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현 목사의 성경인물 이야기
가족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어머니의 지혜, 드보라(1)
여성 지도력의 가능성
신사임당과 황진이, 이들은 유교적 가부장제의 질서가 확고한 조선 시대에 두드러진 삶을 살았던 여성들이다. 이들은 어쩌면, 전통 사회 가치관에서 대별되는 두 여성상을 대변한다. 한 사람은 모든 여성이 본받아야 할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또 한 사람은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나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이단자적 여성상으로 기억된다. 매우 대별되는 여성상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어떤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물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이들은 공통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결국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 한계 안에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현모양처의 표본이라는 말 자체가 시사하듯 신사임당의 몫은 철저하게 외부의 공적 역할과는 단절된 안주인으로서 역할이었다. 그 정도의 성품과 재능을 지닌 남성이었다면 공적 사회에서 두드러진 지도자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법했으나 그의 몫은 가족 사회의 테두리 안에 한정되었다. 반면에 봉건적 사회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자 했던 황진이는 분명히 가족 사회의 테두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가 택할 수 있는 삶의 형식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체제가 확고한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가족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길은 기생이 되는 길밖에는 없었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났지만 공적 사회에서 그가 달리 담당할 역할은 없었다. 그 점에서 황진이 역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의 한계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시대적 한계 탓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탁월한 개인도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에는 어떨까? 오늘날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실상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교묘하게 남성 중심의 질서 안에서 제약을 당한다. 다시 말해 남성의 공적 사회에서의 역할은 중요하고 대부분의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역할은 부차적이라는 관념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 관념을 기준으로 하는 남녀분업은 남성의 여성 지배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가치가 지배하는 한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두 가지 길밖에 없다. 현모양처가 되거나 이단자가 되거나. 그러나 그런 가치관이 여전히 강고함에도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우뚝 선 여성들이 있다. 공적인 역할을 당당하게 담당할 뿐 아니라 일상의 가치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여성들이다. 대개 공적으로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하는 남성들은 가족이나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밖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지만 집안에 들어오면 권위적 인 가부장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공적인 역할과 일상의 역할 사이에 괴리되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보이는 여성들이 있다. 그런 여성이 지도자로 있는 경우에는 공적인 관계의 성격이 변화된다. 핀란드에서는 여성 정치인 비중이 높아지면서 부정부패가 사라졌다고 한다. 여성들이 향응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흥미를 잃은 남성들이 점점 정치에서 물러나고, 따라서 여성 정치인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고 한다. 이는 일상에서 체화된 봉사와 헌신의 태도가 공적인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로 뒤바뀌는 경우다. 물론 성(性)이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그러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한국의 현 정권에서 일어난 KTX 부분 민영화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최연혜 사장이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직원 7843명을 직위해제한 것과 여수 기름 유출 사건 때 피해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1차 피해자는 GS 칼텍스,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고 발언한 윤진숙 전 해양 수산부 장관의 모습 속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남성의 힘의 논리를 보게 된다. 이와 반대로 참다운 여성의 지도력은 군림과 명령을 권위로 아는 남성 지도력과 달리 봉사와 헌신을 진정한 권위의 근거로 내세우는 지도력의 가능성이다. 성경의 사사들 가운데 사실상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감당한 드보라에게서 그러한 여성 지도력의 진가를 발견한다.
대안적 사회질서와 드보라
사사 시대 이스라엘은 매우 독특한 사회질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사회질서는 당대 주변 국가들의 질서와는 달랐다 소위 ‘초기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기원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 당시 사회상은 비교적 뚜렷하다. 가나안 지역의 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은 평지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평등한 체제를 유지했다. 그것은 효율적인 지배 질서와는 다른, 자율적인 평등사회였다. 성서는 이 사회에 불평등을 일으킬 만한 소지들을 철저히 배격하는 원칙들을 증언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나안 산간 지역의 초기 이스라엘의 흔적을 드러내는 고고학적 발견들도, 당시 이 지역에 외부에서 유입된 사치품이나 보석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는 것과 군사적 방어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기 이스라엘 사회는 작은 마을을 단위로 여러 가족들이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며 자급적인 경제 질서를 유지했고, 별도의 상비군이 없는 사회였다. 그러므로 그 사회는 물리력이나 생산력보다는 그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 노력과 이념적 순수성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형성한 가나안의 도시국가들 틈바구니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는 때때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결속력이 낮은 평등주의 사회 체제는 항상 동요를 겪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평등주의 공동체는 잠정적으로 효율적인 비상 체제를 요구하게 되었고, 바로 그 요구에 부응해 등장한 이들이 사사들이었다. 하지만 사사들은 권력을 항구적으로 독점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존 권력과의 타협을 견제하는 독특한 역할을 감당했다. 그 사사들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인물이 기드온이다. 이 때문에 여성 사사 드보라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물리적 지배력을 행사한 체제에 대항하는 평등주의 공동체의 수호자라는 점에서, 드보라는 훨씬 더 전형적인 사사의 면모를 지닌다. 그다지 길지 않게 전해지는 드보라의 이야기는 사사 시대 진정한 대결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자유민 공동체가 꿈꾸는 이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드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사 가운데서 분쟁을 해결하는 사사였다.
한광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