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데이
독감 감기 철에 건강 지키기
호주는 겨울철 6월부터 독감과 감기 유행기간이다, NSW는 금년 1월부터 3월까지 독감환자가 6,400명이 발생했다. 작년에는 3,148명이라고 한다. 아동들의 학교 결석율도 근래 크게 늘었다고 한다. 시드니에서는 동부·남부·북부 지역 양로원 16개소에 유행이 심하며 1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호주 여행자들이 겨울철인 북반부 국가들을 방문하고 독감이 오염되어 호주에 여름 독감균을 퍼트린 결과라고 한다.
독감과 감기는 모두 바이러스가 옮기는 병으로 증상이 비슷하지만 대처방법은 다르다. 감기는 200여개의 변종된 균이 옮기기 때문에 감기 예방주사는 아직 없다. 그런데 독감(Influenza)은 균주 A.B.C중에 주로 인프렌자 A형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A형이 많은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 몸이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변이를 넣은 예방주사를 만들어 항체가 생기게 했다. 그렇다고 주사맞은 사람이 100% 안전하지는 않다. 같은 균주일 경우 70-90%까지 예방이 가능하다. 예방접종을 해도 2주후에 면역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3월, 4월 안에 접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방주사가 없을 당시인 독감은 1918년 세계대전이 끝나고 귀국하는 군인들에 의해 스페인 독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1919년까지 세계에 5,000만명이 사망했다. 근래인 1998년 7월 13일 홍콩에서 처음으로 독감이 시작하여 6개월간에 독감으로 세계에서 사망자만 100만 명이 넘었다.
독감 예방주사로 인해 어린이와 고령자 사망률이 크게 감소하였다. 아직도 미국 의학 통계국에 의하면 매년 세계에서 291,000-646,000명이 독감으로 사망하는데 독감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고 몸에 면역체인 T-Cell이 강력한 면역력으로 균을 공격하다 우리 몸의 세포를 파괴하게 되고 조직이 파괴되어 사망한다는 것이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면역세포의 활동이 크게 줄어 감소된다고 한다.
감기는 1~2주 동안 콧물, 코막힘, 재채기 등의 증상이 완만하게 지속되고 성인은 열이 드물거나 미열에 그치지만 유아나 어린이는 발열증상이 흔하게 나타난다. 대부분 1~2주 후면 자연 치유된다. 하지만 독감의 경우 증세를 방치하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독감에 걸리면 감기 증상에 고열·두통·근육통·관절염 등 심한 몸살 기운을 더한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독감은 폐렴과 같은 합병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65세 이상의 노인·심장질환자·만성폐질환자·당뇨환자 등에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독감은 일단 걸리면 의사를 방문하여 지시에 따르는 것이 상책이다. 감기에 걸리면 바이러스와 싸우는 백혈구 속의 비타민C가 급격히 감소한다. 때문에 평소 권장량보다 많은 양을 섭취해야 몸 속 비타민C의 평균수치를 유지할 수 있다. 또 면역력을 높여줘 2차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감기와 독감이 감염되는 경로 역시 차이가 있다. 감기는 환자에게서 나온 바이러스가 손을 통해 접촉됐을 때 감염되는 경우가 잦다. 따라서 사람 많은 곳에 외출하고 돌아온 후에는 반드시 깨끗하게 손을 씻어야 한다. 반면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 할 때 생기는 작은 물방울에 묻어 인체 외부로 나오고, 이것이 공기 중에서 다른 사람의 호흡기에 전달되는 형태로 퍼져나간다. 기침할 때 마스크로 입을 가리도록 권하는 것도 이러한 전파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독감도 손을 깨끗이 씻어야만 감염을 막을 수 있다. 감기나 독감이나 예방은 손을 깨끗하게 씻는 것이다.
Happy birthday to you 노래 두 번 하는 동안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한다. 손씻기 6단계를 소개했다.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기 ▷손등과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기 ▷손바닥을 마주 대고 손깍지를 끼고 문지르기 ▷손가락을 마주 잡고 문지르기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다른 편 손가락을 돌려주며 문지르기 ▷손가락을 반대편 손바닥에 놓고 문지르기 등 총 6단계의 손씻기 방법이다.
다음은 실내에 습도를 지켜라. 습도가 적정 기준(50~60%)보다 낮거나 너무 높으면 우리 몸은 질병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겨울은 여름보다 습도가 훨씬 낮은 환경에서 생활한다. 우선 계절적 요인으로 여름보다 습도가 10~20% 낮다. 또 추위 때문에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실내는 난방을 하는데다 환기를 제대로 안 해 습도가 낮아진다. 공기가 건조하면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오래 떠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전파 확률도 높아진다. 실내가 건조하면 코 점막에 붙어 있는 섬모의 운동 기능이 떨어진다.
국민의 사랑받았던 “보부 호크” 전 수상 사망
고인이 된 보부 호크 전 수상은 호주의 유명한 무료의료제도 “메디케어”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도 의료해택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정책을 이룩하여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게 길을 마련했다. 또 백호주의 정책으로 100여년을 아세아 이웃을 모르고 지냈던 호주에서 무관세를 목표로 아세아 태평양 지역 경제 기구(환태평양 기구, APECS)을 처음 만들어 아세아와의 무역의 기반을 만들었던 호주의 영웅, 보브 호크 수상이 시드니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향년 89세로 1983년부터 1991년까지 4선을 넘긴 노동당 최장수 수상이다.
1975년 11월 11일 전 노동당 고후 윗들람 수상이 지나친 예산 낭비로 총독(John Kerr)에게 해고를 당하고 대신 과도내각수상으로 자유당의 말콤 후래져 수상이 1983년까지 집권했다. 전 노동당 정부의 지나친 예산 낭비로 예산을 크게 줄이는 것이 새 정부의 목표였다. 그러나 세계 불황으로 실업자 증가되었고 노조 파업후 인건비가 오르면 또 물가도 따라 오르고 해서 경제가 엉망이었다. 은행 이자도 22%였다. (그 당시 재무상은 전 죤 하워드 수상) 특히 전 정권시에 저소득층에게 무료였던 의료비가 이 정부는 수익자 부담으로 대부분 미국식 의료보험을 들어야만 했다. 그 금액이 비싸서 생활에 어려움을 더해 주었다. 노동조합장을 지낸 보부 호크 수상이 1983년 선거에 말콤 후레져와 대결에서 수상에 당선된 후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의료제도를 여러가지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뤄냈다.
근로자들의 수입에 1%를 의료비로 제공하면 전 국민이 무료의료 제도를 받도록 했다. 지금도 호주의 자부심이며 국민들은 “메디케어 무료의료”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의료제도가 의료인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의료인들도 정부정책에 별 불만없이 메디케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보부 호크 수상은 남부호주와 서부호주 국경에 있는 보더타운(Bordertown)에서 감리교 목사 아들로 1929년 12월 9일 태어났다. 그는 영리해서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서부호주 대학을 거쳐 영국의 Rhode장학금으로 옥스포드대학에서 노사관계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가 ‘왜 노동당에 입당을 했는지’에 대한 물음에 자기 삼촌이 서부호주 노동당 주지사를 지내면서 늘 조카에게 ‘배운 사람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가르쳐 그의 영향으로 노동당에 입당했다’고 한다.
그 다음은 경제발전을 위해 과거 노동조합장의 입장을 버리고 새로운 경제를 위해 신자본주의 방향으로 개혁을 시작했다. 무역을 쉽게 하기 위해 호주달러를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호주달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에서 시장에서 시세대로 구입할 수 있는 “Floating dallar”을 마련하고 은행을 개방하여 외국은행과 경쟁토록 하고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회사 등을 개인에게 불하해서 운영을 합리화했다. 그리고 관세를 인하하고 외국자본들이 많이 들어오도록 하는 방향으로 과감히 개혁을 했다. 과거 자유당 출신 수상도 생각못한 것을 노동당 보브 호크 수상이 이룩해 냈다.
1974년 영국이 국민투표로 영연방 경제권을 버리고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후 호주 및 영연방국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뉴질랜드는 수상과 모든 장관이 웨스트미니스터를 방문해서 읍소까지 하면서 영국은 뉴질랜드를 버리지 말라고 간곡해 애원했으나 영국정부는 유럽공동체에 가입하고 말았다. 호주는 아세아와 무역없이는 생존이 문제가 되었다. 호주는 인구가 많은 아세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독립 후 100여년 간을 백호주의로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인 문제는 영국과 영방국가 내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나라였다.
호주 초등학교 학생이 런던과 파리의 거리를 알아도 호주와 인도네시아 거리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보브 호크 수상과 다음인 폴 키팅 수상은 “호주도 아세아 땅이다”라는 표현으로 그간 잘못된 아세아쪽 외교를 적극 권장하여 무관세를 목표로 한 환태평양국가 회의를 창설해서 호주의 젖줄을 영국으로부터 아세아쪽으로 이전 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바 있는 수상이다.
특히 13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이 호주의 경제적으로 큰 것을 인식한 호크 수상은 1985년 중국 공산당 서기 Hu Ya Bang을 호주로 초청해서 서부호주 철광석으로 만들어진 Pilbera를 가서 보여주어 중국 개발에 호주지하자원 수출 발판이 되었다.
호주의 1980년대는 브라질 정도의 경제 수준이었지만 중국의 수출로 오늘날 11번째 경제 대국이 되었다. 특히 중국 천안문 사태가 1989년 4월부터 6월까지 수많은 중국 대학생이 살해됨으로서 보브 호크 수상은 눈물을 흘리면서 중국 유학생 사면을 호소해서 현재 가족까지 4만명이 호주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호크 수상의 사망에 눈물을 흘리며 호주에서 발간하는 중국 신문마다 호크 수상에 고마움을 알리고 있다. 호크, 폴 키팅 수상의 아세아에 대한 열정을 감사히 생각하는 바이다.
하명호(SBS 방송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