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37) 중에서 _ 7월 20일자

“동조와 이견”
평범한 일상사에서 나누는 대화에는 병 이견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누가 ‘난 커피’라고 할 때 ‘나도’ 하면서 동조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어떤 학문, 주장, 이론, 정책에 있어서는 반드시 이론이 제기되어야하고 대립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만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예수천당 불신지옥’, ‘기본소득 절대보장’이라고 말할 때 ‘나는 반대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역사는 발전합니다.
이견이 없는 학문, 이견을 수용하지 않는 정부나 사회, 이견을 탄압하는 종교나 신념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모든 일에 비판이나 이견을 귀담아 듣지 않고, 오직 동조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런 사람들 끼리만 모이게 되면 역사의 미래는 어두워 집니다.

누군가 ‘나는 성경말씀은 글자 한자 한자가 그대로 진리라고 믿어!’, ‘나는 우리 정부의 정책은 무조건 지지해!’, ‘나는 다수의 견해는 무조건 따르는 게 옳다고 생각해!’ 라고 말할 때 “Mr. No Man”이 나타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해야지 인류의 미래는 조금씩이라도 밝아진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쯤이나 우리 사회에서도 며누리가 시아버지에게 ‘아버님 제 생각은 다른데요’라고 스스럼없이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언론과 시민들이 집권자에게 ‘그런 정책은 바꿔야한다’고 말해도 얼굴 붉히지 않고, 부당하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전 정권에 대해서는 Mr. No 였던 언론이나 교수나 학자가 현 정권에 대해서는 바른 말 한마디 하지 않는 Mr. Yes가 되었다면 그 언론, 그 교수, 그 학자는 그에게 주어진 본래의 책임과 기능을 망각한 것입니다. 지성인의 사명은 어떤 한 시대의 특정한 정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권력에 대하여 이견을 말하는 데 있습니다.
이견은 없고 일치와 동조만 있는 사회나 집단은 조용해서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좀 시끄러워도 이견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공동체가 역사 발전을 견인합니다.
추천도서: 왜 우리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R. 선스타인, 박지우, 송창호 옮김, 후머니타스, 2015
Carpe diem!
Bonam fortunam!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