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루이 14세의 죽음 : Last Days of Louis XIV (La mort de Louis XIV)
감독) 알베르트 세라 / 주연) 장 피에르 레오, 필리페 두아르테 / 2016년

1715년 8월. 루이 14세가 다리의 통증을 호소한다. 그는 이후 며칠간 고통과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공식적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애쓰지만 점점 쇠약해진다.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왕의 마지막 날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장피에르 레오에게 ‘인생의 배역’을 안긴 그림 같은 영화.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 제작 / 출연
– 제작진
감독: 알베르트 세라
각본: 티에리 로나스, 알베르트 세라각본
촬영: 조나단 리크부르그
편집: 알베르트 세라
– 출연진
장 피에르 레오
필리페 두아르테
파트리크 다쉼사오
조제 월렌스테인
베르나르 벨린

○ 내용
1715년, 루이 14세는 산책을 마친 뒤, 극심한 다리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고열 탓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고, 음식조차 삼키기 어렵게 되자 그를 둘러싼 친척과 의사는 방도를 찾기 위해 애쓴다.
2013년 <내 죽음의 이야기 The Story of My Death>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알베르트 세라 감독은 태양왕이라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루이 14세의 죽음으로 다시 한번 우리를 찾아왔다. 또한, 프랑스 누벨바그의 아이콘 장 피에르 레오가 생의 촛불이 꺼져가는 루이 14세를 연기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태양왕 루이14세는 1715년 8월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다리 통증을 느낀다. <루이14세의 죽음>의 시작이다. 그리고 관객은 약 두 시간 동안 배우 장-피에르 로가 연기하는 왕이 천천히 죽어가는 정경을 지켜본다. 온 프랑스의 주시 속에 노왕의 생명력은 시종과 의료진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간다. 렘브란트의 해부실 그림을 연상시키는 침실 구도를 <배리 린든> 같은 촛불 조명으로 밝힌 <루이14세의 죽음>의 화면은 정묘하다. 특히 왕을 둘러싼 빛과 미장센은 거의 인물을 경애한다. 프레임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몸이 누벨바그의 화신 (化身)인 장-피에르 로의 것임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모던 시네마에 바치는 만가로도 해석된다. 전작에서 돈키호테, 동방박사, 카사노바 등의 실존인물들을 미니멀리즘의 방식으로 그려온 알베르 세라는, 거물 권력자의 육신을 뒤덮어가는 고통에 당대 임상의의 차가운 눈으로 접근한다. 영화에서 흔히 죽음을 드라마틱한 이벤트로 만드는 유언, 참회, 임종의 의례는 소거되거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루이14세의 죽음>은 장중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루이14세는 헛기침 한번으로 세상을 떨게 한 절대군주였으나, 영화 속에서 시종과 의료진의 손에 맡겨진 그는 점점 하나의 오브제-성물 (聖物)에 가깝지만-로, 모종의 프로젝트로 대상화되어간다.
○ 영화 이모저모

“짐이 곧 국가니라 (L’État, c’est moi)”라는 명언으로 한 세기 권력을 풍미하다 간 전제군주. 초호화 베르사이유궁전의 지휘자. 무려 72년 장기 집권한 ‘태양왕’ 루이 14세 (1638 ~ 1715)의 역할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장 피에르 레오 (Jean-Pierre Léaud)가 맡아 대부분이 침대에 누워 연기한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소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400 Blows, 1959)에서 소년 안토안으로 각인된 장 피에르 레오 자신이 반세기 동안 프랑스 영화의 대들보였다. 레오가 72세, 황혼기의 배우로서 루이 14세에 필적할만한 커리어를 지니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루이 14세와 장 피에르 레오의 최후를 이중으로 목도하는 체험을 한다. 게다가 루이 14세는 어려서 발레를 배웠고, 문화예술을 즐겼던 전제군주이기도 했다. 대머리로 가발을 쓰기 시작, 유럽에 대유행을 시킨 인물이다.루이 14세의 장기 통치는 재위 64주년을 넘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건재함과 대조를 이룬다.
알버트 세라 감독은 철저하게 루이 14세 왕궁과 침실 안에서 카메라 3대를 돌리면서 루이 14세의 주름과 숨결을 하나하나 포착한다. 관객은 명배우 장 피에르 레오와 역사 속의 루이 14세의 말년을 오버랩하며 보게 된다. 레오의 클로즈업으로 드라마는 더욱 긴장감을 유발한다. 연극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시네마의 스타성과 클로즈업의 매혹이다.
이 영화는 회화에서도 영감을 받은듯 하다. 촛불 조명 아래 신하들과 의사들의 모습은 조르쥬 드라 투르 (Georges de La Tour)의 회화를 떠올리며, 무능한 의사들의 묘약과 민간요법을 둘러싼 부조리한 대화나 루이 14세 서거 이후 부검 장면은 토마스 잇킨스의 ‘그로스 박사의 임상강의, The Gross Clinic,1875)’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루이 14세가 가발을 즐겨 썼으며, 개들을 사랑했고, 삶은 달걀을 좋아했다는 일화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면서도 궁전 밖 정치사는 신하들의 대화로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로써 괴저병 (Gangrene)으로 죽어가는 태양왕의 최후를 정교하게 담는데 성공한다. 그가 생사를 오갈 때 레퀴엠이 흐르지만, 깨어났다가 최후의 숨결을 거두는 것도 리얼리스틱하다.
○ 언론소개
– ‘루이 14세의 죽음’- 장 피에르 레오 열연 빛난, 단언컨대 올해의 영화

‘태양왕’이라고 불릴 만큼, 프랑스 왕조 역사상 가장 무소불위 권력을 자랑하던 루이 14세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아니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BIFF)를 통해 공개된 <루이 14세의 죽음> (알베르트 세라 감독) 속 루이 14세 (장 피에르 레오 분)는 첫 장면부터 서 있지 못하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프닝 때는 휠체어를 타고라도 궁 밖으로 산책을 나갈 수 있었던 루이 14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궁 안, 엄밀히 말하면 침실에 갇혀 있다.
온 천하를 벌벌 떨게 했던 루이 14세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인간이었다. 알베르트 세라 감독은 왜, 루이 14세의 많고 많은 일대기 중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쇠한 루이 14세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어서기도, 물 한 잔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루이 14세를 보여주었을까. 여전히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신하들의 헌신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지내고 있는 루이 14세라고 하나, 그의 말년은 화려했던 지난날과 대비되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혹자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1959)에 출연한 이래, 누벨바그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장 피에르 레오가 죽어가는 루이 14세를 연기했다는 점을 예를 들며, <루이 14세의 죽음>을 영화의 죽음을 절묘하게 비유하는 영화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 시종일관 루이 14세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보여주는 <루이 14세의 죽음>은 움직이는 것을 카메라에 담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박제된 회화를 보는 것 같다. 신하들과 궁정 의사들의 헌신적인 치료에도 병세가 악화되는 노년의 루이 14세의 얼굴과 달리, 젊고 건강한 루이 14세의 청년시절을 그린 초상화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루이 14세의 얼굴만 나오는 덕분에, 2시간 러닝타임이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루이 14세는 관객들이 겪었던 지루함보다 몇억 배의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루이 14세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숙명이다. 돈, 권력, 명예, 지위 모든 것을 다 갖춘 루이 14세는 당연히 오래 살고 싶었고, 루이 14세를 잘 모신 덕분에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루이 14세의 신하들도 그가 좀 더 오래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최선인 의학 기술을 총동원하여, 루이 14세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죽을 날을 앞둔 루이 14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받는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루이 14세는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만으로도 궁정 사람들의 진심어린 박수세례를 받는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그 모습은 흡사 동물원 우리 속 침팬지의 재롱잔치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루이 14세의 수많은 일화 중에서 굳이 죽어가는 루이 14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택한 알베르트 세라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언젠가는 모두 사라져 없어진다는 것.
자칫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우려도 있지만, 그럼에도 <루이 14세의 죽음>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루이 14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몇 마디 말로는 형연할 수 없는 감정을 북돋운다. 우리 모두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이지만, 그래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단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아직 살아갈 여지가 남아있는 것 아닐까. 디저트와 와인을 마시며 무언가를 오랜 시간 노려보는 장 피에르 레오의 표정이 깊은 잔상을 남기는, 단언컨대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될 <루이 14세의 죽음>이다. _ 너돌양 (기사승인 2016.10.15)
– 루이 14세의 죽음 La mort de Louis XIV
(알베르 세라 Albert Serra, 프랑스 개봉 11월 2일)
1715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던 루이 14세는 마지막 산책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다. 왼쪽 다리의 종양은 점점 심각해지고 병색이 짙어져 가는 그는 더 이상의 거동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유수의 의사들이 그를 간호하고 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통증은 가중된다. 그는 음식도 먹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고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의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다.

<루이 14세의 죽음>은 루이 14세가 죽음이 이르는 마지막 며칠을 그리고 있다. ‘태양왕’이라 자칭하며 희대의 권력과 영광을 누렸던 루이 14세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중이다. 알베르 세라 감독은 사치와 전쟁을 일삼고 프랑스 대혁명의 맹아를 마련한 왕이라는 역사적 평가와는 거리를 유지한다. 감독은 한 ‘왕’의 죽음이 아닌 한 ‘육체’의 소멸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왕의 침실 내부에서 전개된다. 검은 화면 위 새의 지저귐과 청아한 공기소리 (음향연출의 묘미다)이 들리는 가운데 베르사유 정원을 바라보는 휠체어에 앉은 왕의 얼굴로 영화는 시작된다. 잠시의 바깥 공기를 접하고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는 왕의 말과 함께 우리는 화려하지만 어둡고 침침한 무덤 같은 왕의 침실로 자리를 옮긴다. 밀폐된 방안에서 클로즈 업과 미디엄 샷을 오가는 카메라는 생의 말기에 들어선 병든 한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여실히 스크린 위에 옮겨 놓는다. 감독은 ‘루이 14세’라는 온전히 죽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과 얼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명암의 대조를 활용한 연출은 렘브란트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구중궁궐 안, 왕의 죽음을 앞두고 상상할 수 있을 법한 암투나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는 제외되고 주위 인물들이 기계처럼 반복하는 ‘전하’라는 극존칭만이 메아리로 울린다. 창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고 침상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왕은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단절된 음침한 분위기는 왕의 죽음을 강조한다. 희미한 촛불만이 어두운 실내를 비추고 병색이 짙은 왕의 얼굴은 시대를 호령했던 ‘태양왕’이라는 별칭을 무색하게 만든다. 죽음으로 가고 있는 한 인물만이 우리 앞에서 신음하고 있다. 간간히 들려오던 외부의 소리는 조금씩 사라져가고 왕은 세상에서 고립되고 죽음은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방안 어디쯤에서 들리는 파리의 날개 짓 소리는 가파르고 가는 신음과 함께 방안의 정적을 깨고 삶의 기저에 깔린 죽음을 환기시킨다.
베르사유궁의 장관은 찾아 볼 수 없다. 루이 14세를 시중드는 하인과 측근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의사와 커다란 가발을 쓰고 누운 늙고 병든 왕의 지나온 시간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권위를 상징하는 가발을 쓰고 크리스탈 잔만 사용하는 루이 14세의 모습이 기묘하다. 부조리한 군주제에 의한 강력했던 권력은 죽음 앞에 무력하다. 사기꾼이 내민 묘약 처방으로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의사들은 암이 퍼진 다리를 자르지도 못한다. 절대권력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무기력하게 사라져가는 한 병든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영화는 두 시간여 동안 공들여 세밀하게 해부한다. 죽음의 시간을 영화가 바라보고 있다.
이 영화에서 루이 14세를 연기한 쟝 피에르 레오의 힘을 간과할 수 없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한 감독인 프랑소와 트뤼포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 쟝 피에르 레오는 가장 프랑스인다운 ‘얼굴’로 꼽히기도 한다. 1959년, 트뤼포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400번의 구타>에 주인공 앙투완 두와넬로 발탁된 15살 거리의 소년 쟝피에르 레오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유년기를 입체적으로 표현해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바닷가를 달리던 두와넬이 카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배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깬다). <400번의 구타>에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어린 쟝피에르 레오의 불확실한 시선은 반세기를 지난 오늘 카메라를 응시하는 죽음을 지척에 둔 루이 14세의 시선과 겹친다. <루이 14세의 죽음>에서 노년에 접어든 쟝피에르 레오라는 배우의 (다가올)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누벨 바그 감독들의 부고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_ 전은정 기자 (프랑스 유로저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