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淮南子) – 태평성대를 위한 하나의 책 / 회남자 (淮南子)에대하여
○ 회남자 (淮南子) 탄생의 배경
회남자(淮南子)는 회남왕 유안(BC 179~BC 122)의 저작으로 알려진 전한시대의 책이다. 회남자는 맹자나 노자, 묵자 등 다른 제자백가 텍스트와 다르게 그리 익숙하지는 않은 이름이다. 회남자는 우리가 보통 읽어오던 제자백가의 저작들과는 시대적으로도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지 못한 채 잡가로 분류되어 ‘잡식 모음’정도로 무시되기도 했었다. 회남자는 잡가라는 반고의 구분처럼 천문학부터 주술적인 내용, 군사학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범위의 학문을 다루었으며, 이는 유가, 도가, 묵가, 병가, 명가, 음양가 등 당시 떠돌던 거의 모든 제자백가의 사상을 총망라한 것이다.
회남자(淮南子)는 전국시대 이후의 크게 성행한 도가 일파인 황로학黃老學으로 구분된다. 황로학은 황제와 노자를 배우는 학문으로 여기서 황제는 중국의 전설 속 성왕이다. 한마디로 황로학이란 황제의 정치철학과 노자의 무위자연을 결합한 것으로 무위자연의 정치를 연구하고 주장하던 학문이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극심한 혼란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낸 중국은 더 이상의 분쟁보다는 휴식과 통일된 체계를 원했으며, 이러한 전국시대 말미의 피로가 황로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회남왕 유안이 살던 전한 시대 또한 진나라 멸망 이후 한나라가 급하게 세워지면서 중앙집권체제와 지방분권체제를 함께 두었던 과도기적 시기였다. 나라의 틀을 점차 다잡아 나가고 지방세력을 정리해나가는 과정에서 회남왕 유안도 죽게 되지만, 그는 어찌됐든 한나라의 태평성대를 위해 회남자를 집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기는 회남왕이 이 책을 작성하자마자 무제에게 달려가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회남자 요약편에서도 ‘무릇 이 책을 지어 논하는 것은 도덕을 기틀짓고 인사(人事)를 아우르기 위해서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회남자는 도와 덕에 대한 논의에 기반을 두면서도 형법, 지리, 농법 등 비근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 조언까지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태평성대를 꿈꾸었다고 할 수 있다.
황로학이 황제의 정치와 노자의 무위자연을 같이 이야기하고, 서로 논쟁적이던 유, 묵, 도, 법, 명가 등 다양한 학파의 학술을 뒤섞었다 하여 자칫 모순적이고 깊이 없는 텍스트라고 오해할 수 있으나 중구난방의 학설을 하나로 묶고 통일된 체계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롭게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 원도훈(原道訓), 숙진훈(俶眞訓)
회남자의 첫 시작은 원도훈과 숙진훈이다. 원도훈은 모든 것의 근원인 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노자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며, 숙진훈의 眞은 장자의 용어로 시원적始元的이고 지극한 경지를 설명하고 있다. 노자와 장자의 대표적 개념을 발전시킨 이 두 편의 글은 회남자의 도가적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청정이야말로 덕의 극치이며, 유약이야말로 도의 근본이며, 무심평정은 만물의 기능이다.
대저 대도를 버리고 작은 술수에 의존하려는 것은 게로 하여금 쥐를 잡도록 하고, 두꺼비로 하여금 이를 잡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이렇게 하면 간사姦邪를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끝내는 혼란만 더 심해질 뿐이리라 … 그러므로 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삼묘의 택지를 다스리기도 어렵지만 도리를 좇고 천지자연에 따르면 육합까지도 평정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_ 원도훈
회남자 안에서 도에 대한 서술은 노자와 비슷한 부분이 많이 발견된다. 물으로 도의 성질을 설명하고 無味, 無聲, 無色의 개념을 사용하며 이 근원을 一이라고 표현한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도에 기반하여야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노자에서는 통치에 대한 언급이 생선구이 같은 비유를 통했다면, 회남자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통치에서의 도의 기능을 강조한다. 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무엇을 다스리기가 어려우며 천지자연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특히 때를 강조하는 일이 종종 있다. ‘우가 때를 좇는 태도는 신발이 벗겨져도 줍지 아니하고 관이 벗겨져도 뒤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앞을 다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때를 얻기를 다투었던 것이다. _ 원도훈’ 때를 맞춘다는 것은 천지 만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를 얻어야 할 수 있는 것으로 나 혼자 아무리 용을 써봤자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과 조화할 수 없다면(-그렇게 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바가 많지 않다. ‘새 군주는 천자이자 至高無二한 인간이라는 자신의 칭호에 부응할 수 있는 성스러운 순간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하는 길(왕도)에서 세계의 축과 일체를 이룬 채 직립해 있어야 했다‘. 도가의 군주는 세계의 축에서 거하는 데에만 힘을 쓸 뿐 그 안에서는 무위해야 한다.
– 천문훈(天文訓), 지형훈(地形訓), 시칙훈(時則訓)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안에서 어떻게 때를 찾고 도를 찾는가 라는 문제를 밝히기 위해 회남자에서는 음양과 기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마르셀 그라네의 <중국사유>에서는 음, 양, 도의 세 표상을 연결시키는 점이 교대와 대립을 암시한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음과 양, 이것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어느 한 쪽이 극으로 가면 꼭 반대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으며 그와 같은 식으로 항상 서로간의 균형을 맞춘다. ‘음양은 책력의 소재들을 조직하는 틀로서 운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두 표상은 상반된 두 구체적인 양상들의 율동적 구성을 환기시키는 데 유달리 강력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고대중국인들은 항상 변하는 자연의 성질을 알고 있었으며, 여기에 맞추어 살기를 원했다.
기를 토해내는 것은 만물에게 시혜를 베풀고 기를 머금는 것은 만물을 동화시킨다. 즉 양은 시혜하고 음은 동화시키는 것이다. 천지의 편기는 격노하면 바람이 되며, 천지의 합기는 조화를 얻으면 비가 된다 … 만물의 작용은 본과 말이 상응하고 있다 _ 천문훈
‘중국사유는 모든 분야에 공통된 사유든 전문분야에 국한된 사유든 시간관과 공간관을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시간이나 공간이 따로 떨어져서 각각의 단위에서 정확하고 균등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보다는 자연의 질서 안에서 비슷한 의미를 갖는 것들을 계열화하여 그것을 같이 보기를 원한 것 같다. ‘중국인의 시간관은 의례체계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구별되지 않는다 … 이러한 관습체계 속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시공간의 특수한 안배를 결정하는 여러 정령(政令)들이다.’
매 시간과 각각의 공간은 따로따로의 분절된 의미로 인식되지 않았고, 각각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것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서로 같은 의미로 묶이는 것이 가능한 그룹들을 분야별로 구구절절 읊어 놓은 것이 천문훈, 지형훈, 시칙훈이다. 천문훈은 별 등 우주와 관련한 천문학적 정보를 펼쳐놓은 것이고, 지형훈은 지리에 관한 내용인데 각 지리적 특징에 관한 내용이다. 시칙훈은 매 월과 관련된 여러 의미, 색깔, 사물, 특징들과 그 때의 해야할 일을 적어놓은 말 그대로의 규칙 같은 것이다. 천문학이나 지리에 관한 내용은 그 대상에 관한 연구에서만 그칠 수 있었지만 회남자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은, 자연의 그 때 그런 현상이 인간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때 어떻게 극복, 또는 행동해야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현상과 인간의 관계를 주목하고 그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정리를 하기도 한 것이다.
차라리 이 부분에서 오히려 현재와 친숙한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형훈에서 각 지형과 그 곳 사람들의 얼굴생김새 특징에 관한 내용은 환경결정론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사실 지금도 풍수지리와 같은 학설은 우리 삶 속에서도 충분히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지 않나. 환경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산다는 것을 평생 모를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다른 생명을 먹음으로써 생명이 유지되는 것만 해도 절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의 그런 관심은 나에게 무언가를 해달라는 떼쓰기 같은 요청이나 잠깐 이야기 소재로 사용하다 버릴만한 호기심으로만 남아있다. 그에 비해 시칙을 만들고, 별의 운행과 지형을 선택하는 것에 마음을 쓰는 일은 그것을 공부하는 내내 道라는 뭔가를 향해 다가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구성원으로서 천에 응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또 공부한 뒤 혼신의 집중력으로 조심조심 발을 내딛고, 매 번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므로 정월에 정령을 잘못 내리면 7월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지 않는다. 2월에 정령을 잘못 내리면 8월에 우레가 끝이 나지 않는다. 3월에 정령을 잘못 내리면 9월에 서리가 내리지 않는다 … _ 시칙훈
당시 지혜라고 돌아다니던 거의 모든 것을 수집해서 잔소리를 줄줄 늘어놓으면서도 ‘때 아닌 행동’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정월에 명을 잘못 내리면 그 잘못은 7월이 되어 드러나는데, 1월의 잘못된 명은 7월이 제 성질을 스스로 발현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것은 심각한 것이다. 7월의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은 그 때를 살고 있는 모든 생명과 공간이 스스로의 성질을 갖고 살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그 때 뿐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 이어져올 시간에도 영향을 미칠텐데 7월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 기운이 8월이 된다고 바로 나아질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1월과 7월의 대립이라면 총 열 두 달인 일 년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달이기도 하다. 서로 가장 끝에 위치해있으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두 달을 통해 지금을 잘 살아내는 것은 언제 어디서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계속 얘기하는 것만 같다.
초반의 도론 이후로는 우리 주변의 현상을 설명하는 글들이 계속 나오면서 우리의 행동지침과 그 의미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한다. 공부를 하는 것이 잘 살기 위함이라면 그는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도록 당시 사회지도층으로써 자기가 쌓아왔던 지식과 경험을 다 쏟아 부어 하나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기존의 노자,장자,공자,맹자 등이 그 스스로가 성인이었다면 회남자는 회남왕이 성인이라기 보다는 단지 의욕이 넘치는 지식인이었던 것 같다.) 학문적으로도 참 의미 있는 일이고, 이렇게라도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던 회남왕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끊임없이 무언가를 전해주는 회남자의 서술방식은 읽다보면 어느 순간 확 지치게 되는 지점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기본은 도의 원리로 천지자연의 질서에 마땅한 삶을 사는 것이나, 이것을 지나치게 세분화하여 설명한 것은 마치 엄마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채근하는 것만 같아 좀 불편하기도 하다. 회남자와 관련한 해설 등을 읽다가 이것은 전국시대를 거친 중국인들의 피로감이 요구한 결과이기도 했다는 부분에서 마음이 아팠다. 당시에는 이제 추상적인 얘기는 그만하고 누가 좀 방법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런 중국인들의 뼈아픈 요청이 모든 왕을 위해 통일된 ‘실패하는 법이 없는 정책 세우는 법 ver.1’로 나타난 것이다. 일종의 절충안과 같은 것인데, 그의 학문적 시도와 패기를 높이 살 순 있어도 과연 실제 정치에서 어디까지나 적용이 가능했는지를 생각하면 의문이다.
내가 회남자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회남왕 유안은 어마어마한 지식인과 재력가로 당시 돌아다니던 정보들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보려 했다. 도가 사상에 기반을 두었지만, 당시 돌아다니던 잡스러운 내용까지 무위자연과 어떻게 연결시켜 받아들여야할지 좀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다. ‘중국사유의 가장 큰 의의는 결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과 항상 사회성에 대한 생각 속에서 인간을 생각하려 했다는 점에 있다.’ 회남자는 하늘과 사람이 때에 맞게 동화되는 천인감응의 시각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 결과물에 대해서 아직 뭐라고 하지 못하겠지만 말 그대로 하늘의 응하기 위한 절실한 추구만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 회남자 (淮南子)에대하여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으로 21권. 경제(景帝) 말년에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빈객과 방술가(方術家) 수 천을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
유안(劉安: BC 179? ~ 122)은 한나라의 건국자 유방(고조)의 서자로 회남 여왕(厲王)이던 유장(劉長)의 아들. 아버지가 모반죄로 사형된 뒤에 그 영토의 일부를 계승해 회남 왕이 되었다.
지식인들을 우대하고 스스로도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제나라의 직하의 지식인들이나 여불위가 초빙한 지식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회남 왕 유안도 많은 지식인들을 식객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여씨춘추’를 편찬한 여불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안 역시 식객들과 함께 회남자(淮南子)를 펴냈다.
그 성격 역시 ‘여씨 춘추’와 비슷하여 유가ㆍ도가ㆍ법가ㆍ음양오행가 등 다양한 사상 유파들의 입장이 뒤섞여 있다.
유안 역시 아버지처럼 모반의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기원전 122년에 반역죄인으로 몰렸고 자살로서 생을 마감, 봉지도 모두 몰수당했다.
본래의 이름은 홍렬(鴻烈)인데 후에 회남홍렬(淮南鴻烈)ㆍ회남자(淮南子)로 불렸다. 내편(內編) 21편과 외편 33편 잡록(雜錄)이 있었으나 내편 21권만이 현전(現傳)한다.
여씨 춘추(呂氏春秋)의 형식을 따르고 지식의 종합을 도모한 것으로 1권에 원도훈(原道訓), 2권에 숙진훈을 두어 도가(道家)의 사상을 서술했고, 3권 천문훈(天文訓), 4권 지형훈(地形訓) 등을 둔 것은 후세의 백과사전과 같은 유서(類書) 분류법의 근원을 이루었다.
각 편의 이름과 내용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원도(原道): 근본의 길
숙진(숙眞): 진리
우문(尤文): 동양의 천문학적 지식을 내포
지형(地形): 지형과 지리에 대한 내용
시칙(時則): 시령(時令)
남명(覽冥): 보이지 않는 것
정신(精神): 마음
본경(本經); 대본(大本)
주술(主術); 군주의 시정술(施政術)
류칭(謬稱); 오류의 시정
제속(齊俗); 세속에의 동화
도응(道應); 도의 활동
범론(氾論); 널리 논함
전언(詮言); 긴요한 말
병략(兵略); 전쟁에서의 도
설산(說山): 짤막한 이야기 책
세림(說林); 짤막한 이야기 책
인간(人間); 처세술
수무(修務); 인간으로서의 의무
태족(泰族); 커다란 귀결
요로(要路); 총괄
전체적으로 형이상학·우주론·국가정치·행위규범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대체로 초기 도가의 고전인 노자와 장자에서 다루어진 내용들이지만 이 책의 우주생성론은 더욱 발전되어 있고 명확하다.
처음에 원도편(原道編)은 우주생성론으로 도(道)는 태허(太虛)에서 나오고 태허는 우주를 낳으며 이것은 다시 양의(兩儀)를 낳는다고 했다. 천(天)과 지(地)의 양의가 결합하여 양(陽)과 음(陰)을 낳으며 이 2가지가 만물을 낳는다. 이 우주론의 개략적인 내용은 도가에서만이 아니라 후대의 유학자들도 정설로 채택했다.
영혼을 논한 곳에서는 지상에서의 불멸성과 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호흡법과 같은 신체적 기술에 대해 언급하여 후에 도가 사상과 속화된 도교 신앙을 혼동하게 될 여지를 만들었다. 아울러 형이상학과 우주론에 본질적으로는 합리적 정신으로 접근함으로써 합리주의적인 신도가(新道家)의 출현을 예비했다.
그 뒤 천문ㆍ지리ㆍ시령(時令) 등 자연과학에 가까운 것도 포함되어있고, 일반 정치학에서 병술(兵術)ㆍ개인의 처세훈(處世訓)까지 열기한 뒤에, 요략(要略)으로 총 정리한 1편을 붙여서 복잡한 내용의 통일을 기하였다.
노장도가(老莊道家)와 음양 오행가(陰陽五行家)ㆍ유가ㆍ법가 등의 여러 사상 유파의 입장이 조금씩 혼합되어있어 매우 복잡하며, 그 인식론은 정신ㆍ물질의 이원론(二元論)에서 관념적 도(道)의 일원론에 귀착한다는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중세의 재이미신(災異迷信) 사상의 계보에 이어져 있으나 기본적으로 도가 사상이 핵심을 이룬다.
책이 완성된 무제 시대에는 유교의 권위가 확고부동하지 못했고, 전반적으로 황로 사상을 비롯한 도가 계열의 사상이 우세한 상태였다. {회남자}는 이 가운데 황로 사상보다는 노장 사상 쪽에 가까운 편이다.
– 회남자의 지혜
회남자에는 촌철살인의 명구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일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움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 한다.
❉여러 사람이 우기면 평지에도 숲이 나고, 날개 없이도 날 수 있다
❉천리나 되는 제방도 땅강아지와 개미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 물이 새어 나온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안다
❉두 마음을 품으면 한 사람도 얻지 못한다. 그러나 한 마음으로써 백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유명한 새옹지마(塞翁之馬 = 인간만사새옹지마)의 고사도 회남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귀신과 같이 홀연히 나타났다가 감쪽같이 없어지는 것, 즉 자유자재로 출몰하여 그 변화를 헤아릴 수 없음을 뜻하는 신출귀몰(神出鬼沒)도 회남자에 나오는 표현이다.
회남자는 고도의 사변이나 철리(哲理), 우주론 따위만을 논하는 책이 결코 아니지만 삶의 지혜가 될 만한 명구와 고사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책이다.
– 유위(有爲)의 긍정
회남자의 최대 특징은 노장 사상에 바탕을 두면서도, 무위(無爲) 일변도가 아니라 유위(有爲)까지도 긍정한다는 점이다. 전국 시대의 노장 사상이 일종의 반(反)문화주의나 탈(脫)세속의 경향을 보였다면, 회남자는 무위를 다분히 실용적인 측면에서 파악하여 결국 유위까지 포괄하게 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해석에서도 무위자연이 아닌 유위자연, 그러니까 인위와 자연의 결합 혹은 상통을 중시한다.
“무위는 소리가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내가 말하는 무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무위는 사사로운 뜻으로 자연의 이치를 왜곡시키지 않는 것을 뜻한다.”
– 제국 통치의 도
이렇게 유위를 긍정하는 회남자의 입장은 유교 도덕과의 타협으로까지 이어진다.
“하늘의 본성과 자연의 감정에 철저하면 인의가 처음부터 갖추어 진다”, “마음이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면 인간의 본성은 늘 선하다”.
물론 의식적으로 예에 맞추어 행하는 유교의 도덕과는 입장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세속적인 도덕을 인정하는 주장이 된다.
여씨 춘추가 통일 제국을 예비하는 성격을 지녔듯이, 회남자도 봉건통치를 위해 법을 절대화하고 군주를 통치권의 최고 독재자로 하는 극도의 중앙집권체제를 옹호하여 한 제국의 통치에 부응하는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회남자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천지의 이치는 무한하고 사람의 일은 드넓기 그지없다. 이제 (이 책으로) 제왕의 도가 갖추어졌다.”
이와 같은 지식의 종합은 한(漢)나라 초기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한의 통일국가를 배경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주석서로 한나라 고유(高誘)의 회남홍렬해 (淮南鴻烈解), 청(淸)나라 유태공(劉台拱)의 회남교보 (淮南校補) 등이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