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작가론(5)
장욱진 화백, 동심과 무심의 경지로 안빈낙도를 추구하다.
[그림1] 강운구 I ‘장욱진’ 젤라틴 실버 프린트 22×33cm 1975 ⓒ 강운구
장욱진(1917-1990)화백은 천진난만한 동심과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난 무심의 경지로 안빈낙도를 그렸다. 기법에서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벽을 넘나들며 우리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켜 조형적인 기능성과 독창성을 구현했다.
그의 그림은 30호 이내의 작은 게 특징이다. 그는 그림이 커지면 밀도가 떨어지고 그림이 싱거워진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부풀리는 과장, 확대, 허풍은 없다. 개를 그릴 때도 코딱지만 하다. 격식 없이 소탈하다. 그래서 소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닮았다. 그가 직접 한 말을 들어보자.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는 덜 위험하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없기 때문에, 소탈은 쓸데없는 예의나 격식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
그가 역설적인 진리인 작은 게 크고 낮은 게 높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불교의 무소유적 발상에서 유래한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열정을 뜨겁지만 그림에 대한 욕심은 없어 보인다. 무심의 경지 아니면 무념무상의 경지인지 모른다.
[그림2]’소녀와 새’ 유화 45.5×37.9cm 1955
그의 선을 긋는 방식은 초보자가 그린 것처럼 선사시대 동굴의 그것처럼 원시적이고 원생적이고 원초적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그렸던 바로 그 방식이다. 그럼에도 거기에서 큰 감동과 울림이 받는 것은 거기에 아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선은 완만하다. 우산의 선, 초가지붕의 선, 반달의 선이 그렇다. 완만한 곡선이다. 이런 선을 보고 있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더 나아가 이런 엉성한 선이 관객에게 여백과 설렘을 주고 혼을 빼놓으니 이해하기 힘들다.
장욱진 화백의 그림은 한 축은 마을풍경이고, 또 한축은 가축과 가족그림이다.
그의 마을풍경은 어린 시절 우리가 봤던 정감 어린 풍광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잊을 수 없는 향수도 풍긴다. 우리 문화원형이 개인주의보단 가족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친숙했던 두레마을공동체의 원형을 찾으려 한 것인가.
그의 그림 속 등장 여인은 기다릴 줄 안다. 그런 이미지가 그림에 깔려있다. 인생의 원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참고 기다리다보면 어느새 꿈이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그에게 인생은 장거리 여정이라 급할 게 하나도 없다.
[그림3] ‘무제’ 유화 1970. 사람 자연 동물의 혼연일체 속 자유롭고 유유자적한 분위기가 넘친다
그가 훌륭한 가장이라 할 순 없으나 가족을 정열을 쏟아 그렸다. 그런데 가족이 요지경 속 각시들 같다. 민화에서처럼 까치도 등장하고 또한 꽃, 소, 달, 돼지, 나무, 병아리, 아이들 등도 보인다. 선의 세계 아니면 동화적 판타지인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독특한 장욱진 화백의 유희적 감정과 풍류의 심성이 드러난다.
그의 풍경에는 꽃보다는 나무가 많다. 꽃의 화려함보단 나무의 수수함에 더 매려 된 모양이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최소의 것만으로 농축시켜 단순한 구조로만 형상화한다. 초등학생그림 같기도 하지만 그가 도달한 경지는 예사롭지 않다.
그의 소는 어린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소와 소년은 너무 닮아 형제 같다. 그래서 둘은 정말 정겹게 보인다. 물아일체의 세계라고 할까.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열었다. 이건 성인 프란체스코가 새와 대화를 하는 경지다.
그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리지 않고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린다.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동심과 상상의 세계를 열어준다. 자신만의 자유와 예술가로서의 자부를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림 4]’길 위에 자화상’ 종이에 유채 10.8×14.8cm 1951
삶에서는 멋과 여유를 부리고 작품에서는 안빈낙도를 그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경쟁과 갈등과 대립이 많은 현대에 더 많은 여백과 안빈낙도가 필요할지 모른다.
위 작품에서 보듯 그는 누렇게 익은 논 한가운데를 연미복을 입고 우산을 든 영국신사로 나타난다.
개 한 마리가 그를 따르고 하늘엔 제비 네 마리가 날고 있다.
여기서 제비는 희망의 전령사다. 하여간 1951년에 이런 자화상을 그렸다니 놀랍다.
한국전쟁 당시의 충격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였지만 예술로 그 상처를 치유하려 한 것인가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는 그의 삶의 역설이 담고 있고 그런 와중에도 사치스러울 정도로 안식과 평정을 누리는 자화상을 그리다니 참으로 괴이하다.
[그림5] ‘진진묘(부인의 법명)’ 유화 33.0×24.0㎝ 1970
장욱진화백의 인물그림 중 백미는 ‘진진묘’다.
아내가 불경을 외우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불성을 찾아낸 작품이다. 아내는 그에게 보살이고 부처였다.
그의 인물화는 자신이든 아내이든 사실적이기보다는 우화적이다.
때로 그의 인물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거의 바보의 세계와도 통한다.
인간 본연의 동심과 천진의 세계를 화폭에 그대로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신령하게 보인다.
결론으로 말해 그의 천재기는 극도로 절제되고 농축해 단순미에서 온다.
그런데 이게 그저 나온 게 아니라 때론 가누기 힘들만큼 술도 마시고, 음식도 끊고, 돈 되는 모든 일과 담을 쌓아 무능한 가장이라는 손가락질 당하는 수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그의 예술이 빛나는 건, 태초의 때 묻지 않은 세상과 인간과 풍경이 되돌려놓고 얼 지치고 피곤한 현대인의 영혼은 건드리며 기쁨과 환희를 돌려주기 때문이리라.
얼핏 보면 아주 평범해 보임에도 그 속에 그만의 비범함 기풍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 [작가소개]1918년 1월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1918-1990)은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에 몰입해 1937년에는 전조선학생미술전에서 최고상을 받고 1939년에 도쿄 제국미술학교에 진학하였다.해방 직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잠시 근무한 후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서울대 미대교수로 봉직한 외에는 줄곧 한적한 시골인 덕소, 수안보, 신갈 등에서 화실을 마련해서 오로지 그림에만 전념한다.
그리는 그림과 주도(酒道) 사이를 오가는 자유분방한 삶을 산다. 신명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장인으로 상기를 고집하는 그는 기인처럼 보인다. 그룹전 ‘앙가주망 동인전’에도 참가했는데 주로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가 있다. |
시와 춤추는 그림_김형순 미술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