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호주의 날’ 입장차 수년간 지속
1월 26일 ‘호주의 날’ 기념일을 폐기하자는 목소리가 커져가면서 이를 둘러싼 의견차도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매년 1월 26일은 사실상 호주의 ‘건국기념일’로 ‘호주의 날’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기념일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1788년 영국 함대가 호주 대륙에 첫 발을 디딘 이날이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영국의 침략 시작’을 알리는 날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대륙에는 약 5만년 전부터 원주민들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주 땅을 차지하기 시작한 백인들은 1973년에야 백호주의를 공식 폐기할 정도로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하면서 원주민을 차별해 왔다. 현재 2천400만명의 호주 전체 인구 중 원주민은 약 70만명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경제적·사회적으로 밑바닥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요즘 호주의 날의 앞두고 ‘원주민에 대한 배려’와 ‘사회 통합’에 부적절하다는 비판여론이 커져가고 있다. 이에 수년 간 지속돼온 역사 전쟁이 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호주 제3당에 해당되는 ‘녹색당’이 최근 호주의 날 일자를 변경하는 것을 올해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고 전국적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리처드 디 나탈리 녹색당 대표는 “모든 호주인은 서로 함께할 수 있고, 우리의 다양하고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사회를 축하할 수 있는 날을 원하고 있다”면서 현행 호주의 날(1월 26일)은 그런 날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국적으로 100명 이상의 소속 지역의회 의원들과도 협력해 공공의 논의를 강화할 것이라 주장했다.
호주에서는 작년 8월 멜버른 북쪽의 데어빈 카운슬(의회)이 호주의 날을 기념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날 이뤄지던 시민권 수여식 행사도 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야라 카운슬도 호주의 날을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으며, 이밖에 서호주 주의 프리맨틀 등 3개 카운슬이 호주의 날을 다른 날로 바꾸거나 이날 행사를 열지 않게 됐다. 또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최소 2개 카운슬도 이런 추세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극우파 유력 정치인인 폴린 핸슨 연방 상원의원은 시 당국의 결정을 비판하며 논쟁에 가세하기도 했다. 핸슨 의원은 “있는 그대로 ‘호주의 날’을 받아들여야지, 축하행사를 미루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연방정부도 애초 예정대로 축하행사를 치르지 않으면 시민권 수여식 개최권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서기도 했다.
한편 호주의 날 변경을 반기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윔블던 테니스 챔피언 출신 패트 캐시는 원주민 거주지를 찾아 봉사활동을 한 경험을 통해 “그들(원주민들)이 호주의 날을 축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함께할 수 있는 다른 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호주의 날 변경’에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는 말컴 턴불 총리에게 원주민 마을 방문을 권했다. 그들의 빈곤과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볼 것을 권유한 것이다.
호주 공영 ABC방송 산하의 라디오 방송인 ‘트리플 제이(Triple J)’도 매년 호주의 날에 진행하던 연례 ‘최대 히트곡 100곡’ 선정 행사를 다음날로 미뤄 방송하기로 했다. 트리플 제이는 원주민 단체와 음악인들의 요구가 잇따르면서 2차례의 설문조사에서도 청취자 다수가 방송 일정 변화를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아직까지 호주 정부는 호주의 날 변경에 거부감이 강한 편이다. 턴불 총리는 지난 15일 “자유 국가에서는 역사를 놓고 논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녹색당의 방침에 대해서는 “호주와 호주인을 하나로 묶는 날을 분열의 날로 바꾸려 한다”면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턴불 총리는 “우리는 호주 내 유럽인의 정착 역사가 원주민들에게는 복합적이고 비극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호주의 날은 서로를 하나로 묶는 날”이라 강조했다.
작년에도 비화된 호주의 날 변경 문제를 두고, 당시 턴불 총리는 여러 카운슬의 결정을 비판했다. 그러나 작년 8월 당시 원주민과의 화해나 사회 통합을 위한 영국 식민지 시절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도심 한복판 대표적인 공원 내 역사적 인물 동상 등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헌법상에 원주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국민투표 실시 문제가 오래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련의 갈등이 오히려 원주민 문제에 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에듀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