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년 3월 3일, 포르투갈의 제13대 국왕 주앙 2세 (João II, 1455 ~ 1495) 출생
주앙 2세 (포: João II, 1455년 3월 3일 ~ 1495년 10월 25일)는 포르투갈의 제13대 국왕으로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이룩한 왕이며 완전왕, 무흠왕, 완미왕 (포: o Príncipe Perfeito)이라 불린다.

– 주앙 2세 (João II)
.출생: 1455년 3월 3일, 포르투갈 왕국 상조르즈 성
.사망: 1495년 10월 25일 (40세), 포르투갈 왕국 알가르브 알보르
.부모: 아폰수 5세, 코임브라의 이사벨
.형제: 주앙, 주아나
.배우자: 비제우의 레오노르 (1470년 결혼)
.자녀: 아폰수, 주앙(사생아), 브리테스 아네스(사생아)
.종교: 가톨릭
*포르투갈 왕국의 왕
.1차 재위: 1477년 11월 11일 ~ 1477년 11월 15일
.2차 재위: 1481년 8월 28일 ~ 1495년 10월 25일
포르투갈의 주앙 2세 (João II, 1455 ~ 1495)는 포르투갈의 제13대 국왕 (재위 1481 ~ 1495)으로,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대항해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이룩한 인물이다.
그는 국정을 완벽하게 돌봤다는 의미에서 ‘완전왕’ (o Príncipe Perfeito)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 생애 및 활동
1455년 3월 3일, 포르투갈 왕국 상조르즈 성에서 출생했다.
아폰수 5세의 아들로, 일찍부터 국정에 참여하였다.
즉위 전 아버지가 프랑스를 방문한 동안에는 나라를 대신 다스렸다.
1481년에 즉위한후 귀족의 반란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아프리카 탐험을 열정적으로 추진하여 ‘희망봉’을 발견하는 업적을 쌓았다.
1491년에 발생한 왕세자 아폰소의 죽음은 주앙 2세에게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러나 슬퍼할 겨늘도 없이 후계자를 정해야 했다. 사생아인 조르즈를 교황의 승인하에 적자로 만들어 왕국을 물려줄까 하는 고민도 해보았다. 그런 이유는 사촌이자 왕비의 남동생인 마누엘은 군주로서 자질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왕비는 자신의 동생 이외에 사생아를 후계자로 삼는 것에 대해 극렬히 반대하였다.
서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경우에 자신(주앙 2세)이 죽은 후에 정통성 시비로 인해 국론이 분열될 것이 분명하였다. 어쩔 수 없이 고민 끝에 마누엘을 후계로 정하였다.
1494년에 에스파냐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어 식민지 분할선을 정함으로써 양국간에 불필요한 충돌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고통속에 지칠대로 지친 주앙 2세는 1495년 10월 향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알보르에서 숨지고 말았다.
탁월한 재능, 강인한 의지, 원대한 포부를 가진 훌륭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으나 재위 14년 만인 40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 주요 업적 및 역사적 사건
.해양 탐험 및 영토 확장
엔리케 항해왕자의 사업을 계승해 대서양 탐험을 적극 지원했다.
1482년 가나 해안에 상조르즈 다 미나 (São Jorge da Mina) 요새를 건설해 금 무역과 아프리카 진출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의 재위 기간 중 디오구 캉이 콩고강을 발견 (1484)하고,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1488)하며 인도 항로 개척의 기틀을 마련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 (1494)
교황의 중재 하에 스페인과 세계 분할 선을 정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서 분할선을 서쪽으로 더 이동시킴으로써 나중에 발견될 브라질을 포르투갈 영토로 확보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왕권 강화 및 중앙집권화
즉위 후 봉건 귀족들의 사법적 특권을 폐지하고 반대 세력을 숙청하며 국왕 중심의 전제 정치 기반을 다졌다.
특히 반란을 꾀한 브라간사 공작 페르난두 2세를 처형하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경제 및 복지 정책
무역 수익을 통해 왕실 재정을 풍부하게 하고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인 통화를 운용했다.
1492년 리스본에 당시 세계 최신식 의료 시설인 모든 성인 병원 (All Saints Hospital)을 설립했다.
- 기타 특징
콜럼버스와의 관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서회항로 탐험 제안을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별칭의 양면성: 뛰어난 통치력 덕분에 ‘완전왕’이라 칭송받았으나, 귀족들을 가혹하게 숙청했기에 ‘폭군’ (o Tirano)이라는 상반된 평가도 존재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