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작가론(4)
정신분열의 질곡 속, 순수욕망의 회화미를 미완성으로 남기고 간 이중섭 화백

<그림1> [부부, 1954]
박수근, 김환기에 이어 한국화가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이중섭(1916-1956)다.
덕수궁미술관에서 내년 3일 30일까지 열리는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에서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작품을 동시에 비교해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이중섭(1916-1956)은 1916년 평남 평원에서 부농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오산 고보 다닐 때 미국에 유학한 임용련 부부에게서 배웠고 졸업 후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입학한다.
재학 중 1937년 일본전위미술전인 자유미협전에 출품하여 ‘태양상’을 받고, 1939년에는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된다.
1945년 귀국, 원산에서 일본여자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과 결혼하고 원산사범학교교원으로 있다가 한국동란 때 월남, 종군화로 활동하였으며 ‘신사실파’ 동인으로 참여했다.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캔버스, 엽서, 은박지 등에 소, 닭, 게, 달, 가족, 물고기, 어린이, 비둘기, 까마귀 등을 화폭에 담았다.
어린이 모습을 통해 천진한 인간성을 예찬하고, 소를 통해 민족과 개인의 감정을, 닭이나 까마귀를 통해 동족상잔의 아픔을 절박하게 그렸다. 유화와 연필화는 물론, 상감기법 같은 독특한 미감의 은박지그림에서 보여준 자유분방한 선묘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될 만큼 빼어나다.

<그림2> [사나이와 아이들]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도일하자, 이중섭은 부두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와 함께 상경하여 그 후 일본에 보낸 처자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커질 수밖에 없고 생활고가 더 커져갔고 그럴 때는 <사나이와 아이들>에서 보듯 두 아들과 넋 놓고 뒤엉켜 놀던 때의 추억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중섭은 일본교육을 통해 알게 된 서양미술을 한국에 수입하는 창구역할도 했다. 그 중 원시주의 풍의 야수파 필치가 강하다. 그의 회화는 외면보다는 내면,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세계로 파고든다. 원초적 순수욕망과 성애를 표출한 그의 화풍은 20세기 한국회화의 새로운 모더니즘을 여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이중섭은 39살인 1955년 지인들 도움으로 미도파화랑에서 유화 41점, 연필화, 은박지, 소묘 10여 점 등을 소개하는 첫 전시를 열었다. 일반의 호평과는 달리 몇몇 평론가들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혹평을 받았다.
게다가 출품작 중 은박지그림이 외설스럽다고 하여 당국에 의해 철거당하는 소동이 벌어져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받게 된다. 이후에도 폭음과 과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겹쳐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였고 1956년 간염으로 적십자병원에서 입원해 있다가 거주지불명자로 취급되어 세상을 타계한다.

<그림3>[황소, 1953]
이중섭의 대표작은 역시 야수적 생명력이 넘치는 <소> 연작이다. 고구려벽화에서 보는 것 같은 영기(靈氣)가 느껴진다. 이런 표현주의 색조로 한국동란 등 민족의 불행과 일상의 답답함을 이런 붉은 황토 빛으로 씻어내려 한 것인가.
또한 50년대 이후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 그린 ‘선화(線畵)’가 있는데 거기서 보여준 곡선의 기묘한 리듬감은세계도자기역사에서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는 고려청자의 상감기법과 그 유사기법을 계승한 면도 없지 않다.
아이와 작은 물고기로 의인화한 보살님이 함께 등장하여 물아일체의 이미지가 뭔지를 보여준다. 소와 아이가 함께 유희를 즐기는 그림이 참으로 유쾌하다. 이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하나의 자연가족으로 만날 수 있음을 힘찬 붓질로 보여줬다.
그뿐 아니라 작은 물고기가 아이의 성기를 잡고 있다. 이건 어린 시절 자신의 성기를 잡고 개울에서 놀며 맛본 행복, 더 나아가 자연과 합일을 통해 절대행복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에로스가 천진난만함과 만나 20세기형 ‘도원(桃園)’이 된다.

<그림4>[해변의 가족, 제주도시절]
이중섭이 서귀포에 있을 때 그린 <해변의 가족>을 보면 거의가 나체 아니면 반나체다. 벌거벗은 가족그림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한번은 이중섭의 친구인 한묵화백이 그의 집을 놀러 갔는데, 밖에서 보니까 온 가족이 옷을 다 벗고 신나게 놀아 집안으로 들어가기가 좀 어색해 그만 발길을 돌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중섭의 주요테마는 몰아 지경에 빠진 자들의 환희와 열락을 표현하는데 있다. 그래서 벌거벗은 채 복숭아 먹으면서 새와 꽃과 나비와 물고기와 사람이 같은 급으로 유희하는 것이다. 마치 해탈의 경지를 넘나들듯 원초적 인간이 자연과 친화력 속에서 순수욕망의 회화미를 체험하고 음미하게 만든다.
– 김형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