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56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빵빵하게 채우다
빵의 종류는 참 많다. 크림치즈를 발라 먹으면 쫀득하고 맛있는 베이글. 그런데 갑자기 베이글녀랑 베이글은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궁금해 졌다. 베이글은 동그란 도넛형의 딱딱한 빵을 말하는데 베이글녀는 어떤 여자를 말하는 걸까? 검색해 보니 아기 얼굴(Baby face)과 글래머(glamour)의 합성어. 즉, 아이처럼 귀여운 얼굴을 가졌지만, 글래머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의 신조어란다. 다시 말해 베이글 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 외에 한국의 시장에서 갓 튀겨 사먹던 그 것과 비슷한 깨찰빵, 커피향이 나는 모카빵, 아침에 먹으면 부담 없고 좋은 버터롤, 고소한 크루아상, 빵 속에 소시지나 돈까스가 들어간 샌드위치나 핫도그, 그리고 다양한 토스트들. 하지만 어쨌거나 난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집에서 도넛이나 팬케익을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나를 그대로 닮은 하람이도 역시 빵을 즐겨 먹지는 않는다. 이른 아침 학교 가기 전 토스트한 식빵에 잼 하나 발라 먹으면 참으로 편하련만, 안 먹으면 안 먹었지 반드시 밥이어야 한다. 반찬이 없으면 김에 싸서 먹더라도 말이다.
비록 이렇게 빵은 안 먹지만 우린 다른 쪽의 밀가루 중독자 들이다. 바로 국수류. 잔치국수부터 시작해서 쫄면, 칼국수, 수제비, 우동, 팟타이 등등 하루 한 끼는 꼭 이 메뉴들을 찾는다. 한때 나도 빵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호주에 사니 이제 외국 사람들처럼 커다란 바게트나 둥근 호밀빵을 멋스런 종이봉투에 사서 담아오는 일상 말이다. 왠지 굉장히 세련되고 심플해 보이는 모습 아닌가. 그러나 실상 그런 딱딱한 빵을 먹는 것은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참 곤욕스런 일이었다. 부드러운 우유 식빵이나 옥수수 빵도 쉽게 질려하는 내가 썰면 빵가루가 지천에 부서져 떨어지는 불편함까지 감수하며 과연 바게트를 먹겠는가. 결국 남은 빵들은 상온에서 방망이처럼 딱딱해져 하람이 맴매로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낚시라도 자주 간다면야 물고기 유인용으로 바다에 뿌리기라도 하겠지만 늘 한 두 조각만 먹고 남은 빵은 결국 곰팡이 차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상당히 안 좋은 그런 날이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급하게 빈속에 약을 들이키고 나와서 일까. 속은 계속 울렁거리고 머리가 띵 하면서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몸이 축축 늘어졌다. 더군다나 날씨까지 우중충 한 게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기세다.
속을 달래려고 따뜻한 물을 몇 번이나 마셨지만 도저히 진정 되지가 않아 당장에라도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그러니까 정말 순간적으로 빵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고소한 소보루 빵이나 팥 앙금이 들어간 찐빵 같은 것(참고로 본인은 팥을 아주 싫어해 팥빙수의 팥도 빼고 먹을 정도다) 평소에 집에 누가 사들고 들어 와도 전혀 눈길 한번 주지 않던 그런 것들이 말이다. 따뜻하고 진한 커피와 달착지근한 빵 하나만 먹으면 좋겠다 싶어 부리나케 가서 욕심내어 여러 종류의 빵을 샀다. 빵 위에 소금을 살짝 뿌려 짭짤한 야채 빵, 부드러운 생크림과 망고를 팬케익에 싼 망고 팬케익, 앙증맞은 블루베리와 딸기가 얹혀진 타르트, 그리고 역시나 소보루와 단팥빵이다. 몸이 피곤하고 아프니 문득 단 것이 먹고 싶었는데 그게 빵이었나 보다. 그렇게 빵 몇 개를 먹고 나니 당 때문이지 기운이 조금 나는 듯도 했다.
빵이라 하면 어릴 적 아버지가 회사에서 나오는 빵 간식을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신 일이 늘 생각난다. 삼교대 근무를 하셨던 아버지가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간식으로 나오는 빵 2~3봉을 철부지 삼남매를 위해 챙겨 오시곤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시간을 늘 손꼽아 기다렸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버지 보다는 빵을 기다렸던 게다. 제과점 빵도 아니고 그냥 봉지에 쌓여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빵이었지만 간식이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 이보다 더 훌륭한 먹거리는 없었다. 그렇게 빵에 대한 추억을 떠 올리니 기름 식빵 사건도 생각난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맛난 음식을 해 먹고 싶어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모여 식빵을 튀기기로 했다. 나의 상상 속에 요리는 제과점에서 먹던 바삭하고 맛있는 시나몬 토스트였다. 기름에 튀겨 설탕과 시나몬 가루만 살짝 뿌리면 되니 간단하다고 쉽게 본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끓지도 않은 기름에 풍덩 집어넣은 식빵은 냄비 안의 기름을 반 이상 흡수했고 결국 튀기긴 했으나 먹을 때마다 기름이 입안으로 한 바가지는 나왔을 것이다. 친구들은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며 기름의 느끼한 맛에 진저리가 쳐 진단다. 그리고 지금도 기름식빵을 해서 먹느냐고 농담처럼 묻는다. 얼마나 충격적이고 엄청난 비쥬얼이 었는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오늘도 야식으로 배에 잔뜩 빵을 채우는 남편. 그래. 피곤하고 지칠 때는 또 빵만한게 없긴 하다. 그래서 한국에 살 때보다 더 찾게 되는 빵. 그만큼 우리네 일상이 조금은 더 고달프고 힘든 이유도 있겠다. 어쨌든 빵빵하게 채웠으니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한 날을 기대한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