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26
감기
지독한 감기에 걸려 방에 누웠다. 자동 난방이 되지 않는 호주의 집은 겨울이면 그래서 더 춥고 쓸쓸한 듯하다, 또 왜 이리 천장은 무심히 높은지 아무 무늬 없는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병실에 혼자 누워 있는 환자 같기도 하다. 대책 없이 마음이 외로워 지는게 누구 말대로 정말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나 보다. 분명 아침에는 멀쩡히 괜찮았는데 밤부터 갑자기 몸이 아파왔다. 조금씩이라도 아플 기미가 보였다면 약이라도 미리 먹어 두고 일도 좀 덜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텐데 할 일 다 하고 늦게 서야 자려고 눕자 마치 누구한테 한 대 심하게 맞은 것처럼 끙끙 앓기 시작한 것 이다.
안 아프다 아프니 더 아픈 것 같고 뼈마디마디가 욱신거리는 게 정말 대단한 감기 몸살이 찾아 온 것이다. 간신히 남편이 챙겨준 감기약 하나를 먹고 누웠지만 여전히 몸은 계속 불편하기만 하다. 어느 자세로 누워도 도대체가 편치 않다. 온몸에 힘이 빠져 일어날 힘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아무소리도 없고 냉기만 가득한 방에 혼자 있으려니 괜 시리 눈물이 났다. 일부러 쉬라고 하람이를 데리고 나간 남편의 배려에 물론 감사하지만 아플 때 조용한 것이 나는 왠지 익숙하지 않다. 아픈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실히 그리운 순간 이었다.
아플 때면 옆에 붙어 앉아서 [옷을 얇게 입어서 그런 것 아니냐. 여자는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지. 그러니 과일 좀 제발 꼬박꼬박 챙겨 먹어라, 아침은 반드시 먹어야지 배가 허하면 감기가 온다. 라고 마구 잔소리를 쏟아 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픈 사람 두고 옆에서 잔소리 하는 어머니가 그때는 이해가 안됐지만 귀를 틀어 막 으면서도 속으로는 솔직히 싫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인줄 알았으니까. 어쨌든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든든한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과 몸은 서서히 치유가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셨을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십자가의 험한 길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도 외롭고 힘든 그 순간 그래서 어쩌면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을 그만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 즈음 예수님은 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그만큼 힘겹게 기도하셨던 게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땀방울이 핏방울이 다 되었을까. 실제로 그런 현상을 혈 한증이라고 하는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샘에서 모세혈관을 파괴하는 화학성분이 나와 소량의 피가 땀샘에 들어와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렇듯 예수님의 심리와 육체가 극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아무도 옆에 없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막14;34] 예수님이 이토록 처절하게 고민하며 기도하셨던 것은 왜일까. 예수님은 긴 밤 홀로 무슨 생각을 하시며 그 시간을 보내셨을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토록 처절한 고뇌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시 예수님. 그런 예수님의 희생을 나는 가끔 잊는다, 부끄럽게도 골고다 그 언덕 나무 십자가의 은혜를 당연한 듯 너무 쉽게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지독한 몸살을 겪고 나서는 다음날 신기하리만큼 가뿐한 마음으로 나는 일어섰다. 몸이 아프고 나니 정신은 더 맑아진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이 먹고 싶어지는걸 보니 조금은 어이없게 감기가 나갔다 보다. 별 양념 없지만 그래서 더 깔끔한 콩나물 북어 국에 밥을 말면서 아픔만큼 성숙해 진다는 어느 노래가사를 문득 떠올린다. 매년 나는 예수님의 고난에 진심으로 함께 동참하는가. 그 아픈 사랑만큼 나는 조금씩 이라도 자라고 있는 가 점검한다. 아픈 다음 먹는 이 북어 국이 오늘은 유난히 달고 시원하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