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54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삼시세끼
집에서 제대로 된 밥을 챙겨 먹은 지 오래 된 것 느낌이 들었다. 매일 뭔가를 부지런히 먹기는 하지만 늘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아침은 늘 바쁘다는 핑계로 하람이만 급하게 챙겨 먹인 후 학교를 보낸다. 그것만 하고도 힘겨워 나의 아침 식사는 늘 거르기 일쑤다. 일하면서 먹는 점심은 간단한 빵이나 컵라면이 대부분이고 그것도 안 될 때는 과자 한 봉지로 끼니를 대충 때운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는 건 솔직히 하람이 것만으로도 왠지 버겁고 그렇다고 사 먹기에는 장소도 상황도 마땅치가 않다. 그러다보니 배가 고픈 채로 돌아오는 저녁에는 음식을 하기 보다는 배를 빨리 채워 줄 간단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금방 먹을 수 있는 떡볶이 라던가 면류 또는 인스턴트식품이 주를 이룬다. 온 가족이 좋아하는 나물요리나 찌개류는 피곤하기도 하고 시간도 걸려 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 이다.
하람이의 하루도 거의 비슷하다. 아침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양념김에 싼 밥이나 과일 반쪽 인데 그것도 금방 일어나 먹어야 하니 곤욕 인가 보다. 억지로 몇 개 먹고는 학교로 가는 하람이. 점심은 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다. 파스타나 샌드위치 또는 볶음밥 인데 그마저도 가끔은 남긴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면 주로 남편이 픽업을 가는데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하람이에게 늘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스턴트 치킨이나 햄버거 이다. 허겁지겁 먹고 나면 그걸로 하람이 저녁은 끝이라고 본다.
남편 또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분주한 아침을 보내면 벌써 점심 즈음이라 늘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고 그 후에 주전부리로 대충 때우다가 저녁엔 입맛이 없어 거르고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밤에는 또다시 출출해져 야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가족이라고 해봤자 달랑3명인데도 일상이 이렇다 보니 함께 식사 하는 게 일주일에 3번도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어느 시점에서 나는 입맛을 잃어 버렸다. 배가 고프지만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되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라면 물을 냄비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끼자고 생각하고 살림을 하던 호주초창기 때는 나름 열정도 있었다. 싸고 신선한 계절식품을 이용하자는 원칙 하에 감자가 쌀 때는 감자로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요리들을 늘 떠 올렸다. 감자채 볶음이나 감자고추장 조림, 풋고추감자조림, 감자샐러드, 감자찌개, 감자고로케 등등 또 김치 한가지로도 호박 하나로도 할 수 있는 요리들은 참으로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형편이 그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음에도 이제는 뭔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아끼고 절약하는 게 힘들어진 것이다. 간단한 인스턴트를 즐기지만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다.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으면서 식비는 더욱 증가 된 것 이다. 이런 생활을 계속 하다 보니 신선한 야채나 과일이 들어가야 할 냉장실은 텅 비고 냉동실은 꽉 차 간다. 냉동만두나 떡, 냉동 피자 등이 냉장고 전체를 점령하기 시작 한 것이다. 금방해서 뜨끈하고 뽀얀 흰 밥 에 끓어 넘칠 것 같은 보글보글한 찌개하나만 떠올려도 먹음직스런 식단. 모처럼 그런 식단을 일주일만이라도 운영해 보기로 했다. 분명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식재료도 많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서 주부9단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머리를 쪼개는 수많은 고뇌의 시간을 통해 한 끼의 식사가 마련되는 것이다.
하람이네 일주일 식단
| 요일 |
아침 |
점심 |
저녁 |
| 월 | 참치야채죽
물김치/사과반쪽 |
열무비빔국수
주먹밥/단무지 |
동그랑땡전
시금치숙주무침 배추김치 |
| 화 | 북어채미역국
두부김치볶음 |
삼색샌드위치
오렌지쥬스 |
제육볶음
무초절임 쑥갓배추겉절이 |
| 수 | 콩나물조개탕
소시지야채볶음 배추김치 |
삼선볶음밥/짜장소스
유부미소국 단무지 |
사골떡국
오이도라지생채 배추김치 |
| 목 | 스크렘블에그/베이컨
매쉬드포테이토 야채스틱 |
비빔밥
오이냉국 |
자반고등어구이
버섯된장찌개 치커리사과무침 깍두기 |
| 금 | 꼬치어묵국
양념구이김 배추된장지짐이 |
라면
군만두 배추김치 |
오징어떡볶음
계란탕 배추김치 |
| 토 | 건새우아욱국
스팸구이 깻잎찜 배추김치 |
닭칼국수
닭죽 미나리부추초무침 배추김치 |
삼겹살구이
모듬쌈야채/들깨쌈장 콩나물겨자무침 배추김치 |
하루에 3번 밥 먹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매우 중요하다. 삼시세끼라는 tv프로그램이 나올 정도면 그렇지 않은가. 이번 한주도 그렇게 느슨해진 주부의 마음을 정비하고 힘을 낸다. 주부가 가정의 일에 열심을 낼 때 아이도 남편도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중고등부 교사시절 가르치던 학생이 호주로 유학을 와 학업을 마치고 여기서 결혼해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어제 그 학생이 우리 가족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신혼집에 방문했다. (집도 우리 집 근처이다. 우리 집을 늘 친정이라 부른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살림집에 고소한 깨소금 향이 났다. 정성스럽게 차린 상에는 정갈한 보쌈과 시원한 냉면, 그리고 샐러드가 올려 져 있었다. 고기는 잘 삶아져 냄새도 나지 않고 쫀득한 식감이 무엇보다 좋았고 직접 만들었다는 냉면 소스는 매콤 달콤해서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남편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샐러드에 올라간 키위소스도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여 감탄했는데 문득 가족에게 늘 초라한 밥상을 내주던 내 자신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요리는 즐겁고 행복한 것이란 걸 잠시 잊었었다. 그저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특별한 치유제 라는걸 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우리 모두 기대되는 저녁밥상을 한번 차려보자. 냉장고를 열어 시들어 가는 야채와 꽁꽁 얼려둔 고기를 꺼내 고민을 하라. 주부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