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무 목사의 주일묵상
5월의 단상
짙푸른 영롱한 5월이 오면
아담으로부터 흘러온 피가
가슴을 흥건히 적시는 밤,
애틋한 부모님 정이 눈에 선해
그리움이 말을 달리는 시간이다.
본향으로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
그 뒤를 따르시려는 어머니,
그리운 내 사랑 어머님이시라.
너도나도 그도, 어떤 이도
하늘 본향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인생 모두에겐
나눠야 할 육신의 정이
태산을 이뤄 쌓이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말없이 흐르는 무정한 강물이다.
우리네 인생살이
진정 사는 게
무언지를 다 안다 해도
가끔 때론 그저 그렇게
밀물처럼 밀려오는 답답한 순간이다.
고독한 아픔엔 아쉬움이 더하고
덧없는 만남과
이별의 연속에 휘말려
정처 없이 허공을 헤매는 때에도,
구름을 타고 멀리 달려와
두 손 살포시 내미시는 어머님이다.
오늘도 붉은 피를 이어 가는 나는,
평지를 밟고
언덕을 넘으며
거친 광야를 지나면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따르고
묵묵히 걸어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보며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미군 주둔의 가치
국가 안보는 감정이 아니라 현실이며 구호가 아니라 힘으로 지켜진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정권은 마치 역사의 무게를 잊은 듯, 안보를 가볍게 말하고 동맹을 값싸게 다룬다. 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들은 미군 주둔의 의미를, 그 피와 시간으로 쌓아 올린 질서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를.
한반도의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진 적이 없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제 질서 속에서 작동한 강력한 억지력이 있었다. 그 핵심 축이 바로 미군 주둔이다. 이는 단순한 병력 배치가 아니라, 전쟁을 예방하는 구조적 장치이며, 동북아 전체의 균형을 떠받치는 전략적 기둥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들이 단순한 의존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 상위권의 국력을 가진 국가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주요 선진국 그룹, 즉 국력 기준 상위권 국가들은 상당수가 미군 주둔 또는 안보 동맹 구조 안에 있다.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캐나다, 대한민국 등에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음은 우연일 수 없다.
이들 국가는 경제력(GDP), 군사력, 기술력, 외교 영향력 등 복합적 국력 지표에서 세계 상위권을 형성한다. 중요한 점은, 이 국가들이 약해서 미군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맹을 통해 더 강해졌다는 구조적 현실이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 세력은 이를 비용의 문제로 축소한다.
“돈을 얼마를 더 부담해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표면적으로는 자주성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보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보는 단순히 병력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전략,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의 문제다. 동맹은 계약이 아니라 약속이며 위기 순간에 작동하는 것은 종이 위의 조항이 아니라 축적된 신뢰다.
미군의 존재는 전쟁 억지력 그 자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이미 수많은 갈등이 차단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일상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균형이며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긴장 위의 안정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동맹을 흔드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안전망을 걷어차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국가의 방향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동맹을 약화시키는 자주를 외치는 언동은 사실상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국제 정치에서 고립은 곧 취약성이다. 힘의 공백은 언제나 다른 힘으로 채워진다. 역사는 이 단순한 진리를 수없이 반복해 왔다.
국가의 정권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안보의 축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국가 지도자라면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판단해야 한다. 미군 주둔의 가치를 폄하 무시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외교적 실수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묻고 또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무엇 위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 기반을 스스로 허물고 있지는 않은가. 무지한 정권이여, 부디 역사를 배우고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라. 결코, 국가 존망의 안보는 선언이나 다짐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해와 책임, 그리고 흔들림 없는 심각한 선택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상무 목사
(시드니생명나눔교회, smhan2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