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29
어른이 된다는 것
호주의 Mother’s Day(어머니날)를 맞이하였다. 한국의 어버이날과 비슷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머니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로 여성 인권 측면에서도 중요한 날로 여겨진다. 한국의 어버이날처럼 어머니날에도 선물을 드리는데 한국의 카네이션과는 달리 흰 국화를 드린다.
흰 국화는 호주에서는 좋은 일에 많이 쓰인다고 하니 조금은 문화적 차이가 있다 하겠다. 어찌되었건 항상 자식 입장에서 맞이하던 이 날이 올해 처음 부모 입장으로 바뀌었다. 하람이가 이제 어머니날을 챙길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학교에서 직접 골라온 선물이라며(비록 돈은 내가 주었지만)정체를 알 수 없는 화분과 카드를 내미는데 하트모양의 사탕은 자기가 이미 오면서 다 먹었단다. 어버이가 된다는 것, 한편으로 늙어간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프기도 하고 덤덤하기도 하면서 참으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며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동글 넓적한 얼굴 도대체 날렵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고개만 살짝 숙여도 턱이 두 개로 겹쳐버린다. 거뭇거뭇한 기미는 화장을 지웠을 때 진가를 드러내고 적어도 누웠을 때는 홀쭉하게 들어가던 배가 이제는 아무리 대자로 쫙 펴고 누워도 볼록하게 솟아올라 있다. 심심할까봐 드문드문 나오던 흰 머리카락도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금발에 흰머리는 별로 표시나지 않지만 흑발에 흰머리는 너무 티가 나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또 얼마나 두꺼워 졌는지 예전에 끼던 반지들은 겨우 새끼손가락에나 들어간다.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앞 이빨로 마구 깨물어 먹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찬물도 이빨이 시려 마음대로 마시지도 못하니 거울속의 나는 한마디로 너무 거칠게 변해 버렸다.
마음만은 여전히 중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 인데 마음을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야 하시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되니 확실히 나이 들어가는 게 맞다. 그때 어머니도 지금의 나처럼 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기특하면서도 섭섭한 그리고 마음만은 아직 그 시절 그대로인데 몸은 생각만큼 따라와 주지 않아 답답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셨을까?
그러나 이렇게 나이를 먹는 것만큼 나는 그다지 어른스럽지 못하다. 여전히 늦잠자고 게으름 피우는 게 좋고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는 피하고 싶고 잔소리 듣기도 싫은 그래서 부모의 입장이기 보다는 좀 더 오랫동안 자식이고 싶은 철부지 이다, 국어사전에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 혹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은 아직 자신의 삶도 잘 추스르지 못하고 책임지기를 회피하는 어른아이에 불과하다. 금번 한국의 여러 사건들 또한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의 행동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천번은 흘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과연 나는 하람이와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언제쯤 믿음직스런 엄마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루라도 빨리 진정한 어른스러움을 알아야 할 텐데 나는 아직도 고길동 보다는 둘리가 좋다. 그러니 갈 길이 멀다 하겠다. 아직은.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