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11
December
12월이 한국의 겨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겨울을 못 본지 벌써 6년이 훨씬 넘었다. 호주에서 태어난 하람이 또한 단 한 번도 눈을 본적이 없다. 한국의 겨울이라니 왠지 참 애틋한 느낌이다.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던 나는 한국에 있을 땐 겨울이 솔직히 조금 곤욕스러웠다.
길도 미끄럽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매서운 칼바람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더운 호주가 낫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한국의 겨울이 새삼 그립다. 비와는 다르게 소리 없이 오는 눈. 그러나 금새 알 수 있는 것은 눈이 내리면 세상이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의 진가는 밤에 드러나는 법이다. 달빛을 받은 눈은 하얀 것이 아니라 은색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고급스런 빛깔이 된다. 베란다가 방 옆에 바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자동차 불빛도 예민하게 감지하던 내가 호주로 떠나기 전날 밤 내린 눈 손님은 알아채지 못하고 둔하게 잠만 잔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집에 가는 길에 탐스러운 눈이 펑펑 내린 적이 있다. 잠깐 사이에도 제법 눈이 많이 쌓였고 청량하다 못해 추운 날씨에 친구와 나는 언 손을 녹일 겸 없는 돈을 털어 어느 편의점에 잠시 들어가 달지도 쓰지도 않은 인스턴트 싸구려 커피를 사서 마셨다. 입김이 서린 창밖에는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고 거리는 조용했으며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이 앞에 펼쳐졌다. 추울 때 총총 걸음으로 들어가던 분식집도 생각난다. 부부가 운영하던 그 분식점은 과일가게 구석에 작게 마련된 곳이지만 큼지막하고 폭신한 오징어 튀김이 참 맛있고 무엇보다 추운 겨울날 호호 불며 먹을 수 있고 무한 리필이 가능한 오뎅 국물이 환상적인 곳이었다.
작지만 빨간 홍게와 커다란 무 그리고 파가 시원한 국물을 만들어 낸다. 금방 뽑아낸 가래떡으로 만드는 떡볶이 또한 매력적인 고추장의 붉은 빛에 윤기를 더해 한번 보면 도저히 안 사먹을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의 음식 이었다. 가게밖엔 매서운 추위가 가득하지만 오뎅이 조용히 끓어오르고 호떡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그곳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렇다면 12월의 교회는 어떠했을까? 12월의 교회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며 송년회, 부별발표회 등으로 술렁거리며 즐거운 긴장감이 흐르게 마련이다. 아이들과 자주 교회에서 만나 한참 수다 떨고 웃고 함께 고민하며 기도하던 그때를 떠올리니 그 시절이 하나님 앞에 가장 순수하게 열정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 대한 예의를 배우는 학습의 장소였고 관계를 익히는 교제의 장소였으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삶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자주 갔고 덕분에 재미난 일도 많이 있었다. 지금은 교회의 여러 모습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특히 연말이면 새벽송이라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 교회식구들 집을 돌며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찬양을 부르고 과자나 간식선물을 잔뜩 받아오곤 하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성도님들은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아이들이 올 것을 준비해 미리 간단한 다과도 차려놓으시고 선물도 챙겨 두신다. 늦은 밤 그날 하루만은 괴상한 불협화음이 옆집에서 들려와도 누구나 이해하고 웃으며 넘어가 주는 행복했던 한국의 12월, 그러나 호주는 12월이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 덥지만 한국의 겨울을 떠올리며 타먹은 코코아. 도대체가 호주에서 먹는 코코아는 추운겨울 한국자판기에서 뽑아먹던 그 코코아의 진한 달큰함 이 없어 아쉽다. 그래서 일까
아직도 나는 12월 호주의 여름이 어색하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