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1년 7월 16일, 유럽 최초로 스웨덴에서 지폐 사용
서양 최초의 지폐는 17세기에 스웨덴에서 나왔다.
대영 박물관의 화폐 전문가인 캐서린 이글턴에 따르면, 스웨덴 스톡홀름 은행 (Stockholms Banco)의 설립자인 요한 팜스트루흐가 1661년 7월 16일에 유럽 최초의 지폐를 발행했다.
스웨덴에서 사용되던 구리 동전이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사용하기 불편했기 때문에 지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초기 지폐는 금이나 은으로 바꿀 수 있는 태환화폐였다.
조폐 및 발행을 담당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Sveriges Riksbank)은 1668년 9월 17일 스웨덴 의회에 창설되어 (당시 명칭은 스웨덴왕립재정은행)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긴 중앙은행이다 (모든 은행 중에서는 4번째).
또한 전신에 해당하는 스톡홀름 은행 (Stockholms Banco)에서 1661년 유럽 최초의 지폐가 발행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 은행권은 일시적으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1694년 영국의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잉글랜드 은행권이 사실상 현대 지폐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기초로 세계 각국은 다양한 은행권을 발행해왔다.
○ 지폐 (紙幣, paper money) 또는 은행권 (銀行券, banknote)의 역사
지폐 (紙幣, paper money) 또는 은행권 (銀行券, banknote)은 종이로 만든 화폐를 말한다. 오늘날 지폐에는 종이 뿐만 아니라 명주 (실크)나 플라스틱 등의 소재도 쓰인다.
지폐가 처음 등장한 것은 중세의 일이다. 지폐는 원료나 원가의 면에서 많은 이점이 있었으나, 발행이 쉬워 인플레이션의 발생 우려가 있었고 이는 국가의 약체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현재의 지폐는 크게 정부가 발행하는 정부지폐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으로 나뉘나 민간에서 발행하는 지폐도 있다.

- 정부지폐
세계 최초의 지폐는 중국 송나라의 교자 (交子)이다.
교자는 동의 부족으로 막기 위해 쓰촨 등지에서 철화를 대신하는 임시 용도로 발행했다.
이후 쓰촨에서의 교자 발행이 성공적이자 이를 관업(官業)으로 삼아 1023년부터 정부 주도로 발행하여 유통시켰다.
다만, 교자는 기존의 철전에 대한 태환준비의 성격을 가졌으며 발행한도액도 정해져 있었다.
중원을 정복한 몽골 제국의 오고타이 칸은 동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 교초 (交鈔)를 발행하였다. 이후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를 세운 뒤인 1260년 교초는 법정 화폐가 되어 유통되기 시작했고, 이에 반대하거나 위조지폐를 만드는 경우에는 사형에 처했다.
교초의 제조법은 수피 (樹皮)를 얇게 밀어 동판화 (銅版畵)를 인쇄한 뒤 황제의 어새를 찍어서 완성했는데, 크기는 300 × 200mm보다 약간 큰 크기였다.
마그레브의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가 쓴 여행기인 《리흘라》에는 교초를 ‘종이 디르함’이라 했으며,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는 지폐에 대한 놀라움이 기술되어 있다.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명나라도 동 부족을 이유로 지폐인 대명보초 (大明寶物鈔)를 발행했다. 명나라는 기본적으로 지폐는 국내용으로 동화는 무역용으로 규정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폐는 대부분 사라져 가치가 떨어지자 보초의 역할을 동화가 대신하게 되었다.
몽골 제국의 지방정권이었던 일 칸국에서는 서아시아 최초의 지폐인 차오를 발행했다. 이는 1294년 당시 군주였던 가이하투가 방만한 재정을 재건하기 위해 교초를 참고하여 만든 것으로 한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이후 가이하투는 금속화폐의 유통을 금지하고 차오를 유통시켰으나 이슬람화되어가던 사회 분위기에 정착하지 못하고 2개월 만에 회수하고 말았다.
구미권의 정부지폐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13개 식민지에 의해 발행된 것이 최초이다.
13개 식민지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대륙회의를 소집하고 전비 마련을 위해 1775년부터 1779년에 걸쳐 대륙지폐 (컨티넨탈)를 발행했다. 멕시코 달러와의 교환을 규정해 놓았으나, 실제 발행은 13개 식민지 주정부에 있었으며 이것이 대량 발행을 유도하였다.
또한 급조된 화폐이다 보니 위조지폐를 유통시키기 쉬웠고, 영국군에 의한 방해용 위조지폐도 주조되는 등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게 되었다.

- 은행권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지고 온 금은으로 인해 16세기 유럽에서는 가격 혁명이라 불리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서유럽은 가격이 급등하여 사람들은 도난이나 마모(磨耗)의 위험 없이 은화를 귀금속 세공상의 금고에 맡겨 두었고, 보관증으로써 증서를 받았다.
이 증서는 곧 현대 은행권의 원형이 되었다.
증서는 금액이나 발행자 성명 등이 적힌 형태로 유통되었으나 결국 왕실에 거대한 대부를 빌려주었다가 회수에 실패하여 파산하고 말았다.
유럽 최초의 지폐는 1661년 스웨덴이 발행한 것이다.
스웨덴은 전비 조달로 인해 재정이 피폐해져 은화가 부족해지자 중량을 늘려 거래에 불편한 동화를 유통시켰고, 그 대신으로 민간은행인 스톡홀름 은행이 은행권을 발행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이후 스톡홀름 은행이 파탄나자,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인 스웨덴 국립은행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1694년에는 영국이 전비 조달과 신용 화폐 공급을 위한 목적으로 잉글랜드 은행을 설립하여 최초의 근대적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이 은행권은 상업어음의 할인에 사용되어 기업어음에 의한 거래가 확대되어 영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영국은 18세기에 브라질의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금광을 발견하여 면제품을 수출하는 대가로 대량의 금을 획득하였고, 이것은 금본위제 도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기타 지폐
18세기 이후 청나라에서는 정부지폐와는 별도로 민간에서 발행하는 전표 (錢票)가 사용되고 있었다.
전표는 곡물점이나 술집, 잡화점 등의 상점이 발행하여 현(縣)을 기본 단위로 하여 유통되는 지역통화로써 계절에 좌우되기 쉬운 농산물 거래의 화폐 수급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전표는 20세기까지 계속 사용되어 조표(吊票)로도 불리며, 정부나 상회에서 규제되었다.
17세기 일본에서는 하가키(羽書)를 비롯하여 상인이나 사사(寺社)가 발행한 사찰(私札)이나 각 번이 발행한 번찰(藩札) 등이 지역통화로써 유통되었다.
아랍 제국(諸國)에서는 이슬람의 영향으로 교환을 할 때에는 등량・등가 (等量・等價)를 엄격히 고수했으며 가격이 높은 금속을 소재로 한 화폐를 중시했기에 지폐의 도입에 시간이 걸렸다.
1940년대 중반까지 아랍 제국은 여러 종류의 금화나 은화 외에도 영국령 인도의 루피 등이 무역 결제를 위한 통화교환화폐로 사용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얄 은화를 통화로써 사용했으나 은 가격의 급등에 의해 은유출이 심화되자 1953년 사실상 지폐인 순찰자 수령증을 발행하여 1961년 정식으로 리얄 지폐로써 발행했다.
- 금속화폐
금속은 보조성・등질성・분할성・운반성에 있어 화폐로 적당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금화・은화・동화・철화 등이 만들어졌다. 이 중 동화는 청동화 (靑銅貨)인 경우가 많다.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금속화폐는 금속자원의 채굴량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어 광산이 고갈되면 화폐제도 자체가 중대한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금속화폐의 부족 현상은 수표・환전어음・지폐 등의 발생에 영향을 주었다.
처음에는 지금(地金)을 계량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칭량화폐 (秤量貨幣)라 한다. 이후 이것이 주조화폐 (鑄造貨幣), 즉 경화가 되었다. 이러한 경화처럼 일정한 형상이나 중량을 가진 화폐를 계수화폐 (計數貨幣)라 한다.
지중해나 서유럽에서는 경화의 소재로써 주로 금속을 사용했으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동을 주로 활용했다. 또한 서유럽에서는 영주나 상인의 교역에 주로 사용되었으나 중국에서는 농민의 지역시장에서의 교환용도로 쓰였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