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무 목사의 주일묵상
부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을 덮어
죽고 나서야 다시 사는 길,
고난과 죽음을 통한 영생으로
하늘 소망을 품고
성도는 부활로 나아갈지라!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주님은,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고
막혀 있는 귀를 열게 하시며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시고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주시며
닫힌 하늘 천국을 활짝 여셨다.
영생의 길이 활짝 열린 시대에
말씀과 영, 믿음으로 사는 자는
사탄 마귀 귀신 악마에 잡힌
노예와 종의 신세를 속히 털고,
무거운 짐과 멍에를 벗고
불의와 악의 간계에 속지 말고
예수 부활 길로 서둘러 나올지라!
죽은 영을 다시 살리는 부활로,
혼이 제 자리를 찾는 부활로,
육신이 강건해지는 부활로,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부활로,
엉킨 관계가 정돈되는 부활로,
악습을 없애는 변혁의 부활로,
억압을 벗고 자유의 부활로,
은혜 넘치는 구원의 삶을 통한
행복을 누리는 부활까지로,
교회 된 성도는 지구촌 끝 날까지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복음과 진리를 따라 진군 할지라!
하늘의 도
인간은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하지만
어둠 속 등불 없는 나그네 같아
방황하며 부딪치고 상처를 입으나
위에서 비추는 빛은 길이요 진리라
사람의 꾀와 힘은 한순간 무너지고
권력과 재물은 바람처럼 사라지나
하나님께로 난 길은 변치 않으니
진리와 사랑은 영혼을 붙잡는 반석이라
가정이 하늘의 도를 따를 땐
남편은 사랑으로 아내를 품고
아내는 존중으로 남편을 세우며
자녀는 믿음의 눈으로 자라나
집안마다 화합의 등불이 켜지리라
사회가 하늘의 도를 품을 땐
정직이 기둥 되고 정의가 강물 되어
가난한 자도 웃고 억울한 이도 기뻐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서로를 마주함으로
슬픈 눈물은 위로로 바뀌어 샘솟으리라
국가 정치가 하늘의 뜻을 좇을 땐
군대는 평화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고
지도자는 섬김으로 백성을 품고
법은 공의의 그늘을 넓혀감으로
모든 백성은 자유 안에서 풍요하리라
인간의 존엄은 위에서 내려온 선물
자유와 인권도 하늘의 은총이라
스스로 쌓은 탑은 무너져 흩어져도
하나님 세우신 도를 붙들 때
인생은 쟁취의 참된 행복을 맛보리라
그러기에 사람을 따르고 살 셈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며 따를 건가
인생아, 하늘의 도를 따라 살지니
그 길 위에서만 인간은 인간답게 살고
자유와 복지의 예쁜 새 에덴을 누릴지라!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
부활 신앙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존재 방식과 태도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다. 이 말씀은 부활이 어떤 사건이 아니라 한 인격, 곧 주님 자신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신 주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과의 관계 위에 서 있다.
또한 베드로전서 1장 3절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말한다. 세상의 소망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만, 부활로부터 오는 소망은 죽음조차 무너뜨릴 수 없는 확고한 소망이다. 삶이 지치고 현실이 무거울 때에도, 이 소망은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우리의 영혼을 밝힌다.
그러나 부활 신앙은 단지 위로에 머무르지 않는다.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말한다.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의 길을 통과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감당하는 작은 순종, 인내,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라 부활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넘어져도 끝이 아니며, 잃어버림 속에서도 하나님은 새 일을 시작하신다. 따라서 부활 신앙으로 살려는 성도라면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나는 과연 ‘산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여 두려움을 이기고 있는가?
주님! 부활의 생명이 오늘 내 삶 속에 흐르게 하소서. 죽음 같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작은 십자가를 기쁨으로 감당하며 마침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상무 목사
시드니생명나눔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