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데이
동성결혼 찬반을 묻는 서면 국민투표 실시
결혼이란 성이 다른 남·녀가 가정을 이루는 과정을 말한다. 동성끼리의 결합은 죄악으로 인식되었고 우리는 군생활에서 동성애자는 범죄자로 극형에 처하는 경우를 보고 자랐다. 그러나 해외에 오래 살아가면서 동성애자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더욱이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연애결혼을 반대한 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동성결혼을 인정한 주에서 결혼은 전국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려 사실상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시절에 동성결혼법을 합법화 했다.
세계 20여 개국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합법화 했다. 아시아에서도 대만(중화민국)은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국가에 참여하고 있다. 호주를 비롯해 그 외에 여러나라도 동성애자들의 동거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결혼법을 통해 이성결혼과 동등한 양육권, 재산 공유 및 분할권, 대리적 의사결정권 등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나라가 동성결혼, 동거관계 인정 등으로 동성간의 결합을 인정해 주지만 법적, 사회적인 인정은 많지 않다. 실제로 현재 유럽, 북미와 중남미 다수의 나라들은 동성결혼, 시민결합, 동거관계 인정(domestic partnership) 등의 이름으로 동성간 결합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간 결합에 대한 법적·사회적 인정은 많지 않다.
2017년 호주 현정부는 동성애자 결혼 여부를 묻는 강제성이 없는 국민투표(Plebiscite)을 실시한다. 이번 선거에서 Yes가 다수가 되어도 동성결혼이 법제화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고는 될 것이다. 인근 뉴질랜드는 2013년에 동성애자 결혼을 허가했다. 2016년 인구조사에서 동성애 가정은 4만6천 8백 가구였다. 호주 전체 결혼가구 0.38%에 해당된다고 한다. 극히 적은 수를 위해 선거 비용 1억22백만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선거 실시는 편지로 가부를 묻는 형식으로 9월 초에 실시되며 최종 판결은 11월 경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이나 영국 성공회 등 종교단체들은 반대에 나서고 있고 특히 중국 교민단체도 전통적인 이성결혼만을 결혼으로 인정하자고 나서고 있다. “결혼법이 바뀌면 사회가 바꾸어진다.”라고 선거종이에 “NO”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 녹색당, 자유당 일부 등은 찬성하고 있다. 전 토니 아벗트(Tony abott)수상과 전 하워드 수상은 적극 반대하고 있다. 전 토니 아벗트 수상의 누이동생 인 동성애자(Christine)는 법이 통과되면 그이 동성애 파트너(Virgine)과 가톨릭 신부에게 결혼을 의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리 2중국적으로 상원의원인 Matt. Canavan 의원도 젊은 층에 속하지만 동성애 결혼 합법화는 적극반대에 나서고 있다.
동성애 결혼을 경제적 이유로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호주의 평균 결혼비용이 6만5천불이 되는데 만약 호주가 동성애 결혼을 허가 한다면 현재 동성애자 동거자가 결혼식을 올리면 30억불이란 커다란 수익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허가된 뉴질랜드에서 결혼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도 그들의 행동을 몹시 자학한다고 한다. 경멸과 차별, 종교적 저주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동성애자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동성애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어 자신과 싸워야했던 아픔, 부모에게 ‘자신’을 감춰야 하는 아픔은 본인이 아니고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발버둥을 치지만 성적 성향을 벗어날 수 없어 체념하고 동성애 가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2016년 6월 12일 미국 프로리다 주 올란도 Gay클럽에 총격을 가해 49명을 살해한 범인이 바로 이 클럽을 드나들었던 동성애자였음이 밝혀졌다. 범인은 29세 아프칸 모슬렘 피난민의 자녀로 자기 동성애 행위를 자학하고 싶어 이슬람 극단주의를 표방한 후 동료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역사적으로 동성애 때문에 비극적 삶을 산 인물로 러시아의 음악가 차이코프스키가 꼽힌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그는 대성한 음악가였다. 1893년 그가 사망하자 황제가 국장을 치러주고 장례식에 6만명이 운집할 만큼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그 빛나는 음악적 명성의 뒤에 동성애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그의 삶과 죽음의 축을 이루었다. 그가 여성과의 결혼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폐렴에 걸려 죽으려고 모스크바 강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결혼은 두 달만에 끝났다. 53세 젊은 나이의 죽음 역시 동성애와 상관이 있다. 교향곡 ‘비창’을 초연하고 며칠 후 그는 갑자기 사망했다. 발표된 사인은 콜레라였다. 하지만 이후 드러난 정황들에 의하면 죽음은 비소 중독에 의한 자살 가능성이 높다. 그의 동성애 사실을 고발하는 투서가 황제 앞으로 전달된 것을 그의 대학동창들이 미리 보고 차라리 죽을 것을 권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 동성애는 치욕적 금기이자 시베리아 유배형을 받을 중죄였다. 그는 애인인 조카인 보브 다비도프에게 전 재산을 남기고 죽었다. 유명한 교향곡 “비창”도 그에게 주었다.
하명호(SBS 방송인,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