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년 2월 6일, 귀도 레이의 그림모델로 더욱 유명해진 이탈리아의 귀족 여성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 1577 ~ 1599) 출생
베아트리체 첸치 (이: Beatrice Cenci, 1577년 2월 6일 ~ 1599년 9월 11일)는 이탈리아의 귀족 여성이다. 그녀는 로마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 공판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
.출생: 1577년 2월 6일, 이탈리아 로마
.사망: 1599년 9월 11일, 이탈리아 로마
.묘지: 이탈리아 로마 Chiesa di San Pietro in Montorio
.부모: 프란체스코 첸치, 에르실리아 산타크로체
.형제자매: 지아코모 첸치, 베르나르도 첸치, 파올로 첸치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 1577 ~ 1599)는 비극적인 운명과 그를 둘러싼 예술적 영감으로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이다.
베아트리체는 프란체스코 첸치의 딸이었는데, 프란체스코 첸치는 귀족으로 폭력적인 기질과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말썽을 피웠기 때문에 이미 한 번 교황에게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들은 로마의 유대인 게토 끝에 중세풍으로 지은 궁전의 폐허 위에 세운 첸치 궁전에 살았다.
이들과 같이 살았던 사람들로는 베아트리체의 오빠 자코모와 프란체스코의 두 번째 아내 루크레치아 페트로니 그리고 그녀가 낳은 어린 사내아이 베르나르도가 있었다.
○ 역사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프란체스코 첸치는 아내와 아들들을 학대하였으며, 딸인 베아트리체를 강간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죄목으로 투옥되었으나, 얼마 안 가 귀족이라는 이유로 정상참작이 되어 풀려났다. 베아트리체는 당국에 아버지의 상습적인 학대를 신고해 보았다. 비록 모든 로마 사람들이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프란체스코는 자신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와 루크레치아를 로마에서 내쫓아 지방에 소유하고 있는 성에 가둬 놓았다.
베아트리체 그리고 그녀를 동정했던 계모와 친오빠, 이복남동생은 프란체스코에게 복수하고 말겠다고 결심, 그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계획하였다. 1598년 9월 9일, 두 명의 하인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베아트리체의 비밀 연인이 됨)이 베아트리체 일당을 도와 프란체스코가 성 안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독약을 먹였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자 베아트리체와 그녀의 형제, 계모는 망치로 프란체스코를 쳐 죽인 다음, 실족사한 것으로 위장하려고 높은 난간에서 시체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세간에선 아무도 프란체스코가 사고로 죽었다고 믿지 않았다.
둔기의 일종인 나무 메로 4등분 된 자코모의 사지는 네거리에 달아맸다. 그 다음에는 루크레치아가 처형되었고 마지막에는 베아트리체가 처형대에 올라가 참수되었다. 어린 남동생 베르나르도는 유일하게 사형을 면했지만 처형장에 끌려 나가 가족들이 사형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교황에게 전 재산이 몰수되는 재산 몰수형을 당하고 다시 교도소로 끌려갔다. 베아트리체의 시신은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 성당에 매장되었다.

○ ‘베아트리체 첸치’ 초상화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는 귀도 레니 (Guido Reni)의 그림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은 바로크 시대의 여류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 (Elisabetta Sirani)가 모작해서 그렸다고 한다 (‘엘리자베타 시라니’는 ‘귀도 레니’의 조수였던 자기 아버지로 인해, 나중에 그의 그림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화폭에 담은 ‘베아트리체’는 16세기 이탈리아에 살았던 실존 인물로,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처형 당한 슬픈 사연의 여성이다 (단테의 작품 <신곡>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와는 다른 인물이다).
베아트리체 첸치는 1577년, 이탈리아 귀족인 프란체스코 첸치의 첫째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그녀는 굉장한 미녀로 자라났는데, 15세 무렵 그의 방탕한 아버지로부터 겁탈을 당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그 ‘짐승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딸인 베아트리체를 지방에 있는 한 성에 가두고, 꽤 오랫동안 그녀에게 성적인 폭력과 가학 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자기 아들들에게도 폭행을 일삼던 ‘폭력적인 아빠’였다.
베아트리체를 가엽게 여긴 그녀의 계모와 친오빠는 행정 기관에 아버지 프란체스코의 상습적인 성폭행을 신고했지만, 당시의 그는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귀족이었기에 처벌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성에서 탈출한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는 새엄마와 오빠, 친한 하인의 도움으로, 친딸을 성폭행한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하게 된다.

1598년의 어느 날, 그들은 프란체스코를 죽인 다음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실족사로 위장했다.
하지만 교황 휘하의 경찰들이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범죄는 곧 발각됐으며, 그들 모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되었다.
나름 원인 있는 살인이었기에 ‘정당방위’가 어느 정도 인정될 법도 하고, 실제로 당시 행정 처리를 하던 공무원들이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음에도 ‘첸치가의 재산이 탐났던 교황 클레멘트 8세’는 귀족인 프란체스코의 남은 가족들을 없애기 위해 그들 모두에게 중형을 내렸다.
살인의 이유를 알게 된 로마 시민들은 그 판결에 항의했지만, 클레멘트 8세 (Pope Clement VIII)는 끝끝내 그들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첸치 가문의 재산을 가로채게 된다.
1599년 9월, 베아트리체 첸치는 결국 참수당하게 되었는데, 그 날 이탈리아 내에서 ‘미인’으로 소문난 그녀의 처형 장면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화가 귀도 레니 (Guido Reni)는 처형 직전에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고, 그의 문하생이 된 엘리자베타 시라니 (Elisabetta Sirani)가 나중에 그 그림을 따라 그린 것이 오늘날 많이 알려진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이다.
그 일을 알고 있는 로마 사람들은 억울하고 슬픈 사연으로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된 ‘베아트리체’를 권위적이고 모순된 귀족 계급과 권력자들에게 대항하는 ‘저항 정신’의 상징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 기타
참수된 일로 로마 사람들은 베아트리체를 오만한 귀족 계급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해마다 베아트리체가 죽기 전날과 같은 날짜가 돌아오면 그 날 밤 잘린 머리를 든 베아트리체의 유령이 산탄젤로 다리에 나타난다는 괴담이 생겨났다.
- 예술과 문학에서의 재현
.귀도 레니의 초상화: 로마 바르베리니 궁전 (Palazzo Barberini)에 전시된 슬픈 눈망울의 소녀 초상화는 오랫동안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로 믿겨 왔다. 현대 미술계에서는 모델이나 작가(지네브라 칸토폴리 설 등)에 대해 이견이 있으나, 여전히 그녀의 상징으로 통한다.
문학적 영감: 영국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비극 《첸치 일가 (The Cenci)》를 비롯해 스탕달, 알렉상드르 뒤마 등 수많은 작가가 그녀의 삶을 작품으로 옮겼다.
스탕달 신드롬: 작가 스탕달이 이 초상화를 보고 강렬한 감동을 느껴 실신할 뻔했다는 일화에서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유래되기도 했다.
베아트리체 첸치는 오늘날 부당한 권력과 폭력에 저항한 비극적 영웅이자 저항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