체도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학교가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시키기 위한 많은 명제중에 하나를 고른 다면 학교는 “미래”의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장소”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민주시민의식을 내면화하면 학교를 졸업한 추에 또는 학교 밖에서 학생들이 민주주적 생활과 행위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체가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교수 학습하는 그 과정자체가 민주주의여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현재 “민주 시민”으로서 어엿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으로 대하여야 한다.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생활화하고 민주적 의사 결정 및 토론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습경험을 가짐으로써 민주주의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유예”라든가 “보류”의 개념이 적용될 수 없다는 인식속에서 학습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작곡가 윤민석은 “이게 나라냐”라는 노래를 작곡해서 촛불 집회의 주제곡처럼 부르게 했다. 나라다운 나라가 되려면 민주주의 꽃이 만발한 사회가 되어야 하며 민주주의 꽃은 깨어 있는 민주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야 아름답게 피어 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향기가 진동하는 민주주의 꽃이 계속적으로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 촛불을 놓아서는 않된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