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작가론(1)
기독교 박애주의를 한국적 회화로 승화시킨 박수근 화백
[1번 그림] 한국을 대표하는 20세기 화가를 한 사람 들라고 한다면 역시 강원도 양구출신의 박수근(朴壽根, Soo-Keun PARK, 1914-1965)화백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수근 없는 한국미술은 상상할 수 없다. 그는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자랑이자 축복이다.
박수근은 화강암 같은 우툴두툴한 지면에 평면과 입체, 회화와 조각, 구상과 추상, 고전주의와 전위미술, 민중화와 종교화 등의 요소를 간단명료한 구도 속에 농축시켰다.
그 화풍은 동시대 야수파 풍의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이중섭(1916년생)이나 유유자적한 선 세계를 그린 장욱진(1917년생)과도 전혀 다르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박수근도 ‘본질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까를 고민했다.
박수근에게 본질적인 건 역시 기독교다.
박수근의 유명한 말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대단히 평범한 예술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에서 그의 신앙적 깊이도 감지된다.
[2번 그림] 이렇게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 박수근의 그림은 세속적 성화(聖畵)같은 분위기가 난다.
박수근이 기독교를 회화로 표현할 때 그 방식은 서구와 달랐다.
현대종교화의 아버지라는 ‘루오’는 광대를 예수처럼 그렸지만 또한 실제 예수도 그렸다.
그러나 박수근은 예수를 직접 그리지 않고 오직 이웃사람을 통해서만 그리스도 상을 구현했다.
박수근화백의 장남인 박성남선생도 화가인데 지인이라 만나보면 “부친은 ‘나·지금·여기’를 중시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박 화백이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데서 만나는 ‘이웃의 일상(everybody’s everyday life)’에서 소재를 얻었다는 뜻이 된다.
요즘 영국화단에선 ‘일상으로 내려가기(down to earth)’가 유행이라는데 같은 맥락이다.
박수근은 가난한 이웃을 많이 그렸는데 그런 점이 복음서와 맥락이 통한다.
누가복음 6장 20절에는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 천국이 너희들 것이다’라고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가난한 자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프토코스(Ptochos)’에서 왔다고 한다. 이 말은 ‘사흘에 한 끼 먹기도 힘들 정도로 극빈한 사람’을 가리킨다.
박수근 그림에 나오는 주인공도 사실 성서 속 ‘프토코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편이 직업이 없다보니 아내가 행상을 해 근근이 먹여 살려야 했고, 큰딸은 엄마대신 어린동생을 등에 업고 키워야했다. 이런 모습이 전혀 종교적이지 않으나 그 분위기는 거룩하다. 가난을 미화하는 건 아니나 박수근이 그린 이런 가난함마저 아름답다.
박수근이 이처럼 서민적이고 소박한 화풍을 담을 수 있었던 건, 그 내면에 따뜻한 인간미와 시인적 감수성이 넘쳤기 때문이리라. 이와 관련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박수근이 동대문 창신동 살 때인데 밖에 비가 내리자 아내가 남편을 마중하려고 밖으로 나갔단다. 길가엔 과일장사 아줌마 셋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내가 보니까 남편이 과일을 세 군데서 나눠 샀단다. 아내가 그 이유를 궁금해 했더니 “한 아줌마에게만 사면 딴 아줌마들이 섭섭하지 않겠어?”라고 대답했다는 거다.
박수근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림 속 주인공이 서양화에서 보듯 서 있거나 누워있는 게 아니라 다소곳이 앉아있다. 물론 이는 동양문화의 반영이지만 이런 정감어린 포즈가 애틋해 보인다. 이는 작가가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에게 비관주의나 허무주의가 들어갈 틈이 없는 이유이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도 아직 서구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박수근은 서양미술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한국적 미에 푹 빠져 살았다. 석탑이나 석불 같은 데서 말로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온 몸을 떨었다.
그는 어느 날 부인에게 “먼 곳에서 우리 집 용마루만 보아도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소. 그곳에 사랑하는 내 자식이 살고 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내 작은 마루가 있으니 이것이 나의 최고의 자랑 일 수 있지 않겠소”라고 했단다.
[3번 그림] 그런데 박수근은 왜 꽃도, 새도, 달도, 해도 아니고 하필이면 나무를 많이 그렸을까. 인고주의자처럼 춥고 힘든 계절을 외롭게 서 있는 구부러지고 헐벗고 같은 나무가 바로 자신과 같은 서민의 모습을 많이 닮아서일까?
아니면 그런 나목을 그림으로써 가난한 이웃들의 지친 삶에 쉼을 주고 안식과 위안을 돌려주려고 한 것인가?
그건 그렇다 치고 박수근시대를 구분하면 ‘집과 고향과 가족’을 다 놓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 할 수 있다.
일제의 굴욕 속에 물적 결핍을 심하게 겪었고 해방을 맞았으나 극단의 좌우대립으로 시달렸다.
그런 와중에 기독교에 입문한다.
그러나 그 시대가 잃은 건 ‘역사와 전통의 단절’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적 정서가 강한 작품을 발표해 근현대에 절단 난 한국문화를 복원시켰다.
결론으로 박수근은 예사로운 일상을 예사롭지 않는 예술로 바꿈으로 그의 천재성을 드러냈다.
그 바탕에는 기독교 박애주의가 흐르고, 이를 근간으로 인간내면에 잠재한 맑은 마음과 순수한 영혼을 한국적 회화미로 승화시켰다.
한때 대영박물관 한국관책임자가 우리나라에 와 가장 한국적인 작가를 찾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난 그에게 한반도의 지난한 근현대사를 딛고 일어나 독창적 조형탐구로 인류의 보편적 사랑을 형상화해 온 박수근을 추천하고 싶다. 언젠가 그의 작품도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미술관에 ‘모나리자’와 함께 걸릴 날이 오리라.
시와 춤추는 그림, 김형순 미술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