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무 목사의 주일묵상
입술의 권세
손끝에서 말이 태어나는 21세기
버튼 하나로 축복이 날아가고
무심한 한 줄로 누군가의 밤이 무너져,
총칼은 멀리 있어도 입술은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는 칼날을 꺼내
가까운 사람의 심장을 겨누기도 하고
따뜻한 봄비로 메마른 영혼을 적시기도 하니아, 나의 입술은 어떤 세계를 세우고 있는가.
마음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입
속에 쓴물이 차면 밖으로도 독이 흐르고속에 사랑이 넘치면 말끝엔 생명이 움터
세상은 기술을 배우라 하지만
하늘은 먼저 마음을 다스리라 하니,
혀를 고치는 길은
문장을 다듬는 데 있지 아니하고,
영혼의 뿌리를 씻어 다듬는 데 있지 않으려나.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고
안 된다는 한마디에 꿈이 무덤으로 달려가,부모의 입술이 자녀의 내일을 만들며
지도자의 언어가 시대의 얼굴을 빚어가네.
자신에게 던지는 말 또한 그러하여
나는 끝났다고 말하면 끝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말엔 새벽이 열리리니,
입술의 말은 단지 소리가 아니고
미래를 부르는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어가네.
오늘도 세상은 분노를 팔고, 혐오를 유통하며
거친 말로 박수를 얻으려 하지만나 달라짐으로 상처 난 자에게는 위로를,
넘어진 자에게는 위로와 용기, 희망을 말하리라.
그러기에 입술의 권세는 남을 꺾는 힘이 아닌
함께 일으키는 능력임을 기억한다면,그대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겨울을 끝내고, 새봄의 문을 열 것이니
오늘, 정녕 그대 입술은 무엇을 선포하려 하나요.

교회는 친목회로 끝내려나
오늘날 많은 교회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묻는다. 저곳은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인가. 강단에서는 사랑과 희생, 진실을 말하지만 현실 속 교회의 모습은 종종 그 말과 멀리 떨어져 있다. 설교는 높고 거룩하지만 삶은 낮고 계산적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냉소적으로 말한다. 차라리 교회라는 이름 대신 친목회라고 부르는 것이 더 솔직하지 않겠느냐고.
신앙 공동체의 본래 목적은 분명하다. 인간의 욕망을 넘어서는 가치, 곧 진리와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는 종종 그 길을 벗어난다. 교회의 직분은 섬김의 이름이 아니라 권력의 계단이 된다. 봉사는 은근한 영향력 경쟁으로 변한다. 교인 수와 건물의 크기는 신앙의 깊이처럼 포장되지만, 그 안에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도 조용히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이름 없이 헌신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스스로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보지 않는 데 있다. 신앙은 자기 성찰에서 시작되는데 조직은 종종 비판을 불편한 공격으로만 받아들인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울타리로 굳어간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슷한 직업, 비슷한 경제력, 비슷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안전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낯선 사람, 가난한 사람, 생각이 다른 사람은 쉽게 중심에서 밀려난다.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이것이 과연 복음의 공동체인가, 아니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친목 모임인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만약 교회가 진리를 따르는 공동체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편안함을 유지하는 모임이라면, 그 이름을 바꾸는 편이 차라리 정직하다. 친목회라고 부른다면 최소한 위선의 문제는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서로 친해지고 정보를 나누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역할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 교회이기를 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윤리를 살아내야 한다. 약자를 먼저 품고, 권력보다 섬김을 택하고, 말보다 삶으로 신앙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화려한 예배와 웅장한 건물도, 결국 공허한 장식에 불과하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난다. 강단의 설교보다 더 큰 설교는 교회의 일상이다.
만약 교회의 삶이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곳에서 진리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교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은 정말 신앙 공동체인가, 아니면 이름만 거룩한 친목회인가. 교회가 이 질문 앞에서 침묵한다면 언젠가 세상은 대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결코 교회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상무 목사
(시드니생명나눔교회, smhan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